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를 팝니다”…‘혐오 비즈니스’에 빠진 대한민국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19.08.19 10:00
  • 호수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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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비즈니스, 투입 대비 산출 효과 높아…‘혐오 발언’ 유튜버 수천만원 수익 거두기도

새로운 천 년이 시작되기 전, 그러니까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인 1999년, 사람들은 ‘도토리’를 선물했고 ‘파도’를 탔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태어난 Z세대는 무슨 얘기인가 싶겠지만, 당시 국민 절반이 그랬다. 싸이월드라는 온라인 공간에서 미니홈피라 불리던 개인 홈페이지를 꾸미기 위해 국민 절반은 ‘도토리’라 불리는 사이버 머니를 샀다. 도토리 5개가 있으면 내 미니홈피에, 나를 설레게 하던 사람의 미니홈피에 근사한 노래를 흘러나오게 할 수 있었다.

도토리 1개는 100원. 사람들은 도토리를 선물하고, 선물받으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 도토리로 정(情)인지 ‘썸’인지 모를 감정을 나누던 시절, 그 공간에는 분명 ‘돈’이 오갔다. 지금 보면 유치찬란해 보이는 이 도토리는 싸이월드를 21세기 초반 대한민국 최고의 IT 관련 비즈니스 모델로 자리하게 했다. ‘게시판’ 중심의 온라인 시장에서 작은 광고 수익을 나눠 갖던 기존의 문법을 뒤집고 완전히 새로운 수익모델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어떤 광고도 없이. 새 천 년의 혁신이었다.

20년이 지난 2019년 오늘, 도토리는 사라졌다. 온라인 세상은 텍스트 화면에서 움직이는 동영상 시대로 넘어갔고, 부활을 꿈꾸던 싸이월드는 심폐소생술에 실패했다. 새로운 세상의 주인공은 ‘포털 공룡’이 차지했다가 금세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 차지가 됐다. 강산이 두 번 바뀔 만큼의 시간은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초등학생들의 꿈은 이제 더 이상 대통령, 의사·판사가 아니다. ‘유튜버’다.

더 큰 변화는 온라인 세상의 화폐다. 도토리로 ‘정과 썸’을 나누던 세상이 ‘억 소리’나는 곳으로 바뀌었다. 유튜브에는 도토리가 아닌 진짜 돈이 흘러넘친다. 동영상 조회 수가 돈이 되는 세상이다. 구독자 30만 명가량을 확보한 후, 한 달 영상 조회 수 800만이 넘으면 월 1000만원이 넘는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이런 유튜버는 극소수다. 월 1억원 이상 수익을 내는 유튜버는 전체의 0.1%에 불과하다. 하지만 성공사례가 부각되면서 사람들은 점점 유튜브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시사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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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의 땅에서 ‘혐오’를 팔다

문제는 대중의 관심을 받는 일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관심’이라는 재화는 사실 늘 ‘핫한 화폐’였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았다. 유명 인사가 되면 경제적 보상(때때로 정치적 보상도)을 거둘 ‘기회’를 얻었다. 책을 쓰거나 방송 출연, 강의 등 추가적 활동을 통해 적잖은 수익을 거둘 수 있었다. 연예인과 정치인, 엘리트 등 이미 각 분야에서 특출한 재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그 화폐를 차지했다.

그런데 유튜브는 이 판을 뒤흔들어 놓았다. 유튜브에서도 기득권층의 힘은 막강하지만 분명 새로운 기회의 문이 열렸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영상을 만들 수 있는 시대. 그런데 대중의 관심을 받을 만한 지식이나 외모 같은 매력자본을 갖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럴 때 사람들에게 놓인 아주 손쉬운 선택지가 바로 ‘혐오 코드’다. 대중들로 하여금 혐오와 분노를 유발하는 방식은 짧은 시간 관심을 끄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자극적이고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콘텐츠일수록 더 많은 관심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혐오가 돈이 되는 ‘혐오 비즈니스’의 완성은 그렇게 유튜브 시대에 탄생했다. 유튜브나 아프리카TV 등 인터넷 방송 플랫폼 업체들이 제시한 수익모델, 즉 조회 수에 따라 돈을 주는 메커니즘에선 창작자들에겐 혐오는 너무나 좋은 홍보 재료가 된다. 도덕적·윤리적 비난을 받더라도 혐오 콘텐츠만큼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수단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대중의 눈과 귀를 사로잡으려면 양질의 콘텐츠가 꾸준히 필요하다. 그러려면 당연히 상당한 노력과 시간 등의 자원이 소요되는데, 혐오 코드는 이 모든 과정을 ‘순삭(순식간에 삭제)’시켜준다. 사회비평가 박권일씨는 최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혐오는 가장 적은 자원을 투입해 가장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유인할 수 있는 콘텐츠”라면서 “혐오는 재능을 요구하지 않는다. 투입 대비 산출 효과가 높기 때문에 별도의 규제가 없는 한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창작자 입장에서도 혐오는 한번 불붙이면 꺼지는 성냥개비가 아니라 계속 활활 타는 보일러와 같다. 혐오를 성별 갈등과 같은 화약고에 들이부으면 관심이라는 화폐는 안정적으로 보장되는 측면이 있다. 대중들은 지지든 비판이든 각자의 입장을 표명하기 위해 계속 해당 콘텐츠를 불러오게 된다. 사람들은 점점 더 강력하고 자극적인 ‘혐오 코드’를 원한다. 그렇게 혐오 콘텐츠의 강도는 갈수록 세진다. 당연히 ‘좋아요’와 ‘싫어요’가 더 몰린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더 많은 수익이 창작자들에게 돌아간다는 점이다. 이른바 ‘혐오 비즈니스’의 완성이다.

ⓒ시사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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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강도 세면 셀수록 수익 증가

그런데 정말 혐오 강도가 강해질수록 더 많은 수익을 낳을까? 최근 주목할 만한 연구가 나왔다. 올해 5월 한국방송학보에 ‘인터넷 개인방송에서 혐오발언은 어떻게 비즈니스가 되는가?’라는 제목으로 실린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김지수씨의 논문이다. 김씨는 유튜브와 아프리카TV에서 활동 중인 토크·캠방 대표 창작자 4명의 영상 100건을 대상으로 여성 혐오 발언이 어떻게 비즈니스로 활용되고 있는지 분석했다.

연구에 따르면 여성 혐오 발언이 등장할 때 후원 수익 금액은 107% 증가했다. 또 창작자의 발언 맥락에 사용된 여성 혐오 발언이 높은 공격성을 보일 때가 낮은 경우에 비해 더 많은 후원 수익이 발생했다. 아울러 여성 혐오 발언 맥락이 등장할 때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평균 댓글 수와 ‘좋아요’ 수가 유의하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씨는 “연구 결과는 방송 과정 중 창작자들이 내뱉는 여성 혐오의 말들이 이들에게 후원 수익을 가져다주는 효과적인 전략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줬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어 “이곳에서 여성 혐오는 상품이 되고 있었다”며 “여성 혐오가 인터넷 개인방송이라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 획득한 비즈니스로서의 의미를 드러낸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여성 혐오’를 성 소수자나 난민, 탈북자 혐오 등으로 바꾼다면 어떨까. 의미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더 큰 문제는 한국 사회가 ‘혐오 비즈니스’ 확산에 취약한 조건을 갖고 있다는 데 있다. 혐오 표현 관련 국내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는 저서 《말이 칼이 될 때》에서 “우려되는 일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최근 온라인상의 혐오가 오프라인으로 넘어가는 조짐이 있다”며 “2014년 어느 일베 회원의 황산 테러와 좀 더 조직적이었던 폭식 투쟁은 그들의 ‘말’이 ‘실행’으로 옮겨갈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우려했다.

이런 사건은 계속 발생하고 있다. 2017년 유튜브에서 남성 혐오 발언을 한 여성 유튜버의 신상을 강제 공개하고, 일정 후원금이 모이면 이 여성을 살해하겠다며 그 집을 찾아간 사건이 있었다. 경찰이 나서 범죄는 실행되지 않았지만 위험천만한 순간이었다. 심각한 점은 유튜버들이 더 관심을 받기 위해 이런 위험을 기꺼이 감수한다는 데 있다. ‘잘 팔리는’ 성별 혐오 논쟁을 일부러 자극해 많은 조회 수를 유도하고, 더 큰 논란을 일으키기 위해 더 많은 ‘혐오 발언’을 쏟아내는 것이다. 실제 논란을 일으켰던 유튜버들은 당시 이 영상들로만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의 수익을 거둔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 혐오 확산에 취약한 조건

또 다른 문제는 최근 혐오 표현이 빈곤, 불평등, 실업 등 사회경제적 위기와 결부되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이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혐오를 ‘일자리 문제’와 연결시킨다거나 5·18 유공자의 공무원시험 가산점에 대해 “공부해 봐야 소용없다”고 선동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홍 교수는 “사회경제적 위기가 단기간에 극복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위기가 혐오와 만날 가능성은 언제든지 열려 있다”고 꼬집었다.

심리학자 올포트는 다음과 같은 사회에 차별과 혐오를 낳는 ‘편견’을 가진 사람이 많다고 지적한 바 있다. 사회구조에 이질적 요소가 많고, 사회 이동성이 있고, 급격한 사회 변화가 있고, 의사소통과 지식의 전달이 막혀 있고, 소수자 집단의 규모가 늘어나고 있고, 경쟁과 갈등이 있고, 착취로 이익을 얻고 있고, 공격적으로 화를 내는 것이 사회적으로 억제되지 않고, 민족 중심주의의 전통이 있고, 문화 다양성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가 그것이다. 홍 교수는 “올포트가 제시하는 상황적 요소 중 한국에 해당하는 것이 적지 않아 보인다”며 “특히 다양성의 수용이라는 측면에서 한국은 매우 취약하다”고 진단했다.

여성가족부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 중 외국인 노동자와 이민자를 이웃으로 삼고 싶지 않다는 응답이 31.8%였다. 미국(13.7%), 호주(10.6%), 스웨덴(3.5%) 등과 현격한 차이가 난다. 2010~14년 세계 가치관 조사에서 한국은 ‘다른 인종에 대한 수용성’ 항목에서 59개국 중 51위를 차지했다. 같은 조사에서 한국인의 79.8%가 동성애자를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고 응답했다. 네덜란드(6.9%), 미국(20.4%), 독일(22.4%) 등 서구 국가는 물론 싱가포르(31.6%), 대만(40.8%), 중국(52.7%), 말레이시아(58.7%)와 비교해도 현저히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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