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 못 춘 한국 증시, 쌓인 리스크에 앞날도 ‘캄캄’
  • 송준영 시사저널e 기자 (song@sisajournal-e.com)
  • 승인 2019.08.11 10:00
  • 호수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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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코스닥 지수 4월 이후 동반 급락…한·일 갈등, 미·중 분쟁, 바이오 버블 등 불안 요소 산적

한국 증시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1년 만에 가장 큰 위기에 직면했다. 지난 4월만 하더라도 2250선을 바라보던 코스피 지수는 이제 1800선 붕괴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코스닥 지수는 더 큰 폭으로 급락하며 4년 전 수준으로 회귀했다. 지난해 말 대세였던 올해 ‘상저하고(上低下高·상반기에 낮았던 지수가 하반기에는 높아진다)’ 전망은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다.

문제는 주가 급락의 우울한 상황을 만든 원인들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이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White List·수출절차 간소화 대상국) 한국 배제와 미·중 무역분쟁은 경제 우위에 서려는 국가 간 싸움으로 장기전이 불가피하다. 이는 언제든 돌발적으로 증시를 흔들 수 있는 요인이 된다.

지난 4월 2250선을 바라보던 코스피 지수가 8월6일 장중 1800선으로 떨어지면서 투자자들의 한숨이 커지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지난 4월 2250선을 바라보던 코스피 지수가 8월6일 장중 1800선으로 떨어지면서 투자자들의 한숨이 커지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려운 악재들

여기에 잠재된 리스크도 존재한다. 국내 증시 내부적으로는 바이오 업종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진 상태다. 바이오 업종은 이미 갖은 악재 탓에 지수 하락의 원인이 됐다. 또 다른 부정적인 뉴스가 나올 경우 국내 증시가 다시 출렁일 수 있다. 한국 증시의 불확실성이 커짐에 따라 공매도가 기승을 부릴 가능성도 잠재된 리스크로 분류된다. 올해 2050.55포인트로 시작한 코스피는 지난 4월17일 장중 2252.05까지 오르는 등 상승 곡선을 그렸다. 하지만 8월6일 장중 1891.81을 기록하는 등 내리막길을 걸었다. 코스피가 장중 1900선 아래로 내려간 것은 2016년 6월24일 이후 3년1개월여 만이었다. 코스닥도 올해 4월15일 장중 770.66포인트를 기점으로 하락하면서 8월6일 540.83까지 급락했다. 코스닥이 장중 540선까지 내린 것은 2015년 1월 이후 약 4년7개월 만이었다.

증시가 이처럼 하락하게 된 배경에는 일본의 경제보복 영향이 컸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7월4일 고순도 불화수소와 감광재(포토레지스트) 등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3개 품목을 개별허가 대상으로 지정했다. 절차를 까다롭게 해 사실상 한국 기업에 이들 소재 수출을 제한하겠다는 의도였다. 반도체 제조 공정에 필수적인 이 소재 수입이 막히면서 한국 경제와 주식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반도체 업종에 대한 우려가 커진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일본은 8월2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도 제외했다. 경제산업성은 8월7일 관보에 수출무역관리령 일부를 개정하고 21일 후에 시행한다는 내용을 실었다. 일본의 수출품이 부적절한 용도로 사용되지 않는지 심사하는 제도지만 이 역시 한국에는 수출 허가를 쉽게 내주지 않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도 번번이 국내 증시를 뒤흔든 이슈였다. 앞선 5월초 미국과 중국의 무역협상이 중단된 뒤 국내 증시는 큰 폭으로 내렸다. 코스피와 코스닥은 5월 한 달에만 각각 6.8%, 7.5% 하락했을 정도다. 8월5일(현지 시각)에는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면서 환율전쟁 확전 우려가 시장을 냉각시켰다.

증권업계에서는 흔히 ‘알려진 악재는 악재가 아니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는데, 이미 알려진 악재는 시장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데서 비롯됐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의 갈등,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은 알려진 악재임에도 시장에 계속 영향을 줄 것으로 평가된다. 이들 이슈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은 데다, 이 과정에서 시장 불확실성을 높이는 발언들과 조치들이 각국에서 나올 수 있는 까닭이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제외, 미·중 무역분쟁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인 부분에서 촉발된 것이다.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선 정치적으로 매듭지어야 하는데 단기적으로 쉽지 않다”며 “해당 이슈로 터져나오는 변수에 따라 국내 증시는 계속적으로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과 중국의 고위급 무역협상 대표가 7월31일 만나 악수하고 있다. ⓒ AP 연합
미국과 중국의 고위급 무역협상 대표가 7월31일 만나 악수하고 있다. ⓒ AP 연합

불확실성 노린 공매도 급증 우려도

증시 내부적으로는 바이오 업종의 잠재 리스크가 두드러진다. 코스닥이 코스피보다 더 하락한 것도 이 때문이다. 국내 증시에서 바이오 업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데, 바이오 종목들은 펀더멘털(기초여건)보다는 임상 진행 등 기대감만으로 주가가 형성돼 있는 경우가 많다. 실제 코스닥 생물공학과 생명과학도구 및 서비스 업종(WICS 분류 기준)에서 순이익을 내고 있는 종목은 67개 중 24곳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들의 시가총액은 8월7일 기준 21조7106억원으로 코스닥 전체 시가총액인 192조원의 11%에 육박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대감을 낮추는 악재가 나올 경우 국내 증시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최근 증시 급락 이면에도 바이오 업종의 부진이 있었다. 8월1일 코스닥 시가총액 2위였던 신라젠은 핵심 항암 신약인 ‘펙사벡’의 간암 병용치료 관련 부정적인 무용성 평가 결과에 3거래일 연속 하한가를 기록했다. 코오롱 인보사 사태,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의혹, 한미약품의 기술수출 반환 등 악재가 겹치면서 바이오 업종뿐만 아니라 코스닥 지수도 크게 내린 것이다. 홍춘욱 숭실대 겸임교수는 “한때 시장의 주도주였던 바이오주가 무너지면서 지수 전체가 영향을 받았다”며 “바이오 업종에서 호재가 나오고 시장 여건이 좋을 경우 다시 주도주로서 증시 상승을 이끌 수도 있겠지만 악재가 다시 나온다면 반대의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공매도 급증 가능성도 한국 증시 상승을 막는 리스크로 꼽힌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7월의 하루 평균 공매도(코스피+코스닥) 거래대금은 4112억원이었지만, 8월 들어서는 1일 4550억원, 2일 5545억원, 5일 6031억원으로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대내외적인 악재에 한국 경제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이 지배하면서 국내외 투자자들의 한국 증시에 대한 숏(매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며 “이 경우 공매도가 급증할 수 있는데 공매도 자체로도 증시 상승 동력을 낮출 수 있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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