욕구 채우려 간호사 꿈 짓밟은 냉혹한 살인자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7.30 08:00
  • 호수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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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전남 목포 여대생 살인 사건

전남 목포시 용해동에 살던 조아무개씨(여·23)는 간호사가 꿈이었다. 대학도 간호학과에 들어갔고 열심히 공부해 상위권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다. 4학년 때는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에 취업이 확정됐다. 간호사 국가고시를 치르고 졸업만 하면 나이팅게일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 닥친 운명은 야속했다. 2010년 10월15일, 간호사 고시를 앞둔 조씨는 목포시 상동의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날은 본래 자신이 근무할 날이 아니었지만, 가게에서 ‘대타’를 요청해 어쩔 수 없이 나가게 됐다. 오후 11시11분쯤, 일을 마친 조씨는 집을 향해 걸어갔다. 평소에는 버스나 택시를 탔으나 이날은 걷는 길을 택했다. 집까지는 1.5km로 걸어서 30분 정도 걸린다. 11시21분쯤, 조씨는 두 살 위 언니에게 ‘아르바이트 마치고 집에 간다’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11시26분에는 같은 교회에 다녔던 동네 오빠에게 전화를 걸어 통화했다. 이때 조씨가 좋아했던 남성이 결혼한다는 말을 듣고 크게 상심했다. 11시28분, 조씨는 다시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펑펑 울면서 통화했다. 이게 마지막 통화였다. 

조씨가 소리 내 울면서 집에 가던 모습은 밤늦게 산책에 나섰던 한 중년 부부에게 목격됐다. 이후 조씨의 휴대전화 전원이 꺼졌다. ‘집에 오고 있다’던 동생이 새벽까지 귀가하지 않고 연락이 두절되자 언니는 초조했다. 마냥 기다릴 수 없어 112에 ‘미귀가 신고’를 하고, 고교생인 남동생(18)과 찾아 나섰다. 

경찰은 조씨의 이동 경로를 따라 수색하던 중 그의 검은색 상의를 발견했다. 10월16일 새벽 4시30분쯤 조씨는 인근 체육공원 아랫길에 있는 배수로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집에서 불과 약 630m 떨어진 곳이었다. 

언니는 동생 걱정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다 잠깐 선잠이 들었고 악몽을 꿨다. 꿈속에서 동생은 인근 배수로에 쓰러져 죽은 채 발견됐다. 그런데 경찰의 연락을 받고 나가 보니 동생의 시신이 발견된 곳이 꿈속에서 봤던 그 장소였다. 불길한 악몽이 끔찍한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 일러스트 오상민
ⓒ 일러스트 오상민

하의 벗겨진 채 발견된 시신

조씨 시신은 참혹했다. 배수로 아래쪽을 향해 웅크려 있었고, 하의는 속옷까지 완전히 벗겨진 상태였다. 온몸에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는데 특히 얼굴이 심했다. 한눈에 봐도 성폭행이 의심됐다. 목에는 세게 눌린 자국이 선명했고, 이 때문에 혀끝이 밖으로 노출돼 있었다. 오른쪽 넓적다리에도 멍이 상당했다. 다리를 접으려고 하는 것을 억지로 편 흔적도 있었다. 범인은 성폭행을 시도하면서 무자비하고 잔인하게 조씨를 폭행했던 것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결과 사망원인은 경부압박질식사(목 졸림)였고, 정액 반응은 음성으로 나왔다. 성폭행을 시도하다 조씨의 강한 저항에 부딪혀 실패하자 목을 졸라 살해한 것으로 추정됐다. 사건 현장에서는 범인의 흔적이 나오지 않았으나 조씨의 손톱과 가슴 부위에서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유전자(DNA)가 검출됐다. 

사건 발생 4일 후인 10월19일, 시신 발견 장소에서 약 2.5km 떨어진 갓바위 목포해양유물전시관 바닷가에서 여성 가방 하나가 발견됐다. 해안가의 물이 빠지면서 바닷속에 있던 가방의 모습이 드러났던 것이다. 쓰레기를 치우던 공공근로자들은 가방을 수거해 열어봤다. 그 가방 안에는 배터리가 분리된 휴대전화, 지갑, 청바지, 속옷, 스타킹 등과 함께 신분증이 들어 있었다. 바로 살해된 조씨의 것이었다. 범인은 자신의 흔적이 남아 있던 옷가지 등을 가방에 담아 바다에 던진 것이다. 이 가방에서도 용의자를 특정할 만한 단서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범인의 DNA가 확보된 만큼 사건 해결은 어렵지 않아 보였다. 경찰은 동일한 DNA를 가진 남성을 찾기 위해 저인망식 수사를 진행했다. 조씨의 주변부터 지인, 학교 동창 등을 조사했고 성폭행 전과자, 우범자 등 무려 2015명의 DNA를 확보해 대조했다. 그러나 일치하는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당시 입출항 내역을 토대로 배의 선원들도 조사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범인이 미성년자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비행 청소년 위주로 탐문조사를 실시했다. 역시 별다른 혐의점을 찾지는 못했다. 

조씨가 귀가하던 길에는 여러 대의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있었다. 경찰은 CCTV 확인에 들어갔다. 그러나 꼭 필요할 때는 쓸모가 없었다. 일부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일부는 겉모양만 갖춘 모형이었다. 범인의 모습이 촬영됐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허탕을 치고 말았던 것이다. 

경찰은 사건 당일 목격자를 찾기 위해 탐문에 들어갔다. 사건 현장에서 30m쯤 떨어진 곳에는 단독주택 한 채가 있었다. 이 집에 사는 20대 남성 김아무개씨는 10월15일 오후 11시30분쯤 ‘악’하는 외마디 비명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그에 따르면 취업 준비를 위해 컴퓨터를 사용하다 여성의 비명을 들었다. 당시에는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시신이 발견되자 피해자가 내지른 비명이란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같은 시각 사건 현장에서 300m 떨어진 곳에서도 외마디 비명을 들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당시 배수로 위쪽 산책로를 지나던 강아무개씨는 여자 비명이 들려 순간적으로 아래쪽을 바라봤다. 배수로 바로 옆에 짙은 선팅을 한 검은색 차량이 한 대 정차돼 있었다. 

강씨가 차량을 봤을 때 차량 뒷문이 닫히고 있었는데 이때 여성의 것으로 보이는 한쪽 다리가 보였다고 했다. 당시 근처 도로를 달리던 택시기사는 검은색 차량 뒤편 트렁크에 나비 모양의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고 증언했다. 

또 다른 목격자인 50대 남성은 사건 발생 약 1시간 전에 공원에서 배회하는 남성을 봤다고 전했다. 당시 이 남성은 야구모자를 푹 눌러쓰고 누군가를 기다리듯 공원길이 끝나는 곳 근처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가를 반복했다고 한다. 경찰은 이 남성이 용의자가 유력하다고 보고 범행 대상을 물색하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했다. 

경찰은 사건 퍼즐을 완성하기 위해 다각도로 수사를 벌였다. 우선 CCTV 조사 범위를 확대했다. 사건 현장으로 통하는 길목에 있는 CCTV와 가방이 발견된 해안가 도로를 통행한 차량들을 대상으로 했다. 특히 목격된 차량과 비슷한 4000여 대는 따로 분류해 차주의 알리바이를 일일이 확인했다. 한마디로 이 잡듯이 뒤졌지만 용의차량을 확보하는 데는 실패했다. 

피해자 조씨가 휴대전화로 통화하며 길을 걷고 있는 모습 ⓒ CCTV 캡처
피해자 조씨가 휴대전화로 통화하며 길을 걷고 있는 모습 ⓒ CCTV 캡처

범인이 남긴 흔적, DNA

경찰 수사는 점점 미궁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지만 결과물은 ‘빈껍데기’였다. 범인의 범행이 치밀했다기보다 운이 따랐다고 봐야 한다. 우선 DNA 대조에서 성과가 없었고 CCTV가 무용지물이었다. 비명도 들었고, 목격자도 있었으나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적극적인 신고로 이어지지 못했다. 

범인이 잡히지 않으면서 유족들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다. 결국 상처가 깊게 패어 얼마 뒤 삶의 터전이었던 목포를 떠났다. 사건 당시 동생과 문자를 주고받았던 언니는 방송 프로그램 등에 출연해 고통스러운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경찰은 DNA가 일치하는 사람을 찾기 위해 주기적으로 성범죄 전과자들과 대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현재 상황에서 ‘DNA 대조’가 사건 해결의 유일하고도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범인과 일치하는 DNA를 찾지 못할 경우 ‘미해결 상태’를 벗어나기는 힘들게 됐다.           

 

※ 범인이 남긴 단서들

1. 비면식범의 우발적인 범행이다 

범인과 피해자의 관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경찰은 사건 초기 면식범의 계획범죄에 무게를 두고 조씨 주변에 있던 남성들을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모두 당일 알리바이가 확인되고 사건 현장 인근에 온 적도 없어 혐의를 벗었다. 

이에 반해 범죄심리학자들은 ‘비면식범의 우발적 범행’을 높게 보고 있다. 사건이 일어난 장소는 주민들 사이에 우범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에는 공원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이어서 인적도 드물었다. 범인은 이런 사정을 훤히 알고 공원 인근을 배회하며 범행 대상을 물색했던 것으로 보인다. 산책로에서 대담하게 범행에 나선 것으로 볼 때 평소 이 근처를 자주 지나다니거나 몇 차례 와 본 적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즉 범인은 목포에 연고를 두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계획범죄’로 보기에는 곳곳에서 허점이 보인다. 범행 당시 장갑을 끼지 않았고, 흉기를 사용한 정황도 없다. 조씨의 몸에 자신의 DNA를 남기고 미처 지우지 못했다. 피해자의 신분증과 옷가지 등을 땅에 묻거나 소각하는 등 완전하게 처리하지 않은 것도 준비된 범행과는 거리가 있다. 

2. 범행은 차 안에서 이뤄졌다 

한 목격자는 비명이 들린 뒤 검은색 차량에 여성의 다리가 끌려들어가는 모습을 봤다고 했다. 실제 조씨의 시신을 보면 등 쪽이 깨끗하다. 야외에서 범행이 이뤄졌다면 끌린 흔적이나 흙이 묻어 있어야 하지만 이런 것이 없었다. 

범인은 조씨를 범행 대상으로 정한 후 승용차를 세워둔 곳까지 다가서자 주먹으로 얼굴을 공격해 제압한 다음 승용차로 끌고 들어왔을 확률이 높다. 또 조씨의 속옷이나 팬티스타킹에 흠집이 없는 것으로 볼 때 살해한 후 옷을 벗긴 것으로 보인다. 

3. 범인은 성범죄 초범이다 

성범죄자의 경우 재범률이 아주 높다. 만약 범인이 목포에 거주하고 있는 성범죄 전과자였다면 경찰의 DNA 조사에 걸려들었어야 한다. 하지만 DNA를 대조한 수천 명의 남성들 속에 범인은 없었다. 용의자를 성범죄 전력이 없는 초범으로 보는 이유다.  

4. 여성에게 폭력적인 성향이 강하다

범인은 조씨를 제압하면서 흉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손쉽게 제압할 수 있는 흉기 대신 주먹만을 사용했다. 그것도 얼굴을 집중 가격했다. 이것은 평소 범인이 여성에 대한 폭력적인 성향이 강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폭력으로 여성을 제압한 경험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조씨의 시신은 목 주변에 심한 출혈이 있었다. 조씨가 강하게 저항하자 설골(舌骨)이 부러질 정도로 목을 힘껏 누르면서 생긴 것이다. 범행 과정에서 여성이라고 해서 전혀 인정사정이 없었다. 

5. 20대 단단한 체구의 남성이다

경찰은 목격자들의 목격담을 토대로 범인의 인상착의를 추정했다. 연령은 20대 중후반이며 키 170~175cm, 턱이 갸름하고 호리호리하고 단단한 체형이다. 야구모자를 쓰고 있었기에 얼굴은 자세하게 볼 수 없었으나 목격자는 턱이 갸름한 것으로 기억했다. 사건 당시 복장은 어두운색의 남방셔츠에 면바지를 입고 있었다. 신발은 운동화를 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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