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정권과 日 국민 구별하는 투 트랙 접근법 바람직
  • 윤영덕 조선대 대외협력외래교수(전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 (ls@sisajournal.com)
  • 승인 2019.08.13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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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아베’ 열기, 친일파 청산으로까지 이어져야

일본의 근현대사는 오판으로 빚어온 도발의 역사다. 그 배경에는 늘 한반도가 있었다. 한반도 지배권을 놓고 우리 땅에서 벌인 청일ㆍ러일 전쟁이 시작이었다. 그 승리에 도취해 자신감이 극에 치달은 마지막 오판, 태평양 전쟁이 그들 무력도발의 ‘끝’이었다. 그들의 역사적 판단에는 인류 보편의 항구적 가치를 내다보는 망원경도, 자신의 도발이 불러올 결과를 가늠해보는 현미경도 없었다. 그들 일장기의 붉은 원은 세상을 보는 창이 아니라, 침략전쟁의 핏빛 기록이자 얼룩이었다.

2019년 여름, 일본이 또 한 번의 오판과 도발을 감행했다. 대상은 또다시 한반도다. 무르익어 가는 남북 평화국면을 바라보며 흔들리는 동공을 감추지 못하더니, 초조함이 극에 달한 듯 다시 한 번 대형 사고를 쳤다.

3일 저녁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아베규탄 시민행동 주최로 열린 ‘역사왜곡, 경제침략, 평화위협 아베정권 규탄’ 3차 촛불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8월3일 저녁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아베규탄 시민행동 주최로 열린 ‘역사왜곡, 경제침략, 평화위협 아베정권 규탄’ 3차 촛불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일본이 섞어 버린 정치ㆍ경제ㆍ외교ㆍ안보 문제

아베 정부는 이번 결정에서 한일 양국의 미래를 내다보는 망원경도, 무역 갈등에 따른 두 나라의 경제적 실익을 따져 볼 현미경도 모두 치워버렸다. 정치ㆍ외교 이슈와 국제 무역 관계를 뒤섞으며 우리 대통령을 향해 ‘무례하다’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는다. 한 나라의 외교ㆍ무역 전략이 판세가 기운 내기장기 판을 뒤엎듯 무례하고 치졸하기 그지없다. 아베정부는 강제징용과 무역제재 등의 이슈를 쏟아진 장기알처럼 뒤섞어버렸다. 과연 이 장기알들을 누가 주워 담아야 하는 것인지, 구분할 건 구분하고 묶을 건 묶어서 따져볼 필요가 있자.

이번 사태의 본질은 명확하다. 외교적 이유와 정치적 목적에 따른 경제 도발이다. 아베 총리 스스로도 “한국이 (강제징용) 청구권을 포기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아 (수출 관리) 우대조치를 하지 않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국제 무역ㆍ외교사에 길이 남을 비문(非文)이다. 이런 억지를 통해 아베 정권이 노리는 정치적 목적도 분명하다. 평화국면을 맞는 한반도에 불안감을 조성하고 자국 내 보수층을 결집해 ‘평화헌법’을 개정하려는 것이다.

문제는 외교 현안을 문제 삼아 무역 규제를 하고, 이를 한반도 국면 전환과 자국 내 여론 환기에 활용하려니 일본 정부 스스로도 자꾸 입장이 꼬인다는 데 있다. 7월22일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일본 정부는) 수출규제와 관련해 안보 문제라고 했다가 역사 문제라고 했다가, 다시 또 안보 문제라고 했다가 오늘 또 역사 이슈라고 언급하고 있다”며 “최소한의 선을 지키며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것이 양국 국민을 위해 해야 할 일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강제징용과 평화헌법, 한반도 정세, 경제 규제. 얼핏 동떨어져 보이는 이 네 개의 이슈를 한 데 묶어보면 지금 아베 정권의 심리상태가 엿보인다. 일본이 헷갈려하는 안보와 역사, 두 이슈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전쟁’이다. 강제징용과 평화헌법은 태평양 전쟁의 ‘과정’과 ‘결과’로 궤를 같이 하고, 그 전쟁의 폐허에서 경제 대국으로 올라선 일본 경제의 ‘시작’에는 한국전쟁이 있었다.

70여 년 전, 일본은 ‘전 인류 역사상 타인의 불행으로 가장 완벽하게 행복해질 수 있었던’(일본 문예춘추) 한국전쟁을 경험했다. 그러나 지금 한반도는 역사 상 남북미 대화가 가장 활발한 해빙의 공간이다. 이를 지켜보는 아베 정권은 타인의 행복으로 자신이 완벽하게 불행해질 가까운 미래를 예감하고 있을 것이다.

안보 측면에서 보자면, 핵폭탄으로 잿더미가 됐다가 한국전쟁 특수(特需)로 경제를 일으킨 일본에게 휴전선은 ‘반드시 유지돼야 할’ 자국 안보의 대리 전선이고, 남과 북은 결코 화해해서는 안 될 잠재적 경제대국이다. 정치적으로 보자면, 패전의 대가로 ‘전범국가’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진 평화헌법은 1955년 자민당 창당 이래 ‘반드시 개정해야 할’ 일본 보수층의 오랜 숙명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태평양 전쟁으로 망하고 한국전쟁으로 흥한 일본이 대한민국의 첨단산업을 노린 ‘경제 전쟁’으로 태평양전쟁의 과정과 결과를 지워내려는 행위이기도 하다.

아베 정권은 이런 자신의 불안과 걱정, 숙제를 ‘전략물자 북한 반출’이라는 적반하장의 이유로 둔갑시켜 수출 규제라는 명목으로 한반도에 떠넘기고 있다. 그래서 지금 일본의 무역 규제는 안보 이슈이자, 역사 문제이고, 정치 문제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8월13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일본 수출규제 대응 당정청 상황점검 및 대책위원회 1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8월13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일본 수출규제 대응 당정청 상황점검 및 대책위원회 1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우리 정부와 국민의 성숙한 ‘투 트랙’ 접근

외교와 경제 문제를 뒤섞어버린 일본에 비해 우리 정부ㆍ청와대의 대응은 합리적이고 단호하다. 청와대는 대일 관계의 기본 전략을 ‘과거사의 투 트랙’으로 나누어 외교와 경제 문제를 구분하자는 기본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일본의 경제 보복이 본격 시작된 이후의 외교전도 투 트랙이다. 일본에 대한 단호한 대처로 국민의 힘을 모아내는 한편 한일 관계의 파국을 막기 위한 대화 채널을 열어두고 있다.

우리 국민의 대응은 뜨겁고도 따뜻하다. 아베 정권과 일본 국민을 구별하는 성숙한 투 트랙의 접근법을 보여준다. ‘NO JAPAN’의 불매 운동이 들불처럼 퍼져나가던 지난 7월 말, 광주에서 열린 세계수영선수권대회를 찾은 일본인 여행작가 테즈카씨는 자신이 직접 겪은 ‘눈물 핑’ 돌았던 에피소드를 인터넷에 올려 화제가 됐다. 그는 “세토 다이야 선수가 금메달을 땄을 때, 옆에 있던 한국인 남성이 웃는 얼굴로 ‘2관왕 축하한다’는 말을 스마트폰에 번역해 보여줬다”면서 “최근의 좋지 않은 한․일 관계 속에서 그런 말을 듣자 무심코 눈물이 날 뻔했다”고 밝혔다. 또 세토 다이야 선수는 시상식에서 한국말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해 관중들로부터 큰 환호를 받았다.

일본에 대한 반감을 기본 정서로 하는 불매운동의 ‘뜨거움’이 일본 국민을 대하는 ‘따뜻함’을 침범하지 않는다는 것은 진정 위대하고 감동적인 ‘구분’이다. 촛불혁명으로 평화적 정권 교체를 성공해 본 시민들이 보여 줄 수 있는 남다른 ‘격’이다. 자칫 맹목으로 흐를 수 있는 일본제품 불매운동의 열기가 일시적, 감정적인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누구도 승자가 되기 어려운 무역전쟁에서 우리 국민의 승리를 낙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제는 한일 갈등을 빚을 때마다 어떻게든 일본의 입장을 이해해야 직성이 풀리는 친일파 인사들이다. 억지스러운 일본의 주장을 껴안으려니 무지에 가까운 주장들이 쏟아져 나온다.

한 보수성향 변호사는 TV 토론 프로그램에서 “일본에서 볼 때는 사법부든 입법부든 행정부든 다 대한민국”이라며 “정부가 책임 회피할 게 아니고, 판결금을 주든지 아니면 반반씩 하든지 이런 적극적인 해결책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강제징용 개인청구권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물은 것이다. 대한민국 민주정치의 근간인 3권 분립의 가치를 부정하면서 일본의 입장을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일본의 어떤 입장을 우리 정부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들어보니 이번에는 일본 ‘정부’와 아베 ‘정권’을 구별해 대응하자는 이야기가 나온다. 일본 보수층 결집 등의 정치적인 이유로 개인 청구권 소멸을 주장하는 아베 ‘정권’과는 별개로 개인 청구권의 실체를 인정하는 일본 ‘정부(사법부)’ 입장을 구분해 대응했어야 하는데 정부가 실기(失期)했다는 것이다. 

일제강제징용 피해자 유가족들이 지난해 11월2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상대 손해배상청구 소송 선고 공판 후 만세를 외치고 있다.
일제강제징용 피해자 유가족들이 지난해 11월2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상대 손해배상청구 소송 선고 공판 후 만세를 외치고 있다. 일본은 부인하고 있지만, 이 재판으로 일본의 경제보복이 시작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시사저널 최준필

 

‘NO 친일!’ 정치소비자 운동으로 이어져야

정말 기가 막히는 이야기다. 현재 아베 정권은 일본의 ‘정통 보수 본류’와도 구분되는 극우 세력이며, 그 핵심 조직인  ‘일본회의’ 관련 인사가 내각 구성원의 80%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무엇보다 창당 이래 단 두 차례, 5년 8개월을 제외하고 58년 넘게 집권하고 있는 사실 상 자민당 일당독재의 이른바 ‘55년 체제’ 속에서 정권과 정부를 구분하는 것이 가능하거나 의미있는 일인지 되묻고 싶다.

이제는 단호한 심판이 필요하다. 한․일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친일의 본색을 드러내는 이들부터 축출해야 한다. 진보와 보수를 가르자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진정한 보수는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최우선 가치로 두는 이들이다.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한 백범 김구 선생은 철저한 반공주의자였으며, 문화강국을 통해 세계 1등 민족으로 거듭나자고 주장한 보수적 민족주의자였다.

무늬만 보수, 쭉정이 보수를 골라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는 친일이 가장 큰 기준이다. 다행히 보수의 외피를 쓰고 숨어있던 친일 인사들이 속속 자기 색깔을 드러내고 있다.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가짜 보수, 친일 보수를 축출하는 정치 소비자운동으로 확산돼야 할 절호의 기회다. 우리는 촛불혁명으로 평화적 정권 교체에 성공한 위대한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해방 이후 전례 없이 뜨겁게 달아오른 ‘NO 아베’의 열기가 지금껏 한 번도 성공해보지 못한 친일파 청산으로 이어져야 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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