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피해자 행세’, 그 속셈은 전쟁 명분 ‘자작극’
  • 이원혁 항일영상역사재단 이사장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8.10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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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혁의 ‘역사의 데자뷰’] 36화 - 제국주의 침략의 꼼수, ‘자작극’

중동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싸고 미국과 이란 사이에 ‘자작극’ 공방이 뜨겁다. 자작극(自作劇)은 전쟁 준비를 끝낸 침략자가 개전의 명분으로 흔히 쓰는 수법이다. 자작극 공방이 치열할수록 그만큼 전쟁이 임박했다고 볼 수도 있는 셈이다. 얼마 전 유조선 6척이 포격 당한 사건을 두고 두 나라는 서로 상대방의 소행이라며 ‘국제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무인정찰기 격추 사건을 놓고도 미국은 ‘이란의 도발’이라며 보복을 선언한 반면, 이란은 “미국이 전쟁 명분을 만들기 위해 자작극을 벌였다”면서 강력 비난하고 나섰다. 이란 언론들도 “과거 미국의 자작극은 셀 수 없이 많다”면서 이번 사태를 ‘제2의 통킹만 사건’으로 규정했다. 

 

“침략의 방아쇠를 당겨라”- 제국주의가 벌인 추악한 전쟁의 서막, ‘자작극’ 
  
‘통킹만 사건’은 미국이 1964년 베트남전 개입의 명분으로 삼은 해상 전투다. 당시 미 하원은 베트남이 미국 함정을 먼저 공격했다는 ‘날조된’ 정보에 근거해 만장일치로 전쟁을 승인했다. 그러다가 미 국방장관인 맥나마라가 자서전을 통해 이 사건이 미군의 자작극임을 고백했던 것이다. 1898년 스페인의 식민지 쿠바에서 미국 전함이 침몰한 사건 또한 자작극 논란에 휩싸였다. 조사 결과로는 선체가 안에서 밖으로 터져있어 외부 공격일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럼에도 미국 정부는 이 사건을 “스페인군의 더러운 배신행위”로 몰아갔다.

정작 전쟁을 부추긴 것은 언론이었다. 뉴욕저널의 사주 윌리암 허스트(1863~1951)는 미 대통령을 비난하는 스페인 외교관의 개인 편지를 빼돌려 신문에 공개했다. 며칠 뒤 메인호가 침몰하자 이 일은 기름에 불을 붙인 꼴이 됐다. 그는 또한 레밍턴이란 유명한 시사만평가를 쿠바로 보내 스페인에 저항하는 주민들의 모습을 그려달라고 요청했다. 한데 너무나 평화로운 현지 분위기에 실망한 레밍턴이 “전쟁은 없을 것이오. 나는 돌아가고 싶소”라는 전보를 보내자 허스트는 “당신이 그림을 제공하면 나는 전쟁을 제공하리다”란 답변을 보내기도 했다. 

‘단순 사고가 아니다’(붉은 줄)라는 뉴욕저널의 왜곡 기사와 허스트. 오른쪽은 침몰한 메인호 모습
‘단순 사고가 아니다’(붉은 줄)라는 뉴욕저널의 왜곡 기사와 허스트. 오른쪽은 침몰한 메인호 모습

메인호 사건이 터지자 허스트는 기다렸다는 듯 “이 배는 적의 지옥 같은 무기로 인해 두 동강이 났다”는 왜곡 보도로 전쟁을 부채질했다. 안그래도 개전의 꼬투리를 잡으려던 미국 정부는 언론들의 '가짜 뉴스'에 힘입어 전쟁에 돌입할 수 있었다. 스페인은 폭침 관련성을 완강히 부인했지만 미국은 이를 묵살하고 푸에르토리코·괌·필리핀 등 스페인 영토를 빼앗아 ‘식민 제국’을 구축했다. 전쟁 선동 기사로 떼돈을 번 허스트 또한 지역 신문들을 사들이고 통신사와 방송국을 자기 손에 두어 미디어 재벌로 성장했다. 메인호 사건의 전모가 밝혀진 뒤에도 ‘허스트 제국’은 건재했고 미국도 이미 빼앗은 식민지를 돌려줄 리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도 나치 독일의 자작극으로 시작됐다. 1939년 8월 31일, 폴란드 국경과 인접한 독일 글라이비츠 마을에 나치 친위대원 8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마침내 출동 명령이 떨어지자 이들은 폴란드 군복으로 갈아입고 라디오 방송 송신소로 달려갔다. 한 대원이 폴란드 말로 “방송국은 자유폴란드가 점령했다. 나치 독일에 맞서 싸우자”는 대독 선전포고를 방송했다. 폴란드가 먼저 독일을 공격한 듯 꾸민 것이다. 그런데 우습게도 비상용 마이크를 쓰다 보니 송출 반경이 짧았고, 잡음 때문에 뒷부분은 잘 들리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여하튼 ‘조작 방송’이 나가자 곧 새벽이 왔고, 히틀러가 대기시킨 탱크 1000여 대는 폴란드 국경을 넘기 시작했다. 

전쟁 준비에도 바쁜 열강들이 굳이 자작극을 꾸미는 이유는 뭘까? 만일 누명만 제대로 씌우면 국민적 공분을 일으켜 전쟁 지지를 얻을 수 있고, 대외적으로는 적의 동맹국들을 분열시키는 이중의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신문·방송을 동원한 국내외 여론전을 펼치며 ‘피해자인 척’ 행동하는 것이다. 훗날 거짓이 밝혀지더라도 이들은 크게 개의치 않는다. 역사란 되돌릴 수 없는 까닭이다. 그래서인지 히틀러는 ‘방송 자작극’ 열흘 전, “그럴듯하든 말든, 어차피 승자는 진실에 대해 심문을 당하지 않는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본래 자작극으로 치자면 일본을 따라갈 나라가 없다. 일제가 벌인 굵직한 침략 전쟁은 대부분 자작극으로 시작되었다. 1876년 강화도조약 때는 운요호 사건을 꾸며 조선 침략의 명분으로 삼았다. 당시 일본의 외교 문서에는 “군함 한두 척을 보내 해로를 측량하는 척 하면서 적을 자극한 뒤에 무력으로 점령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실제로 운요호는 아무런 통보 없이 강화도 앞바다에 나타났고, 이에 조선군이 경고 사격을 가하자 함포를 쏘며 상륙해 살육을 저질렀다. 그러고 나서 미국·중국 등 열강들에게 “평화적 탐측 작업을 조선이 무력으로 방해한 것”이란 주장을 폈다. 자신들이 마치 피해자인 양 보이게 만들고 강제로 조선의 문을 열었던 것이다.

만주사변 현장에 세워진 조형물과 폭파된 남만 철로
만주사변 현장에 세워진 조형물과 폭파된 남만 철로

중국 대륙을 침략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1931년 9월 일본 관동군은 자신들이 관리하는 남만주 철도를 스스로 폭파했다. 그러고는 중국군의 소행이라고 거짓 발표를 한 후 곧바로 공격했다. 수많은 중국인들을 잔혹하게 살해한 만주사변도 이와 같이 자작극으로 서막을 열었던 것이다. 또 4개월 뒤에는 중국인들을 매수해 일본 승려들을 구타하는 사건을 꾸미고 이를 빌미로 상하이 침략에 나섰다. 1937년 중일전쟁 역시 “중국군이 먼저 총을 쐈다”는 엉뚱한 트집을 잡아 대륙 침략의 방아쇠를 당겼다. 


아직도 계속되는 일본의 자작극과 피해자 행세, 그리고 '이유있는' 독도 도발

문제는 일본의 자작극이나 피해자 행세가 제국주의 시대의 유산으로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해 말과 올해 1월 일본은 자국 초계기가 우리 함정을 향해 네 차례나 위협 비행하는 도발을 일으키고도 오히려 자국기가 위협받았다는 억지 주장을 폈다. 2014년 5월에는 중국 CCTV가 “러시아와 합동 훈련 중에 일본 자위대 전투기가 위협 비행했다”며 증거 자료를 공개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아무런 증거 제시없이 자국기가 피해를 입었다며 ‘중국 위협론’을 국내 언론에 퍼트리기도 했다. 

더구나 지난 7월 러시아 군용기가 독도 영공을 침범하자 “일본 영공을 침범했다”면서 러시아는 물론이고 경고 사격을 한 한국 정부에도 항의하는 ‘몰염치한’ 짓도 서슴지 않았다. 일본 영토에서 자위대가 대응해야지 왜 한국군이 총질을 하냐고 따진 것이다. 더욱 기막힌 일은 당시 “자위대 전투기를 긴급 출동시켰다”는 일본 정부의 발표가 얼마 전 거짓으로 들통 난 점이다. 과거 조작·선동·뒤집어씌우기를 앞세워 주변국을 침략한 일제의 구태가 지금도 진행형이란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셈이다.

중국 CCTV
중국 CCTV의 ‘일본 전투기 위협 비행’ 보도와 일본 규탄 촛불집회

중국과 러시아의 영공 침범도 위협적이지만 이처럼 ‘무리하게’ 독도 문제에 끼어드는 일본의 행태는 결코 가벼이 여길 일이 아니다. 헌법을 개정해 ‘전쟁 가능한 나라’로 만들려는 아베 정권의 노림수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일부러 우발적인 사고라도 일으켜 자국민들에게 안보 위기를 부추기고 개헌의 당위성을 확보하려는 속셈이 깔린 것으로 짐작된다. 또 140여 년 전 운요호 사건이나 이번 독도 사태에서 보듯 “군사적 갈등의 책임이 한국에 있다”며 국제 여론전을 펼칠 게 뻔하다. 고도의 선전술을 발휘해 ‘피해자 코스프레’를 벌여온 일본의 상투적인 수법이 어디 가겠는가.

아니나 다를까 지난 6일 일본 교도통신은 일본 정부가 추가 경제제재에 대해 국제 사회에 “보복 조치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선전전을 본격적으로 펼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자유무역 위반이란 반발이 거세지자 다급해진 일본이 또 다시 한국에 책임을 전가하며 피해자 행세에 나선 꼴이다. 이번 사태가 경제와 안보 문제로 옮겨가고 있지만 그 본질은 강제징용 판결에서 비롯된 역사 전쟁이다.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둔갑하려는 일본을 ‘역사프레임’ 속에 꽁꽁 묶어 두고 이들의 떳떳치 못한 과거를 고발하는 국제 여론전에 주력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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