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던지는 린드블럼…실력도 인성도 최고인 ‘린엔젤’
  • 기영노 스포츠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8.08 14:00
  • 호수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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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보다 팀을, 야구보다 선행을 먼저 실천하는 KBO리그 최고의 투수

두산 베어스 외국인 투수 조쉬 린드블럼에게는 많은 별명이 붙어 있다. 롯데 자이언츠에 있을 때는 롯데의 전설 최동원 투수에 빗대어 ‘린동원’이라 불렸고, 두산으로 와서는 두산의 원조 스타 박철순의 이름을 따서 ‘린철순’이라 불린다. 팬들이 린드블럼이 야구를 너무 잘하기 때문에 붙여준 별명이다. 최근에는 두산에 오래 머물라는 뜻으로 ‘잠실 조씨’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지만,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별명은 역시 ‘린앤젤’이다.

린드블럼의 선행은 미국 프로야구에서부터 이어져오고 있다. 마이너리그 시절 류현진 선수가 속해 있는 LA 다저스의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와는 서로 결혼식에 참석할 정도로 가깝게 지내면서 ‘봉사활동’ ‘선행’에 대해 많은 공감을 했었다. 커쇼는 시즌이 끝나면 고동학교 동창이었던 부인과 아프리카로 봉사를 떠나는 등 선행이 몸에 밴 선수다. 그래서 메이저리그에서 그해 가장 선행을 많이 한 선수에게 주는 ‘로베르토 클레멘테상’을 2012년에 역대 최연소로 받기도 했다. 커쇼는 2011년에 받은 사이영상보다 로베르토 클레멘테상을 더 좋아한다.

커쇼가 2011년부터 삼진 한 개를 잡을 때마다 100달러씩 적립해 불우한 이웃을 돕고 있는 것을 벤치마킹해 린드블럼은 롯데에 있던 2016년 삼진을 한 개 기록할 때마다 자신의 등번호와 같은 43달러를 비영리단체에 기부하기 위해 적립했다. 린드블럼은 지난 2011년 10월 아내 오리엘 린드블럼과 함께 ‘조쉬 린드블럼 파운데이션(Josh Lindblom Foundation)’을 설립해 본격적으로 자선활동을 시작했다. 설립 이후 꾸준히 가정형편이 어려운 어린이들이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6월14일 두산이 LG와의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후 린드블럼이 가족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6월14일 두산이 LG와의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후 린드블럼이 가족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나는 한국에 야구만 하러 온 것이 아니다”

린드블럼은 지난 2015년 롯데로 올때 부산에 도착해 “나는 한국에 야구만 하러 온 것이 아니다”란 말을 했다. 야구장에서는 야구를 하겠지만, 야구장 밖에서도 자신이 하고 싶은 봉사, 선행 등을 하겠다는 뜻이었다. 린드블럼은 2015년 7월5일 ‘린동원 아름다운 동행’이란 이름으로 자선행사를 했다. 당시 린드블럼은 부산의 한 복지원 어린이 20여 명을 야구장으로 초청했고, 행사가 끝날 무렵 복지원에 찾아가겠다고 약속을 했다. 당시 행사를 도왔던 롯데 프런트는 물론 어린이들도 으레 하는 말로 여겼다. 그러나 린드블럼은 그로부터 한 달여가 지난 8월12일 아내 오리엘과 두 자녀와 함께 사비를 털어 복지원에 꼭 필요한 진공청소기 3대를 들고 갔다. 선물만 전한 것이 아니라 복지원 어린이들과 캐치볼을 하면서 함께 즐기기도 했다.

린드블럼의 한국에서의 첫해 성적도 13승11패 방어율 3.56으로 비교적 호투했다. 무엇보다 201이닝을 던져 이닝이터(많은 이닝을 던져 팀에 공헌) 역할을 충분히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롯데는 2016년 시즌이 끝난 후 린드블럼과 재계약을 추진했다. 비록 2년 차 성적은 10승13패 방어율 5.28로 첫해보다 부진했지만, 수비나 타자들의 도움을 받으면 더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린드블럼은 롯데와 재계약을 하지 않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막내딸 몬로가 심장병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몬로는 엄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의사로부터 심장 오른쪽 부위가 정상이 아니라는 진단을 받았다. 유전 및 희귀병 정보센터에서 딸의 혈액 산소 수치가 매우 낮다고 진단했다. 아내 오리엘은 곧바로 한국에서 인디애나에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린드블럼 역시 시즌을 마치고 따라갔다. 몬로는 2016년 10월21일에 태어났다. 그 일주일 뒤인 10월28일 남들보다 심장이 작은 몬로는 태어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심장의 절반가량을 절제하는 큰 수술을 받아야 했다. 몬로가 어느 정도 위기를 넘기자 린드블럼은 자신이 뛸 야구팀을 알아보기 시작했는데,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마이너리그 팀에서 그를 불렀다. 물론 연봉은 한국에서 뛸 때보다 훨씬 적었다.

린드블럼은 잠시 메이저리그로 승격되기도 했지만, 대부분 마이너리그에 머물러야 했다. 그 무렵 롯데에서 그를 다시 불렀고, 몬로가 해외여행을 다녀도 될 정도로 좋아졌다는 의사의 소견을 받아 다시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 아내와 세 자녀와 함께 다섯 식구였다. 린드블럼은 부진한 닉 에버튼 투수의 대체선수를 찾고 있었던 롯데에 다시 돌아와서 2017 시즌 후반기에만 5승3패 방어율 3.72를 기록, 레일리와 함께 원투 펀치 역할을 충실히 소화했다. 그러나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롯데와 결별한 후 두산과 계약을 했고, 두산에서도 그의 선행은 계속되었다.

7월9일 두산-LG 경기를 마친 후 덕아웃으로 향하며 스태프와 장난을 치고 있는 린드블럼 ⓒ뉴시스
7월9일 두산-LG 경기를 마친 후 덕아웃으로 향하며 스태프와 장난을 치고 있는 린드블럼 ⓒ뉴시스

가족과 함께하는 지하철 9호선

린드블럼은 2018년 7월28일 몬로와 같은 질환을 앓고 있는 병원의 환우, 가족 그리고 간호사 등 30여 명을 잠실야구장으로 초대했다. 그리고 행사가 끝날 무렵 자신이 제작한 ‘희망 티셔츠’를 깜짝 선물하기도 했다. 린드블럼은 두산 베어스로 와서는 롯데 자이언츠 시절보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투수로 변해 있었다. 포심, 투심 그리고 커터 등 3가지 속구를 던지는 데다 슬라이더, 체인지업, 커브까지 모두 6가지 구질의 공을 섞어 던지면서 리그 최고 수준의 수비와 강력한 타선의 도움을 받아 2018 시즌 15승4패 방어율 2.88을 기록, 국내외 투수 가운데 최고투수에게 주어지는 ‘최동원상’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올 시즌에는 더욱 무서운 투수가 되었다. 지난 7월30일 NC 다이노스와의 원정경기에서 승리투수가 되면서 16승1패, 방어율 2.00으로 올 시즌 강력한 MVP 후보로 떠올랐다. 린드블럼은 8월1일 현재 다승(16승), 방어율(2.00), 탈삼진(132개), 1이닝당 안타와 볼넷을 합한 WHIP(0.96)에서 모두 1위를 달리고 있어 외국인 투수와 내국인 투수를 통틀어 최고 투수임을 수치로 입증하고 있다.

린드블럼은 선발로 마운드에 오르지 않는 날은 가끔 가족과 함께 야구장을 찾는다. 서울 삼성동 아파트에 살고 있어 9호선 전철로 두 정거장만 가면 잠실야구장이다. 온 가족과 함께 야구장 가는 길은 언제나 즐겁다. 아내 오리엘과 다섯 살인 큰딸 프리슬리, 한 살 터울의 외아들 팔러, 그리고 심장병을 극복하고 있는 막내딸 몬로까지 다섯 식구가 나선다. 팔러는 야구선수가 되려는지 야구 보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야구장에서도 인기 만점이다. 그리고 프리슬리와 몬로는 야구장 푸른 잔디에서 뛰노는 것을 즐긴다. 주말에 야구가 일찍 끝나면 가족들과 함께 삼계탕·냉면·불고기 등 한식으로 외식을 즐기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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