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도 먼 이웃국가’, 점점 멀어지니 점점 다툰다
  • 최은미 국립외교원 일본연구센터 연구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8.02 15:00
  • 호수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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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환점 맞은 한·일 관계…국익 기반으로 한 ‘공동의 이익’ 찾아야

한·일 갈등이 장기화할 전망이다. 강제징용 문제로 촉발된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규제 강화와 화이트리스트 제외 검토는 한국인들의 민족주의 정서와 애국심을 자극했다. 일본의 조치에 반발한 한국 정부는 국제사회에 일본의 부당함을 알리고, 국민들은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이고 있다.

어쩌면 예정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과정에서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성격을 명확히 하지 못한 채 정치적으로 봉합한 시점부터, 그리고 일제강점기 일본으로부터의 참혹한 피해에도 불구하고 과거사 문제를 충분하게 해결하지 못한 시점부터 갈등은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 다만 그 시기가 지금, 그리고 그 문제가 이렇게 복합적으로 나타날 줄은 우리 모두 미처 예측하지 못했다.

일본의 경제보복은 한국인들의 민족주의 정서와 애국심을 자극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 연합뉴스
일본의 경제보복은 한국인들의 민족주의 정서와 애국심을 자극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 연합뉴스

달라진 한·일 관계, 우리는 무엇을 공유하는가

1965년 6월22일, 한국과 일본은 양국 및 양국 국민의 재산과 청구권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고, 경제협력 증진을 희망하며 기본조약에 합의했다. 그러나 1951년부터 약 14년에 걸친 논의에도 불구하고, 양국은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과 식민지 과거 청산에 대한 합의를 끝내 이루지 못했고, 결국 불완전한 상태로 국교관계를 이루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일 관계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냉전이라는 시대적 상황과 양국 간 경제·안보의 전략적 필요 때문이었다. 냉전기 미국은 동아시아 지역에 소련을 비롯한 공산주의 국가를 견제하는 전략적 요충지를 구축하고자 했고, 이 과정에서 한국과 일본은 한·미·일 3국 공조체제하에 협력해 왔다.

그러나 냉전이 해체되고 한반도에 평화의 무드가 찾아오자 한·미·일 3국 공조는 기존의 강력한 존재 이유가 흔들리게 됐다. 이 과정에서 한국과 일본도 서로에 대한 전략적 필요성과 중요성이 낮아지게 되었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일본은 매년 발행되는 《외교청서》에서 한국에 대해 ‘기본적 가치와 이익을 공유하는 국가(2015년)’ ‘가장 중요한 이웃나라(2018년)’ ‘전략적 이익, 미래지향적(2019년)’ 등의 표현을 삭제했다. 또 기존 일본에 미국 다음으로 중요한 안보 협력국이었던 한국은 이제 미국, 호주, 인도, 아세안 다음 5번째로 중요한 국가가 됐다.

이와 같은 사정은 한국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18 국방백서》에서 한국은 일본에 대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등 기본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 등의 표현을 삭제했다. 군사 교류협력 순서 또한 기존의 ‘한·일-한·중’에서 ‘한·중-한·일’로 바꿨다. 이런 가운데 현재 일본은 미국, 호주, 인도, 호주를 중심으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지역협력을 추진하려 하며, 한국은 한반도 평화를 중심으로 동북아 지역에서의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이처럼 양국의 지역구상이 다른 방향을 향하면서 한·일 양국이 공유해야 할 사항이 줄어들고, 이에 따라 상대적인 전략적 우선순위가 낮아지게 됐다. 연간 인적 교류가 1000만 명이 넘는 시대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양국 간의 전략적 중요성과 필요성은 오히려 감소하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결국 현재의 한·일 관계는 국교정상화 이후 지난 50여 년의 시간을 거치면서 서로 불편한 양국이 갈등을 잠재우며 서로 손을 잡게 만들었던 전략적 이유가 약화되고, 공유할 사항이 줄어들며, 현재는 서로 다른 곳을 향하는 상황에 접어든 것으로 볼 수 있다.

중요성이 낮아진 상대와의 관계에서 기존에 덮어둔 갈등이 드러났을 때 불편함을 표출하는 것은 사실 놀라운 일은 아니다. 문제는 한·일 모두 최소한의 배려가 부족했다는 점이다. 한국은 지난해 10월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대법원 판결 이후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은 채 약 8개월의 시간을 보냈다.

 

새로운 한·일 관계, 어떤 미래로 나아가야 하나

일본은 강제징용 문제와 경제문제를 사실상 연결하며 정치·외교·역사적 갈등을 경제·통상분야로 끌어들이며 문제를 확대시켰다. 일본은 한·일 간의 인적 교류에 영향을 미치지 않되, 스스로에게는 아프지 않으면서 한국이 많이 아파할 분야를 선정해 한국을 어려움에 빠뜨리고자 했다. 하지만 사실 일본이 수출규제를 강화하고,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한다고 해서 당장 오늘부터 한국에 큰 손해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본의 행동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물론 오히려 한국인들의 민족주의 정서에 불을 지펴 상황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일본 정부의 태도와 정책 방향이 일본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데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강경 대응에 나선 배경이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강화는 70% 이상의 국민적 지지를 얻고 있다. 화이트리스트 한국 제외 조치에 대해서도 90% 이상의 국민이 찬성하고 있다. 즉 지금의 격화된 한·일 갈등이 시간이 지난다고 해도 쉽게 해소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일본과 우리는 어떻게 함께 살아가야 하며, 어떠한 미래로 나아가야 하는가. 역설적으로 그 답은 양국 간의 국가 전략과 양국이 지향하는 목표가 일치하는 지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냉전 시기처럼 양국 간의 ‘공공의 적’을 설정함으로써 공동의 이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미·중 경쟁 속에서 미국의 손을 들어준 일본과 달리, 한국은 거대한 시장과 북한 문제 해결 등 경제·안보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 미·중 사이에서 한쪽 편을 들기는 어렵다. 북한에 대해서도, 북한을 핵·미사일과 납치 문제 해결의 대상으로 보는 일본과 달리, 한국의 감정은 복잡하다.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면서도 이 문제를 해결해 통일이라는 민족적 과제를 함께 풀어야 할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일 양국은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서 지향하는 바가 무엇이고, 그 과정에서 상호 간 협력할 수 있는 부분을 통해 공동의 이익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앞으로의 한·일 관계는 기존의 관계를 넘어선 새로운 관계로 들어설 수 있도록 장기적인 관점에서 심도 있고 지속적인 고민이 필요할 것으로 여겨진다. 지금, 우리가 그 전환점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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