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날두와 유벤투스, 2019년판 도둑들
  • 권상집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7.30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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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 교수의 시사유감] ‘한탕 수익’ 위해 한국 팬들 기만…주최사와 프로축구연맹도 ‘헛발질’

7월26일 서울 상암월드컵 경기장에서 벌어진 유벤투스와 K리그 올스타팀과의 대결은 역대 스포츠 사상 최악의 사례로 기록될 것이 확실하다. 친선 스포츠 경기가 스포츠 지면을 넘어 정치, 경제 뉴스보다 더 화제가 될 정도로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 중 한 명인 호날두의 비매너와 유벤투스의 무례함은 엄청난 후폭풍을 불러 일으켰다. 그간 한국을 방문한 축구 스타는 역대 최고의 선수로 거론되는 펠레, 마라도나, 메시, 베컴 등이 있었다. 그들은 최소 15분 또는 풀타임을 뛰며 국내 팬들에게 예의를 보여줬고 슈퍼스타로서의 품격을 지켰다.

그러나 경기 당일 보여준 호날두의 행동은 옹졸하다 못해 치밀하게 팬들을 기만한 모습까지 역력했다. 국내 팬들과의 사인회에서 ‘컨디션에 집중하고 싶다’는 이유로 일방적인 불참을 통보하더니 경기장 내에서는 전반전 내내 귀고리를 착용해 계속해서 벤치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강력히 표명했다. 팬들이 연이어 “호날두”를 외치며 그의 출전을 지속적으로 바라자 그는 후반전을 앞두고 귀고리를 제거하고 나타나 출전하는 것처럼 행동한 후 끝내 그라운드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인터뷰도 거부하고 모습을 감췄다. 팬들을 대놓고 조롱하고 기만한 행위이다.

유벤투스 또한 이른바 한탕(?) 수익을 거두기 위해 한국에 잠시 들렀다는 점이 곳곳의 정황에서 포착되고 있다. 내한 경기 대신 중국 베이징에서의 일정을 더 진행하기로 했던 유벤투스는 베이징과의 협의가 무산되자 곧바로 눈길을 한국으로 돌려 친선 경기를 요청했다. 당초 2박3일 이상의 일정을 요구한 국내 입장과 달리 12시간 체류 등 하루 동안 팬 사인회와 친선 경기, 공식 인터뷰 등을 약속한 후 300만 달러를 받아간 그들은 무례함으로 일관하며 모든 일정을 성급히 마쳤다. 그 후 그들은 지금까지 한국 팬들에 대한 공식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유벤투스)가 7월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성산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팀 K리그와 유벤투스 FC의 친선경기 내내 벤치에 앉아있다가 경기 종료 후 경기장을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유벤투스)가 7월2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성산동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팀 K리그와 유벤투스 FC의 친선경기 내내 벤치에 앉아있다가 경기 종료 후 경기장을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연이은 헛발질, 주최사와 프로축구연맹

유벤투스 내한 경기를 성사시킨 주최사 ‘더페스타’는 축구 경기와 관련해 별다른 행사나 이벤트를 주관한 적이 없었다. 그렇다 보니 일방적으로 유벤투스와의 협상에서 밀렸고 상상할 수 없는 계약을 체결해 26일 서울 상암월드컵 경기장을 찾은 6만명이 넘는 팬들의 분노를 유발했다. 내한공연을 하는 외국의 팝스타도 컨디션 관리를 위해 공연 하루 또는 이틀 전 방한하는 것이 일반적인 업계 불문율이다. 하물며 공연보다 더 많은 체력과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는 축구 경기에서 당일 입국, 당일 시합을 받아들인 건 더페스타의 치명적인 실수였다.

더페스타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당일 입국, 당일 시합을 강력히 요청한 건 주최사가 아니라 유벤투스였고 수많은 친선 경기 및 투어 경력을 지닌 유벤투스 구단이었기에 신뢰도에서 그들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 체류하는 12시간 내에 팬 사인회와 축구 시합, 공식 인터뷰 등을 모두 진행할 수 있다고 생각한 축구 전문가는 아무도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7월24일 중국에서 인테르 밀란과의 시합을 마친 유벤투스가 이틀 후 한국에 와서 모든 일정을 소화할 수 있다는 주장을 순수하게 믿은 더페스타의 능력은 제로에 가깝다.

계약 자체가 유벤투스의 도덕적 해이를 불러일으킨 것도 문제였다. 하루 동안의 일정으로 300만 달러, 우리 돈 36억원에 가까운 금액을 유벤투스는 호날두의 출전 없이 거머쥐었다. 호날두가 출전하지 않을 경우 위약금을 1/4 수준으로 더페스타가 요구했으니 당연히 유벤투스와 호날두는 36억원 중 9억원 정도인 위약금을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았을 것이다. 빅클럽과의 경기 주관을 통해 더페스타라는 신생 업체의 위상을 드높이려고 한 주최사의 욕심 때문에 대전료와 각종 요구 사항 등에서 유벤투스에 끌려 다닌 더페스타는 끝내 최악의 사태를 만들었다.

프로축구연맹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프로축구연맹은 이번 유벤투스와의 경기를 주최한 더페스타에게 위약금을 청구할 예정이라고 발표했으나 그동안 축구와 관련된 이벤트를 주최하지 않은 아마추어 기획사에게 모든 일을 맡긴 건 치명적인 실수이다. 유벤투스와의 매끄러운 이벤트 성사를 위해 기본적으로 연맹이 적극 개입을 했어야 맞다. 연맹은 더페스타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축구 시합 및 일정, 구단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축적돼 있는 기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맹 역시 더페스타에게 전적으로 이번 이벤트를 위임해 화를 자초했다.

KBS는 주최사인 더페스타에 중계권료로 3억원을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경기는 예정된 시간보다 1시간 가까이 지나서 저녁 8시57분에 시작됐고 더욱이 해외 불법 스포츠 베팅업체 광고가 KBS 생중계 화면에 여과 없이 노출돼 중계방송마저 최악의 사태를 거듭했다. 더 나아가 KBS의 이혜성 아나운서는 유벤투스의 이탈리아인 골키퍼 부폰에게 영어로 질문을 던져 이태리어로 답변을 받고 다시 통역사가 한국어로 전달하는 복잡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시청자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KBS의 미숙한 진행 또한 눈살을 찌푸리기에 충분했다.

 

역대 최악의 매너, 호날두와 유벤투스

호날두와 유벤투스가 실제로 한국에 머문 시간은 10시간에 불과하다. 당일 하루 동안 팬 사인회 및 축구 경기, 기자 회견 등의 이벤트를 유벤투스가 제의하자 기존에 축구 경기를 주관했던 주최사들이 모두 어렵다고 주장했을 때 신생업체 더페스타는 이를 덥석 물었다. 유벤투스가 던진 미끼에 국내 신생업체가 걸려들었을 때 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하다. 아시아 투어를 통해 손쉽게 돈을 벌 계획만 궁리한 유벤투스는 아시아 시장에서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만만한 한국 시장을 대놓고 무시하면서 36억원을 챙겼다. 가히 2019년판 도둑들에 가깝다.

호날두 역시 국내 팬들의 기대와 성원을 저버린 후 지속적으로 추태를 보여줬기에 비난 받아 충분하다. ‘시합 대비 컨디션 관리’ 차원이라는 명분으로 팬 사인회를 거부한 그는 후반전 출전을 위해 귀고리를 제거하는 등 치밀한 모습을 보이며 팬들을 기만한 후 시합이 끝나자마자 공식 인터뷰도 거부하고 이탈리아로 출국했다. 근육 상태가 좋지 않다는 구단의 입장과 달리 그는 자신의 SNS에 ‘집에 돌아오니 좋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러닝머신 위에서 태연하게 운동하며 자신의 컨디션과 근육 관리에 전혀 문제가 없음을 드러냈다.

호날두를 지지하는 국내 팬들은 그를 ‘우리형’으로 불렀으나 이제 그는 대한민국 5000만 국민에게 ‘날강두’로 불리는 신세가 됐다. 과거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은 아주 멋진 나라인 것 같다. 사람들도 멋지다”라는 그의 발언까지 국내 팬들의 도마에 오르고 있다. 역대 최악의 매너를 보여준 후 그는 지금도 국내 팬들의 항의와 분노에 일언반구(一言半句) 말이 없다. ‘한탕주의’ 수익을 위한 프로 호날두와 유벤투스의 현혹에 아마추어 주최사와 연맹이 걸려든 최악의 사태. 결국 경기장을 찾은 6만 명이 넘는 관중과 시청자들만 피해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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