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중 인터뷰②] "한국도 베트남 전쟁 책임지는 자세 보여야"
  • 일본 도쿄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통역 = 류애림 일본 통신원
  • 승인 2019.07.29 10:00
  • 호수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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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30주년 특별기획 ] 강상중 도쿄대 명예교수 "한반도가 동북아 중심인 것 분명”

혼돈의 시대다. 혹자는 난세(亂世)라 부른다. 갈피를 못 잡고, 갈 길을 못 정한 채 방황하는, 우왕좌왕하는 시대다. 시사저널은 2019년 올해 창간 30주년을 맞았다. 특별기획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 등 각계 원로(元老) 30인의 ‘대한민국, 길을 묻다’ 인터뷰 기사를 연재한다. 연재 순서는 인터뷰한 시점에 맞춰 정해졌다.

(1)조정래 작가 (2)송월주 스님 (3)조순 전 부총리 (4)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5)손봉호 기아대책 이사장 (6)김원기 전 국회의장 (7)김성수 전 대한성공회 대주교 (8)박찬종 변호사 (9)윤후정 초대 여성특별위원회 위원장 (10)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11)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 (12)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13)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 (14)이종찬 전 국회의원 (15)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 (16)박관용 전 국회의장 (17)송기인 신부 (18)차일석 전 서울시 부시장 (19)임권택 감독 (20)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 (21)이문열 작가 (22)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교수 (23)역사학자 이이화 선생 (24)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 (25)강상중 도쿄대 명예교수

☞ 앞선 [강상중 인터뷰①] “일본, 文정권에 ‘반일 정부’란 잘못된 딱지 붙이고 있다”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한·일 양국에서 대표적 자이니치(재일한국인) 지식인으로 꼽히는 강상중 도쿄대 명예교수. 오랜 세월 한·일 사이 갖은 굴곡을 그 누구보다 관심 있게 지켜봐온 그는 현재 한·일 갈등 양상과 달라진 일본 사회에 대해 어떻게 진단하고 있을까. 7월17일 일본 도쿄에서 시사저널과 만난 강 교수는 양국 간 뿌리 깊은 과거사 문제가 수십 년간 해결되지 못한 이유에 대해 한·일 모두 "'20세기의 속박'으로부터 아직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돈이나 법보다 앞선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를 강조하는 동시에, "한국 정부 역시 베트남 전쟁이라는 20세기 '부정적 유산'에 계속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얘기했다. 더불어 2000년대 초 그가 사용했던 '동북아 공동의 집'이라는 표현을 통해, 동북아 국가들 간 경제협력을 넘어 공동평화안보 관계 구축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한국이 동북의 국가의 중심이자 통로가 돼야 한다는 생각엔 이전과 변함 없다"고도 강조했다.

시민단체 회원들이 7월20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아베 정부 규탄대회’를 열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시민단체 회원들이 7월20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아베 정부 규탄대회’를 열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저서 《위험하지 않은 몰락》에서 현재 '일본의 싱가포르화'를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지금 일본이 싱가포르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보시나요.

“일본의 현실을 보면 미디어 등 전체적으로 민주주의가 어려워졌습니다. 대표적으로 최근 ‘국경없는기자회’ 평가에서도 일본의 미디어 환경에 여러 문제가 있다고 지적되고 있어요. 한국과 비교해도 일본 저널리즘의 개방성은 전보다 훨씬 사라졌습니다. 아베 정권 들어서 위로부터의 정보통제, 입헌민주주의 강조 등 과거에 비해 제약이 많습니다. 그 목적지가 정말 ‘선택과 집중’ 전략을 취하며 강권 정치를 하는 싱가포르 같은 국가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일본 사회가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는 건 분명합니다. 이 점에 대해 위기감과 걱정을 동시에 느끼고 있습니다.”

 

“한국도 베트남 전쟁 책임지는 자세 보여야”

강 교수에게 한·일 간 과거사 문제란 언급하기에 매우 조심스러운 이슈일 것이다. 양국의 역사적 특수성은 일흔이 다 된 지금도 그의 일상 틈틈에서 여전히 고민을 안기고 있다. 위안부부터 강제징용 문제까지, 양국의 미래세대를 위해 서둘러 청산해야 할 문제라는 생각엔 그는 주저함이 없다. “과거의 잘못을 잊어버리려는” 일본의 태도에 대한 비판적 입장도 분명하다. 강 교수는 “피해를 입힌 일본이 한국에 돈이 아닌 ‘메시지’를 전하고자 더욱 노력해야 한다”고도 힘주어 말한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서 한 가지를 더 강조했다. 한국의 일본에 대한 ‘도덕적 우위’를 계속 지켜나가기 위해선 “한국 역시 베트남 전쟁 당시 남긴 ‘부정적 유산’도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강제징용, 위안부 등 한·일 간 과거사 문제에 대한 시각차는 수년간 조금도 좁혀지지 못하고 더 벌어지고만 있습니다. 돌파구가 있을까요.

“어려운 문제인데요. 우선 유럽과 비교했을 때 왜 동아시아는 이렇게 역사 문제로 계속 대립하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유럽 국가 중에서도 확실히 역사수정주의 시각을 갖고 있는 곳들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게 국가나 정부의 공식 견해로 내세워진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동아시아에서는 과거 전쟁들과 식민지 지배, 제국주의에 대해 역사수정주의 의견을 가진 정치가나 지식인들의 목소리가 아무렇지 않게 쏟아져 나옵니다. 어떤 학자가 ‘기나긴 20세기(long 20century)’라고 표현한 바 있는데, 동아시아는 이 기나긴 20세기의 속박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국민들 역시 강제징용, 위안부 문제 등 식민지 지배의 유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거죠. 하지만 문제를 일으킨 일본 쪽은 그 시대를 아주 좋은 환경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때의 잘못은 그저 잊어버리려 하는 역학이 계속 작용해 왔어요. 이게 과거사 문제에 있어 한·일 간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일본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피해를 받은 이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일본이 ‘꼭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총리가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직접 진심 어린 편지를 쓰는 등 마음의 ‘메시지’를 전하는 거죠. 강제징용도 한국이 조약을 깼다고만 주장하며 법리적으로만 접근해선 안 돼요. 한국 국민들이 원하는 건 돈이 아니라 마음으로 전하는 위로의 메시지일 것입니다. 일본이 그걸 알아야 해요.”

피해자인 한국이 20세기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물론 위안부 할머니나 강제징용 피해자분들, 긴 시간 고통을 받으신 분들에게 이런 요구를 하진 못합니다. 그러나 일반 한국 국민들은 일본과의 관계에서 긴 20세기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이 다른 나라에 남긴 후노이산(부정적인 유산)도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베트남 전쟁입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의 역할에 대해서도 한국 내에서 스스로 문제화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문재인 정부는 일본에 비해 도덕적인 우위를 갖고 있습니다. 이런 입장을 고수하고자 한다면 더욱 베트남과의 관계에 대해 명확한 의사표현이 있어야 합니다.”

재일한인 사회에서 오늘날 조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과 민단(재일본대한민국민단) 사이는 어떤가요.

“물론 저는 조총련과는 거의 관계가 없습니다. 민단과도 어떤 시기엔 가까웠지만 여러 이유로 인해 지금은 거리감이 있습니다. 남북 정상끼리도 만나는 지금, 일본의 조총련과 민단의 회담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오늘날 조총련은 거의 힘을 잃었고, 그렇다고 민단 단원이 더 늘고 있지도 않습니다. 5세까지 있는 재일동포 사회는 이 두 조직으로만 구분할 수 없는 많은 다양성을 갖게 됐어요. 이렇게 다양성을 가진 동포 사회를 세계에서 찾기 힘들 정도입니다.”

뿌리에 대한 고민, ‘이방인’으로서 정체성의 혼란을 오랜 기간 겪어오셨습니다. 지금도 이 고민은 진행 중인가요.

“내 아이덴티티(정체성)를 부정한다는 건 마치 식민지 시대를 없었던 것으로 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굴욕적인 역사라도 그걸 회피하거나 부정할 순 없을 것입니다. 지금 난 구마모토현립 극장의 관장을 맡고 있는데요. 구마모토현엔 구마모토성이 있죠. 그걸 만든 사람은 임진왜란 때 지휘관인 가토 기요마사입니다. 이런 곳에서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일본과 한국의 역사의 불운을 생각하며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구마모토이고, 이곳이 제 고향인 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강상중이라는 사람의 뿌리는 역시나 한반도입니다.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를 따지기 전에 이 모두를 ‘끌어안겠다’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내가 가진 두 개의 이름을 최대한 소중히 여기고 싶은 마음입니다.”

 

"한국, 동북아 국가들 사이 통로 돼야"

동아시아 국가들의 하나 된 네트워크를 줄곧 강조해 왔지만, 세계적으로 브렉시트를 비롯해 국가들이 파편화되는 분위기가 강합니다.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동북아 공동의 집’ 실현 가능성이 있을까요.

“동북아 공동의 집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향이 있는데요. 2000년 제1차 남북 정상회담 등의 분위기 속에서 한반도가 동북아의 중심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남북 간 평화, 최종적인 통일은 동북아 국가들 간의 우호적 질서가 형성되지 않으면 달성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만든 슬로건인데 아직 명확한 형태가 갖춰지진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북한·일본·미국·중국·러시아, 경우에 따라선 몽골까지 이들 간 장벽을 무너뜨리는 corridor(통로)가 우리의 한반도가 돼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이민자와 난민에 대한 거부 정서가 유럽 일부 국가뿐 아니라 한국에까지 퍼져 또 하나의 사회 갈등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이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해야 할까요.

“아주 어려운 문제죠. 독일에서 메르켈 총리가 그 정도로 비판받은 것을 생각해 보면, 사회의 tolerance(관용), 허용도가 어디까지 와 있나를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제주도에 예멘 난민 문제가 한창일 때, 그곳의 자원봉사자로 활동한 한 남성이 ‘예멘 난민들의 모습이 우리 부모님 모습과 같다’고 말한 보도를 본 적 있습니다. 과거 제주 4·3사건이 일어났을 때 일본에 난민처럼 흘러들어간 우리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면서요. 이 말이 아주 감동이었습니다. 어느 나라가 이들을 대하는 데 있어 베스트인가 하는 것은 평가하기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분명한 건 살기 힘든 사회는 난민을 수용하기가 좀처럼 어렵다는 거죠. 따라서 먼저 우리 사회를 어떻게 살기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궁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런 내부의 문제에 눈 돌리지 않으면 난민 문제도 실로 풀기 어려울 것입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저출산·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떻게 외부에 문을 열어 갈 것인가를 필수적으로 논의해야만 합니다. 향후 남북이 하나가 됐을 때 북한 사람들과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가도 굉장히 중대한 고민거리라고 생각합니다.”

☞계속해서 [강상중 인터뷰③] “대한민국은 ‘압력솥’ 같은 나라다" 기사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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