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타주 속에 드러난  범인의 얼굴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8.12 11:00
  • 호수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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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락인의 사건추적] 2010년 울산 부곡동 살인 사건

울산광역시 남구 달동은 삼산동과 더불어 울산 최대의 번화가로 꼽힌다. 전휘복씨(여·52)는 이곳의 한 식당에서 주방 보조로 일했다. 식당은 24시간 영업했으며 전씨는 야간을 담당했다. 첫 손주의 출산을 앞두고 아들에게 용돈이라도 보태주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다. 일은 고달팠지만 곧 태어날 손주를 생각하면 저절로 힘이 솟았다.

2010년 8월2일 새벽 4시20분쯤, 전씨는 일을 마치고 동료 부부와 함께 식당을 나섰다. 전씨가 이들과 함께 길을 걷는 모습은 인근 폐쇄회로(CC)TV에 찍혔다. 전씨는 지나가는 택시를 잡았고, 동료는 그가 택시 타는 모습을 지켜봤다.

이날 오후 4시쯤, 전씨의 막내딸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씨는 8월3일부터 3일간 휴가를 내고 막내딸과 놀러 가기로 약속했었다. 그런데 통화가 되지 않았다. 대신 ‘고객님이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지역’이라는 안내 메시지가 나왔다.

전씨의 집은 시내에 위치에 있어 휴대전화 통화가 원활한 곳이었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막내딸은 계속 전화를 걸었지만 여전히 통화불능 상태였다. 막내딸은 가족들에게 연락해 “엄마가 연락이 안 된다”며 걱정했다. 가족들은 전씨가 사는 집을 찾아갔으나 아무도 없었다. 식당에서는 “새벽에 퇴근했다”는 말만 들었다.

경찰이 만든 몽타주(왼쪽)와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3D로 만든 몽타주 ⓒ 일러스트 오상민·SBS 방송화면 캡처
경찰이 만든 몽타주(왼쪽)와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3D로 만든 몽타주 ⓒ 일러스트 오상민·SBS 방송화면 캡처

새벽 시간 실종된 여인

오후 6시쯤 가족들은 근처 경찰서 지구대를 찾아갔다. 전씨의 실종신고를 하려고 했으나 성인이라는 이유로 받아주지 않았다. 가족들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찾아야 할지 막막했다. 바로 그때 딸의 휴대전화로 문자가 왔다. 전씨는 딸 명의의 신용카드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현금서비스’를 받았다는 문자였다. 4번의 알림문자가 왔다. ‘오후 8시42분 30만원’ ‘8시44분 30만원’ ‘8시45분 30만원’ ‘8시46분 10만원’ 총 4번에 걸쳐 100만원이 인출된 것이다. 현금이 인출된 곳은 전씨가 일하던 식당에서 불과 300m 떨어진 편의점 2곳이었다.

가족들은 경찰에 신고하고 곧바로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현금을 인출한 사람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편의점 업주를 통해 CCTV를 확인했더니 인출자는 파란 옷을 입은 젊은 남자였다. 가족들은 지인의 승용차를 타고 편의점 근처를 돌며 그를 찾았다. 얼마 후 CCTV 속 남성과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발견했다. 가족들은 차를 세우고 그를 막아섰다. 근처 안마시술소 호객꾼인 박아무개군(17)이었다. 그는 “한 남성이 3만원을 줄 테니 돈을 뽑아달라고 해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박군의 소지품 중에는 전씨의 카드나 인출한 현금이 없었다. 경찰은 박군이 말한 남성을 전씨 실종의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했다.

박군에 따르면 해당 남성은 술에 취해 택시에서 내렸다. 박군이 다가가 “안마시술소에서 쉬었다 가라”고 하자 남성은 “현금이 없다”며 카드를 내밀었다고 한다. 박군은 돈을 뽑아다 주고 이 남성을 자신이 일하는 안마시술소로 안내했다. 하지만 남성은 업주에게 문전박대를 당했다. 업주는 경찰에서 “우리 업소에 들어왔는데 술 냄새가 확 풍겼다”며 “말썽을 일으킬 것 같아서 도로 내보냈다”고 진술했다. 20~30분 뒤 경찰이 급히 안마시술소를 찾아갔다. 하지만 업소를 나온 남성은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간발의 차이로 용의자를 놓친 가족들은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경찰은 이 남성을 태운 택시기사를 찾았다. 울산 시내의 택시기사 연락망을 통해 제보를 받았다. 다행히 경찰의 문자를 본 한 택시기사가 용의자를 기억하고 신고했다.

해당 택시기사에 따르면 8월2일 밤 9시쯤 용의자를 택시에 태웠고, 목적지는 ‘야음체육관시장 입구’였다. 요금은 3000원이 나왔는데 용의자는 5000원을 내고 잔돈도 받지 않고 쏜살같이 내렸다는 것이다. 택시의 블랙박스에는 이 남성이 택시를 잡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아쉽게도 화면이 흐려 인상착의를 구분할 수 없었다. 경찰은 용의자가 돈을 찾은 달동 일대와 택시에서 내린 야음동 일대를 대대적으로 탐문 조사했다. 하지만 용의자의 행적을 찾는 데는 실패했다.

 

8개월 만에 발견된 백골 시신

경찰은 수사본부를 꾸리고 가족들의 동의하에 8월7일부터 공개수사로 전환했다. 전씨의 얼굴이 실린 전단지를 제작해 배포했다. 또 박군이 일러준 인상착의를 토대로 작성한 남성의 몽타주도 뿌렸다. 제보자에게 보상금 500만원을 내걸었다. 전씨의 납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그를 태웠던 택시기사와 박군에게 현금 인출 심부름을 시킨 중년의 남성을 찾는 데 수사력을 집중했다. 그러나 보일 듯 말 듯 사건의 실마리가 잡히지 않았다.

이런 상태에서 8개월이 흘렀다. 2011년 4월17일 오후, 한 양봉업자가 부곡동의 철거 지역 풀숲에서 백골 시신을 발견했다. 사람의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부패한 상태였다. 근처에는 여성의 옷가지와 빈 지갑 등이 사방으로 흩어져 있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백골을 수습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을 의뢰했다.

전씨의 딸은 발견된 소지품을 보고 “엄마가 갖고 다니던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경찰은 딸의 DNA를 확보해 국과수에 보냈다. 약 한 달여 간의 DNA 감정 끝에 시신의 신원이 밝혀졌는데, 실종됐던 전씨였다. 경찰은 ‘실종’에서 ‘살인 사건’으로 변경하고 수사 인력을 대폭 늘렸다.

경찰은 사건 당일 전씨가 택시를 탄 후 실종된 것으로 판단했다. 이상한 것은 경찰이 울산의 택시기사 연락망으로 문자를 보내고, 현수막을 걸고, 전단지를 배포했는데도 실종 당일 전씨를 태웠다는 택시기사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다 택시기사 한 명이 유력한 용의선상에 올랐다. 그는 취객의 신용카드를 훔쳐 술을 마시고는 주점 종업원을 시켜 현금을 인출해 여러 번 경찰의 수사를 받고 구속된 전력이 있었다. 경찰은 이 택시기사의 운행기록을 확인하다 전율을 느꼈다. 사건 당일 전씨가 실종된 비슷한 시각인 새벽 4시18분에 손님을 태워 4시47분에 하차시켰다는 기록이 나왔다. 이동거리는 2.5km, 요금은 7200원이었다. 전씨가 택시에 탑승한 지점에서 집까지의 거리(2.7km)와 비슷하다.

문제는 요금이다. 같은 거리의 요금은 보통 3200원인데, 이 택시는 두 배에 가까운 7200원이 나왔다. 운행하지 않았는데 요금 미터기가 돌아갔다면 한동안 택시를 세워놓았다는 것이 된다. 더욱이 이 택시기사는 이후 한동안 영업한 기록이 없다. 오전 4시47분에서 8시18분까지 약 3시간20분간 영업을 하지 않았다. 경찰은 택시기사를 불러 조사를 벌였다. 그는 시동을 걸고 택시를 멈춘 이유에 대해 “잠을 자기 위해 시동을 걸었다”고 하면서도 당일 알리바이를 제대로 대지 못했다.

 

눈앞에서 놓친 범인

하지만 그를 용의자로 특정하기에는 직접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 전씨의 집 앞에서 시신 발견 장소까지 이동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았고, 차량의 블랙박스에도 전씨가 타는 모습이 찍혀 있지 않았다. 어디에도 이 택시에 전씨가 탑승했다는 기록이 없었다. 결국 그는 증거 부족으로 풀려났다. 이 사건은 쉽게 해결될 수 있었다. 용의자를 목격한 사람이 3명이나 되고, 택시 블랙박스에도 용의자의 모습이 찍혔다. 용의자가 호객꾼인 박군을 시켜 돈을 뽑고 안마시술소에서 승강이를 벌일 때 가족들과 경찰이 바로 인접한 곳에 있었다.

경찰은 최초 박군을 범인으로 단정하고 증거물 확보 등을 소홀히 했다. 특히 박군이 연행될 때 “용의자가 담배를 피웠는데 꽁초를 확보해 달라”고 했으나 이를 무시했다. 용의자의 DNA를 확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던 것이다. 이것이 뼈아픈 실책이 되고 말았다.

그나마 이 사건은 목격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몽타주가 남아 있다. 안마시술소 업주는 용의자의 얼굴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호객꾼 박군과 안마시술소 업주가 기억해 낸 범인의 인상착의는 차이가 있었다.

지난 2011년 9월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이 사건을 다루면서 3D 방식으로 새로운 몽타주를 만들었다. 지금으로서는 이 몽타주가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라고 볼 수 있다.           

 

범인이 남긴 단서들

1. 우발적인 살인이다

피해자 전씨의 사망원인은 ‘불명’이다. 시신이 백골 상태로 발견되면서 목이 졸린 것인지, 흉기에 찔린 것인지는 알 수 없게 됐다. 또 성폭행 여부도 확인할 수 없었다. 다만, 범인이 처음부터 살인을 계획했다기보다는 우발적 범행에 무게가 실린다.

범인은 전씨를 살해한 후 시신을 매장하거나 나뭇가지와 풀 등으로 위장하지 않고 그냥 던져놓다시피 했다. 또 범행 당일 멀리 도주하지 않고 술을 마신 상태에서 여러 사람에게 자신의 얼굴을 노출했다. 이전의 치밀한 계획범죄와는 다른 패턴인 것을 알 수 있다. 

2. 범인은 가까운 곳에 있다

전씨는 분명 식당을 나와 택시를 탔다. 택시기사가 유력한 용의선상에 오를 수밖에 없다. 전씨를 태운 택시기사가 나오지 않는 것도 이런 의심을 더욱 키우고 있다.

전씨의 시신이 유기된 곳은 모르는 사람은 입구조차 찾기 힘든 곳이다. 이곳에 자주 왔었거나 이 지역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장소다. 시신이 발견된 곳도 실종 장소(5km)나 전씨 집(3km)과 가깝다.

특히 범인이 술을 마시고 실종 장소 인근에 다시 나타났다는 점도 거주지가 멀지 않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범인이 안마시술소를 나와 택시를 타고 내린 곳은 전씨 집에서 약 200m 거리다. 전씨의 집은 도로 바로 옆에 있는데 이때 납치 등의 피해를 당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3. 목격자들이 본 범인의 인상착의

전씨의 카드로 돈을 찾은 남성이 범인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이 남성의 연령대는 40대 중반에서 50대 초반이다. 키는 166㎝ 정도에 눈이 작고, 피부가 검고, 얼굴형이 둥글며 배가 많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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