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선 ‘기술강국’ 일본 못따라 잡는다”
  • 권한상 부경대 신소재시스템공학과 교수‧일본 도호쿠대 공학박사 (kwon13@pknu.ac.kr)
  • 승인 2019.08.15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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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계 국책과제 신청자도, 심사위원도 ‘비전문가’ 투성
한 대덕연구단지 실험실. 기사와 관련 없음. ⓒ연합포토
한 대덕연구단지 실험실. 기사와 관련 없음. ⓒ연합포토
권한상 부경대 교수
권한상 부경대 교수

“박사님 이번 신소재 개발 국책과제 전문가 심사위원으로 참여 가능하신지요?” “죄송합니다만 올해의 직무 관련 동일 기관 심사위원 참석 횟수를 초과할 것 같아 어려울 것 같습니다.”

결국 국가연구과제 평가기관의 주무관은 전문가 심사위원을 찾을 수 없자 공학박사지만 신소재 관련 분야와 다소 거리가 있는 연구자들에게도 심사를 부탁하게 된다.

심사위원 의뢰를 받은 연구자 역시 심사를 보기가 애매하지만 거절할 경우 향후 본인 과제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비전문가지만 전문가 행세를 하며 심사위원으로 참석한다. 국가의 소중한 예산 집행이 결국 비전문가에게 맡겨지는 순간이다. 하지만 비전문가에 의한 국책과제 심사보다 더욱 더 심각한 것은, 국책과제라면 본인의 전공과 상관없더라도 유사성을 포장해 무조건 넣고 보자는 식의 일부 연구자들의 그릇된 도덕적 행태다. 이러한 악순환은 결국 국책과제를 신청하는 연구자도 비전문가이며 이를 심사하는 인력 역시 결국 비전문가가 담당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비전문가가 전문가로 버젓이 행세

필자가 프랑스 국립과학원에 근무했던 시절 전공분야 국가과제를 신청하고 심사를 받으러 갔을 때 무엇보다도 놀라웠던 일은, 규모가 큰 국책과제가 아니었음에도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연구자들은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관련 분야의 대가들이었다. 이러한 심사위원 인력 풀에선 설령 과제가 선정되지 않더라도 참가자들에겐 명확한 객관적 이유와 분석이 제시된다. 적어도 비전문가에 의한 주관적 심사는 일어나지 않기에 선정된 과제 역시 본질에 맞게 진행된다. 그 결과 역시 소중한 데이터베이스가 될 수 있다.

다만 대한민국에서 과연 과학기술 대가들이 국가를 위해 본인의 소중한 시간을 희생하며 작은 국책과제 심사에 관심을 가질지에 대해선 씁쓸한 의문이 남는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가 2017년 1월19일 오후 서울 광진구 대원제약 연구소를 방문해 실험실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기사와 관련 없음. ⓒ연합포토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가 2017년 1월19일 오후 서울 광진구 대원제약 연구소를 방문해 실험실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기사와 관련 없음. ⓒ연합포토

최근 일본의 원천기술관련 소재부품군의 수출입 규제에 대한 내용이 연일 국가적 이슈가 되고 있다. 이러한 이슈는 꼭 일본만이 아니라 향후 또 다른 원천소재기술 선진국과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농후한 문제다. 즉, 원천소재기술 확보는 국가적으로 꼭 필요한 요소로서 무엇보다도 지속적인 투자와 관심이 필요하다.

다만 지금의 대한민국 과학기술계의 인력 풀과 그 운용 실태로는 효율적인 원천소재기술 확보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현재의 대한민국 과학기술 인력 풀의 매칭은 과학기술의 특수성이 결여된 법령 제정으로 인해서 심사위원 전문성보다는 심사위원 섭외에 급급한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줄줄 새는 국가 연구과제 예산

이러한 원천적인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선 국가 연구과제 신청 시 연구 책임자들은 적어도 자신의 전공과 유사도가 높은 연구과제에 신청을 해야 하고 심사 역시 관련 분야 전문가에 의한 객관적인 평가가 진행돼야 한다.

관련 전공분야에 대한 판단의 평가는 사실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국책과제의 연구책임자는 박사급 인력이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즉, 신청하는 국가 연구과제가 본인의 학위 논문과 유사성이 있는지 설령 학위 연구와 매칭이 안되더라도 적어도 3년 이상 관련 분야 연구를 수행해 전문성을 확보한 경력이 있는 지만 파악 하더라도 비전문가가 국책과제를 수주하는 문제는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국내 박사학위자의 연구주제는 해당 학위 수여 대학에 모두 전산화돼 있다. 해외 학위자들 역시 학술진흥재단에서 발행하는 박사학위 신고필증으로 관리가 되고 있다. 또한 심사위원들의 전문성 역시 이러한 학위논문의 주제로부터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관련 연구분야 경력 역시 출판 논문과 그동안 수행한 국가연구과제들이 있다면 더욱 더 수월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전문성을 띤 인력 풀 시스템의 구축과 과학기술계의 특수성이 고려된 법령이 수반된다면 적어도 비전문가에 의한 비전문가의 심사라는 병폐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국가연구과제 시스템에서 생산되는 연구 결과물은 대한민국을 원천소재기술 강국으로 도약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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