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우물에 독 타기’의 오류
  • 김경원 세종대 경영대학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8.07 18:00
  • 호수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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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전 민정수석이 26일 춘추관에서 퇴임사를 발표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조국 전 민정수석이 26일 춘추관에서 퇴임사를 발표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 1942년 아프리카 전선에서 연패를 당하던 영국군이 엘 알라메인이라는 곳에서 독일군을 크게 격파했다. 영국군의 승리 요인 중 하나는 ‘우물 관리’였다. 총사령관이던 몽고메리는 수인성 전염병이 병사들의 전투력을 크게 떨어뜨리는 것을 보고 철저한 ‘우물 관리’에 나섰다. 이에 반해 독일군은 신선한 식수를 구하지 못해 병력의 절반 이상이 이질 등으로 전투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전쟁에서 전투력 유지에 필수적인 물의 공급원인 우물에 독을 타거나 오염시키는 것은 아주 옛날부터 쓰였던 전술이다. 지금의 루마니아 지역에 있었던 ‘발라키아’ 공국의 왕 블라드 3세는 15세기 오스만 튀르크족에게 쫓기자 후퇴하면서 온 우물에 독을 풀어 적의 진격을 늦추었다. 물론 수많은 자기 백성들이 이 물을 먹고 죽는 희생도 감수한 것이다. 20세기 들어서도 핀란드나 독일군이 적의 추격을 늦추기 위해 이 방법을 사용했다. 몇 년 전에는 IS가 패퇴하면서 그 짓을 해서 국제적인 비난 여론이 높았다. 그런데 전쟁에서만 우물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유대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은 흑사병이 휩쓸 무렵부터 유럽에서 이들을 박해할 때 여러 번 동원되었다. 우리 동포도 ‘관동대지진’ 때 이렇게 몰려 수많은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었다.

#2: 논리학에서 다뤄지는 논리의 오류 중 하나가 ‘우물에 독 타기(poisoning the well fallacy)’다. 어떤 주장에 대한 반론의 유일한 원천(우물)을 비판(독을 뿌림)해 반박을 아예 불가능하게 만드는 ‘치사한’ 전략이다. 이 용어는 19세기 후반 영국의 추기경이었던 존 H 뉴먼이 그의 저서 《어떤 이의 인생 변호(Apologia Pro Vita Sua)》에서 처음으로 이 뜻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예를 들자면 “○○○ 제약사는 탐욕스럽고 비도덕적이다. 백신의 부작용을 숨기려 당국에 뇌물을 바친다. 그러므로 이 백신들을 쓰지 말아야 한다”와 같은 논리 전개다.

#3: 실생활에서 ‘우물에 독 타기’형 논리로 상대의 입을 다물게 하는 사람을 주위에서도 종종 보게 된다. 한 교수가 강의실에 노출이 심한 의상을 즐겨 입고 오는 학생에게 자제를 부탁했더니 “그럼 이 여름에 밍크코트를 입고 오란 말씀이신지요?”라고 대답해 말문이 막혔다고 한다. 필자는 더 나아가 이런 화법을 ‘극단화법’이라 부르고 싶다. 상대방의 논리 방향을 극단으로 확대해 이 지경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질리게 만들어 더 이상 상대방의 반박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DJ 정부 시절 햇볕정책을 비판하면 여당이나 관리들이 “그럼 전쟁을 하자는 것이냐?”라고 대꾸한 것도 이 예일 것이다. 요즘에도 여권에서는 똑같은 이야기가 다시 들린다.

얼마 전까지 청와대 수석을 지낸 인사가 최근의 한·일 간 경제분쟁에 대해 “대법원 판결을 부정, 매도하는 것은 정확히 일본 정부의 입장이며, 이런 주장을 하는 한국 사람을 ‘친일파’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당의 원내대표도 야당과 그 지지자들에게 “신(新)친일”이라고 낙인찍었다. ‘우물에 독 타기’나 ‘극단화법’이다. 문제는 이것이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너무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화법을 즐겨 쓰는 이는 급기야 ‘독선(獨善)’에 빠지게 되고, 그 결과 경청과 타협을 부정한 채 자신의 결정이 잘못된 것이라도 끝끝내 몰고 가는 경향이 있다. 그가 조직의 수뇌부라면 그 조직 전체가 아주 큰 문제에 봉착할 수도 있다. ‘대일 강경책’은 차치하더라도 ‘소주성’ ’대북 유화책’ 등이 그 예가 될지 정말 우려된다.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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