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아베家의 꿈
  • 소종섭 편집국장 (jongseop1@sisajournal.com)
  • 승인 2019.08.12 09:00
  • 호수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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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들은 창업가나 재벌 2세와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창업가들은 무일푼에서 부를 일궜습니다. 새로운 사업에서 놀라운 성과를 내 신화를 창조했습니다. 이러한 창업 과정에서 재벌 2세들은 대부분 부모인 창업가와 고난을 함께했습니다. 그러나 재벌 3세들은 이들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막말, 갑질을 하거나 마약 투약 등 일탈 행위를 해 언론에 오르내리는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금수저 물고 태어나 세상 물정 모르는 사고뭉치’ 이미지죠. 과거보다 사회적인 가치 기준이 높아진 영향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갖춰진 상태에서 풍요롭게 성장하다 보니 사회적 공감 능력이 떨어진 것이 더 큰 이유일 것입니다. 세습을 통해 엄청난 부를 물려받다 보니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세상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십상입니다.

재계에만 세습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정계에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느는 흐름이지만 특히 일본은 세습정치인들이 많습니다. 2014년 중의원 선거의 경우 전체 당선자 가운데 세습당선자 비율이 23.6%에 달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아베 총리입니다. 할아버지 아베 간은 중의원 선거에서 두 번 당선한 정치인이고 아버지는 외무상과 자민당 간사장을 지낸 아베 신타로입니다. A급 전범이 됐지만 풀려난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가 외할아버지, 사토 에이사쿠 전 총리는 작은할아버지입니다. 아베는 따라가다 보면 황족과도 연결되는 화려한 혼맥을 갖고 있습니다.

기자회견 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연합포토
기자회견 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 ⓒ 연합포토

아베家에 대해 연구한 자료들을 보면 우리나라와 이런저런 인연이 있습니다. 우선 도쿄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할아버지 아베 간의 장인은 동학농민전쟁에 출정했다고 알려진 오시마 요시마사입니다. 1965년 우리나라와 일본이 국교를 정상화할 때 일본의 총리는 작은할아버지인 사토 에이사쿠였습니다. 1970년 6월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잇는 부관페리가 취항했을 때 첫 배편에는 기시와 신타로가 초대 손님으로 탑승했었지요. 기시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남다른 관계였습니다. 신타로의 선거사무소와 저택 부지는 일본에서 슬롯머신 사업으로 부를 일군 재일한국인 소유였습니다. 이 때문에 1980년대에 신타로가 유착 의혹에 시달리기도 했지요. 신타로가 시모노세키에서 정치적 기반을 만들 때 재일한인상공인들이 그를 적극 지원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신타로와 재선 의원을 지낸 최세경 전 KBS 사장은 ‘평생 친구’이기도 했습니다.

어릴 때 영화감독을 꿈꿨던 아베는 아버지 신타로에 대한 기억보다는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에 대한 기억이 더욱 강렬한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본인이 그런 내용으로 쓴 글이 있습니다. 자신을 소개할 때도 ‘신타로의 아들’이 아닌 ‘기시의 손자’라고 했다는 증언도 있습니다. 교토통신 기자를 지낸 아오키 오사무가 쓴 《아베삼대》(서해문집)를 보니 기시는 평소 정치가가 됐다면 완전연소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기시가 말한 ‘완전연소’는 헌법 개정을 말합니다.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의 개헌’, 즉 군국주의의 부활입니다. 역대 최장수 총리로 등극하는 아베의 정치적 목표입니다. 현재 진행되는 일본의 경제보복은 이 길로 가는 하나의 수단입니다. 이 엄중한 상황에서 이번 호 커버스토리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조사 결과를 보니 외교·안보 쪽 인물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참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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