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김태호 PD의 예능 실험은 성공할까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8.03 10:00
  • 호수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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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면 뭐하니?》에 담긴 고민…다시 스타트라인에 선 김태호

MBC 《무한도전》이라는 레전드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김태호 PD의 복귀는 몇 달 전부터 대중들의 초미의 관심사였다. 어떤 프로그램으로 돌아올까, 누구와 함께할 것인가를 두고 섣부른 예상들이 나올 정도로 관심이 뜨거웠다. 무엇보다 큰 기대는 《무한도전》 시즌2였다. 그만큼 《무한도전》의 팬층이 여전히 두텁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김태호 PD의 선택은 《무한도전》 시즌2가 아닌 《놀면 뭐하니?》라는 릴레이 카메라 실험이었다. 유튜브를 통해 처음 공개된 릴레이 카메라는 김태호 PD가 유재석에게 카메라 한 대를 건네주며 아무것이나 메모리를 채워달라는 요구에서 시작됐다.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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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가 유재석에서 조세호, 태항호, 유병재, 딘딘, 유노윤호로 바통을 이어가면서 다양한 인물들의 저마다 다른 1인 방송들로 채워졌다. 모두가 상상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역발상이었다. 예능 촬영이라고 하면 카메라가 수십 대씩 동원되고, 작가들과 조연출까지 동원되어 많게는 100여 명의 스태프가 움직이기 마련이다. 김태호 PD에 유재석이 움직이는 프로그램이라면 더더욱 말할 것이 없다. 하지만 김태호 PD는 그런 거창한 ‘블록버스터’ 대신 카메라 한 대로 촬영감독도 따로 없이 시작하는 ‘소소한’ 실험을 선택했다.

이런 선택을 한 것에 대해 김태호 PD는 유재석과의 회의 내용을 통해 그 이유를 밝혔다. 아무래도 익숙한 출연자는 익숙한 내용들을 떠올리게 해 기대감이 적을 수밖에 없다. 김태호 PD와 유재석은 대중들은 제작진의 개입으로 만들어지는 것보다는 날것의 영상을 더 원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대중성’이 좀 떨어지더라도 ‘의미 있는’ 실험을 했으면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릴레이 카메라는 그렇게 소소하게 시작됐다.

하지만 이 소소한 실험이 그저 소소하게 끝날 거라는 걸 말하는 건 아니다. 애초 기획에서 강조된 건 ‘확장’이라는 단어였다. 즉 《무한도전》 시절 자주 겪어봤던 것처럼 “어쩌다 일이 이렇게 커졌냐?”고 묻게 되는 그런 확장성을 예고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유재석의 주변 인물로 옮겨가던 카메라는 점점 멀리 여정을 떠나고 예능에서는 보지 못했던 인물들까지 확장되어 상상 그 이상의 ‘세계’를 만들어낼 거라는 예고. 김태호 PD는 《놀면 뭐하니?》의 소소함 속에 그 야심을 숨겨놓았다.

《놀면 뭐하니?》의 한 장면 ⓒ MBC
《놀면 뭐하니?》의 한 장면 ⓒ MBC

《놀면 뭐하니?》, 어째서 릴레이 카메라였을까

《놀면 뭐하니?》의 행보는 그 어떤 예능 프로그램보다 조심스러웠다. 먼저 유튜브를 통해 릴레이 카메라라는 형식의 프로그램을 짧게 잘라서 보여줬고, 반응을 본 후에 이른바 ‘프리뷰’라는 형태로 토요일 저녁에 방영됐다. ‘프리뷰’는 사실상 유튜브를 보지 못한 시청자들을 위한 배려로 볼 수 있지만, 그것 역시 김태호 PD로서는 유튜브라는 채널과 지상파라는 플랫폼이 갖는 차이를 극명하게 비교해 보기 위한 일종의 ‘테스트’였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프리뷰’가 나간 다음 주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본방이 시작됐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놀면 뭐하니?》의 포장이 바뀌었다. 애초 1인 방송 같은 릴레이 카메라를 그대로 유튜브에 내보냈던 것을, 본방에서는 지상파의 예능 트렌드로 자리한 연예인 관찰카메라 형식으로 새로 꾸려냈다. 즉 조세호의 집에 유재석부터 태항호, 유노윤호, 딘딘, 데프콘이 찾아와 함께 릴레이 카메라로 찍어온 영상들을 보며 코멘터리를 다는 방식을 덧씌운 것이다. 이것은 유튜브라는 채널 플랫폼의 성격과 지상파의 성격이 확연히 다르고 그 소비층에도 차이가 있다는 걸 감안한 김태호 PD의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유튜브가 더 날것의 영상이 어울린다면 지상파는 보다 편집된 영상이 어울린다는 걸 감안한 선택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관찰카메라와 캐릭터쇼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아내려는 의도 또한 들어가 있다. 《나 혼자 산다》 같은 연예인 관찰카메라가 그러하듯이 날것의 영상물은 리얼리티쇼에 가깝지만, 그걸 보고 코멘트를 다는 방식은 여전히 과거의 캐릭터쇼에 가깝다. 이 과도기적인 성격은 지금 방송 트렌드의 변화에 유연하게 적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김태호 PD 역시 《무한도전》 시절 익숙했던 캐릭터쇼를 이 릴레이 카메라에도 적용했다. 조세호의 집에서 코멘트를 달며 서로 공격하고 놀리며 웃음을 만들어내는 출연자들의 모습은 캐릭터쇼의 토크 방식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 장면만 떼어놓고 보면 《무한도전》을 보는 것만 같은.

《놀면 뭐하니?》의 한 장면 ⓒ MBC
《놀면 뭐하니?》의 한 장면 ⓒ MBC

여전히 어른거리는 《무한도전》의 잔상

《놀면 뭐하니?》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은 호불호가 극명히 나뉜다. 물론 시작 단계이기 때문에 향후 이 프로그램이 그려갈 확장된 세계가 아직 등장하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무한도전》 시즌2를 기대했던 팬들의 실망감도 분명히 그 밑바닥에 깔려 있다. 이럴 거면 《무한도전》 시즌2를 하고 그 안에 하나의 미션으로 릴레이 카메라를 해도 되지 않았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김태호 PD는 확실히 달라진 예능의 트렌드를 읽어내고 있고 그래서 과거를 유지하기보다는 새로운 예능의 세계로 나가고 싶어 한다. 하지만 만만찮은 《무한도전》의 그림자가 그를 짓누른다. 《무한도전》 시즌2를 보고 싶다는 목소리들이 아직 확실히 나가지 못한 세계의 빈자리로 치고 들어온다.

반면 새로운 예능을 요구하는 목소리들도 나온다. 이들은 《놀면 뭐하니?》의 본방에서 릴레이 카메라의 주역으로 등장한 하하, 유희열, 양세형, 유세윤, 장윤주 같은 인물들을 보며 실망감을 표한다. 《무한도전》 시절 거의 멤버나 다름없이 등장하곤 했던 라인업이다. 유희열은 여전히 과도한 자기애를 보여주고, 양세형은 깐죽 캐릭터를, 유세윤은 기인 같은 엉뚱함을 보여준다. 장윤주는 놀라운 열정과 에너지로 해외까지 가서 영상을 담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거기서 새로운 걸 찾기는 어렵다. 관찰카메라는 결국 형식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누가 그 카메라를 쥐고 있느냐가 사실상 콘텐츠의 차별성이 된다. 누가 출연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릴레이 카메라의 성격상 초반에는 유재석 주변의 아는 인물로 번져 나가기 때문에 《무한도전》에서 익숙했던 인물들이 영상을 채울 수밖에 없다. 물론 뒤로 가면 갈수록 신선한 인물들이 등장할 것이지만.

김태호 PD의 예능 실험은 결코 만만찮아 보인다. 과거 《무한도전》의 팬들을 다독이며 끌고 가면서도 동시에 이 시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예능 형식을 선보여야 한다. 또 새 시대의 스타 또한 발굴해 내야 한다. 무엇보다 큰 지지이자 장애는 《무한도전》이라는 유산이다. 그 유산이 주는 기대감은 엄청나지만, 그래서 그 바깥으로 나가 새로운 세상을 향해 달려가는 일은 쉽지 않다. 어떤 면에서 보면 김태호 PD는 과거 《무한도전》을 처음 시작할 때의 출발선상에 다시 선 것처럼 보인다. 향후 그가 그려갈 예능 신세계가 또 다른 시대의 아이콘이 될지, 아니면 그저 실험으로 끝날지 알 수 없었던 그때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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