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가 필요 없고, 귀찮고, 싫다는 일본 국민
  • 류애림 일본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8.02 17:00
  • 호수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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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화된 한·일 관계 등으로 큰 관심 모은 7·21 참의원 선거, 투표율 50%에 못 미쳐

일본 지바(千葉)현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20대 A씨는 선거권을 가진 뒤 치러진 3번의 선거에 모두 투표했다.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 것은 아깝다는 생각, 일본 정치가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투표를 한다는 A씨. 과거 두 번의 선거는 부재자 투표를 했다. 도쿄에서 학생 생활을 하며 주소지를 옮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A씨의 고향 친구들은 부재자 투표 신청이 귀찮다는 이유로, 또는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이유로 투표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투표에 열심인 A씨를 신기하게 본다는 것이다. 투표율만 놓고 보면 A씨의 친구들과 같은 생각을 가진 일본인 유권자가 반 이상이다.

지난 7월21일 치러진 일본 참의원 선거의 투표율은 48.80%에 그쳤다. 이번 선거의 투표율에 대해 아사히신문은 “정당이 ‘기권’에 졌다”는 제목의 사설을 싣기도 했다. 48.80%라는 투표율은 전후(戰後) 참의원 선거 중 두 번째로 낮다. 가장 낮았던 참의원 선거 투표율은 1995년의 44.52%다. 이번 선거에서 투표율이 가장 낮았던 곳은 도쿠시마(德島)현으로 유권자 중 38.59%만이 투표했다. 투표율이 가장 높았던 야마가타(山形)현조차도 60.74%로 60%를 겨우 넘겼다. 일본 국민들의 선거 기피 현상은 중의원 선거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최근 치러진 2014년과 2017년 중의원 선거에서 투표율은 각각 52.66%, 53.68%를 기록했다. 이 역시 전후 최저 투표율이다.

7월21일 일본 도쿄의 한 투표소에서 고령의 유권자가 참의원 선거 투표를 하고 있다. © EPA 연합
7월21일 일본 도쿄의 한 투표소에서 고령의 유권자가 참의원 선거 투표를 하고 있다. © EPA 연합

선거연령 18세로 낮춰도 젊은 층 참여 저조

젊은 세대의 투표율은 더욱 낮다. 일본의 경우 2015년 선거 가능 연령을 만 20세에서 만 18세로 낮췄다. 선거연령이 낮아진 후 처음 치러진 2016년의 경우 만 18세, 19세의 투표율은 46.78%에 그쳤다. 이번 선거의 경우는 더 심각했다. 31.33%까지 떨어졌다. 2017년에는 40.49%를 기록했으니 점점 떨어지고 있는 셈이다.

갈수록 낮아지는 투표율에 일본 정부는 조금 더 투표하기 쉬운 환경을 만들기 위해 고심 중이다. 총무성 주도로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투표 환경 향상 방책 등에 관한 연구회’를 열고, 2018년 8월에는 회의 내용을 정리한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 보고서는 국정선거의 재외국민 투표율을 높이는 방법으로 인터넷 투표의 도입을 제안하고 있다. 재외국민의 투표율은 20% 전후로 낮은 편이다.

프랑스에 거주 중인 30대 일본인 B씨의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현재의 재외국민 투표 방법이 어렵거나 귀찮아 투표를 하지 않는다기보다 정치에 흥미를 잃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투표를 하면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지 못할 정도로 일본의 정치는 끝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흥미를 점점 잃었다는 것. 정치가 변화에 대한 기대를 가능케 한다면 선거 제도가 어렵고 귀찮아도 적극적으로 한 표를 행사할지도 모른다는 설명이다.

물론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투표 가능한 인터넷 투표가 도입된다면 투표할 것 같다는 이들도 있다. 도쿄에서 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20대 C씨는 이제껏 한 번도 투표를 해 본 적이 없다. 그런 C씨도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투표할 수 있다면 투표할 용의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투표를 하지 않는 제일 큰 이유는 선거에 흥미도 없고, 정치가에게 무엇인가 기대해 봤자 배신감만 느낄 뿐이기 때문이라 한다. 투표소까지의 걸음을 무겁게 하는 B씨와 C씨가 가진 정치에 대한 불신은 이번 선거 후 실시된 일본 언론의 여론조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투표 여부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투표하지 않았다’고 응답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 이유를 물었다. ‘정치나 생활이 바뀔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29%로 1위를 차지했다. ‘투표소에 가는 것이 귀찮다’는 응답이 25%, ‘좋은 후보자와 정당이 없었다’가 20%, ‘결과를 예측할 수 있었다’가 18%, ‘정치나 선거에 관심이 없다’가 16%였다. 만 18세에서 39세의 경우 ‘투표소에 가는 것이 귀찮다’는 대답이 가장 많았고, 60대 이상의 경우 ‘정치나 생활이 바뀔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7월20일 일본 도쿄 아키하바라에서 열린 참의원 선거 최종 유세장에서는 젊은 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 EPA 연합
7월20일 일본 도쿄 아키하바라에서 열린 참의원 선거 최종 유세장에서는 젊은 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 EPA 연합

낮은 투표율 배경은 정치 불신과 무관심

아사히신문의 경우, ‘왜 투표율이 낮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의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투표해도 정치는 바뀌지 않기 때문’이라는 답이 43%로 가장 많았다. ‘정치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32%로 그 뒤를 이었고, 17%가 ‘투표하고 싶은 후보자나 정당이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연령대별로는, 만 18세에서 29세의 경우 ‘관심이 없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48%로 가장 많았다.

일본의 경우, 1955년 11월 결성된 자민당이 긴 세월 동안 집권해 왔다. 2009년 8월의 중의원 총선거에서 당시 일본의 민주당은 ‘정권교체 선거’라는 슬로건을 걸고 사민당·국민신당과 연립해 과반수 확보를 목표로 했다. 그리고 민주당 단독으로 308석(전체 480석)을 확보해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자민당 장기집권에서 벗어나 변화해 보고자 하는 일본 유권자의 뜻이 반영된 결과였다. 하지만 민주당 집권은 그리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2011년 3월11일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했고, 민주당은 재해와 원전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이듬해 정권을 다시 자민당에 내줘야 했다. ‘변화’를 원해 정권교체를 이뤄냈지만 결과는 ‘혼란’이었다. 이후 유권자들은 다시 ‘안정’을 택하게 되고 누가 집권하든 정치는 변하지 않는다는 불신이 깊어지면서 흥미를 잃은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정권교체를 이루어낸 2009년의 투표율은 69.28%였지만, 2012년에는 10%포인트 가까이 하락한 59.32%를 기록했다. 이후 두 차례의 중의원 선거는 앞서 언급했듯 전후 최저 투표율을 기록했다.

기성세대는 누구를 뽑든 ‘정치는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했고, 그 경험이 정치 불신으로 이어졌다. 기성세대의 정치 불신은 곧 젊은 세대의 무관심으로 이어진다. 인터뷰에 응한 20, 30대 일본인 중 투표를 했다고 한 이들은 부모님의 영향이 컸다고 말한다. 투표에 반드시 참여하는 부모의 모습을 봐왔고, 부모에게 어려서부터 투표는 반드시 해야 한다고 교육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트위터 등 SNS의 영향으로 투표를 하는 이들도 있지만 역시 기성세대의 영향은 크다.

아사히신문의 사설은 이런 악순환을 만들어낸 데 일본 정치가들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아베 1강’ 상태와 다양한 민의를 반영하지 않으려는 여당의 정권 운영, 명확한 쟁점을 어필하지 못하는 야당 모두를 비판하고 있다. 결국 이들이 국민들로 하여금 정치에 대한 기대를 갖지 못하게 하고 유권자를 정치에서 멀어지게 한다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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