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일거수일투족에 창원공단 ‘초비상’
  • 부산경남취재본부 이상욱 기자 (sisa524@sisajournal.com)
  • 승인 2019.08.18 14:00
  • 호수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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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수출규제에 중소기업들 ‘공포’
“뭐가 규제 대상 포함되나”

밸브샤프트를 생산하는 경남 창원의 중소 자동차부품 제조업체 A사는 핵심소재가 일본 수출규제에 걸릴 품목인지 예측하느라 분주하다. 이 업체 관계자는 “자동차부품에 들어가는 특수소재는 거의 100% 일본 수입에 의존한다”며 “일본 정부가 무슨 품목을 수출규제 대상으로 정할지 정확히 알 수 없어 초조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본 의존도가 90%를 넘는 품목들을 수입하는 창원국가산업단지의 기계·화학·자동차부품 기업들은 이번 화이트리스트 제외로 초비상 상황이다. 연간 매출 360억원 정도인 A사는 핵심 제조설비 증설 계획에 차질을 빚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수치제어선반 프로그램이 대부분 일본 제품이고, 오는 11월까지 구축할 신규 생산라인의 제조장비도 일본산이기 때문이다. 이 업체 관계자는 “최대 3개월가량의 재고를 보유하고 있는데, 일본의 수출규제가 장기화되면 12월 납품 기한을 맞추지 못할 것 같다”고 곤혹스러워했다.

특히 A사는 핵심 생산설비인 수치제어반(MTI 842510, HS 853710)을 전량 일본 기업으로부터 수입해 사용하고 있다. 이 설비가 고장 날 경우 수리하기 위해 부품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우려다.

창원국가산업단지 전경 ©연합뉴스
창원국가산업단지 전경 ©연합뉴스

일본, ‘수치제어반’ 추가 규제에 넣을 경우 더 큰 피해

창원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창원국가산업단지 기업의 수치제어반 일본산 비중은 91.3%에 달한다. 이 때문에 정밀기계를 생산하는 공작기계 기업들은 비상이다. 이들은 일본 의존도가 높은 수치제어반 수입에 타격이 있을까 우려하고 있다. 수치제어반은 공작기계의 ‘두뇌’ 역할을 하는데, 현재 업계는 일본 ‘화낙’에서 대부분 공급받고 있다. 창원은 수치제어반을 핵심으로 하는 공작기계 생산공장이 밀집해 있다. 지난해 수치제어반을 활용한 창원의 공작기계 수출은 14억5000만 달러였고, 이는 창원 지역 수출의 9%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높다.

일본이 수치제어반을 개별허가 품목에 넣어 수출을 까다롭게 할 경우 창원국가산업단지 내 공작기계 업계는 피해가 불가피하다. 업계는 값비싼 독일 제품을 수입하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지만, 일본산 수치제어반을 못 쓸 경우 고객사의 승인을 다시 받아야 하는 이중고를 감내해야 한다. 공작기계 업계 관계자는 “중국이나 대만을 우회해 수입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가능할지 미지수”라고 말했다.

경남 창원시도 최근 ‘일본 수출규제 대응본부’를 가동하는 등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의 불확실성에 대해 우려를 감추지 않았다. 창원시 관계자는 “창원 지역 기업 상당수가 일본 소재·부품을 수입하고 있다”면서 “추가 규제품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면서 우리나라에 대한 전략물자 수출 방식이 개별허가로 엄격해지면서다.

특히 창원시와 기업들이 육성 의지를 보이고 있는 첨단 소재, 소재 가공 등 주력 산업들이 일본 정부의 이번 조치로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뼈아프다. 전략물자관리원에 따르면 일본의 전략물자 통제 대상 품목으로는 알루미늄 화합물 합금, 금속 자성 재료, 합금 또는 그 분말의 생산용 장비 등 첨단 소재 53종이 있다. 또한 볼베어링 또는 롤러베어링, 터닝 가공 공작기계, 밀링 가공 공작기계, 3차원 측정기 등 소재 가공 37종도 포함되어 있다. 신호분석기, 레지스트, 반도체 기판 등 전자 59종 등도 있다. 급조 폭발물 방지 장비, 방음 장치 또는 자기 베어링 같은 일부 품목은 전략물자 중 민감품목에 해당된다. 전략물자 중 민감품목은 화이트리스트 국가에 수출하는 경우에도 개별허가를 받아야 한다.

수치제어반 부품이 적용된 고속 머시닝센터를 업계 관계자들이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수치제어반 부품이 적용된 고속 머시닝센터를 업계 관계자들이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8월28일에 나올 日 ‘개별허가’ 품목 리스트에 관심 집중

게다가 우리나라를 수출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일본의 결정은 8월28일부터 시행된다. 당장 이달 말부터는 일본에서 소재 등을 수입하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일본 정부의 심사, 허가를 받아야 한다. 소재, 부품, 장비 도입 절차가 현재보다 최장 90일가량 늦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창원국가산업단지 내 중소기업 사이에선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이들은 자체 대응책이 사실상 없는 등 대기업에 비해 상황이 나쁘다. 그나마 중견기업들은 재고 확보와 대체 수입처 모색을 위해 직원들을 현지에 보내는 등 분주하다. 하지만 거래처 다변화에 성공한다고 해도 그에 맞게 제조 라인을 수정해야 하기 때문에 정상화까지 최소 1년 이상 걸린다. 자동차부품 업체 관계자는 “일본 쪽에서 핵심소재들을 구매하고 있는데, 이게 막히면 일부 공장을 멈춰야 한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에 대한 일본 정부의 소재·부품 수출통제가 표면화될 경우, 공작기계 등 창원국가산업단지 주력 산업의 생산 차질이 나타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이로 인한 산업현장의 생산 감소가 현실화될 경우, 창원 지역 경제에 타격이 가시화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 창원 지역 대학 교수는 “현재로선 일본 수출규제에 따른 수입 제한의 영향이 창원 지역 기업에 어느 정도 미칠지는 가늠하기 어렵다”면서도 “공작기계·자동차·전자부품 등 창원 업계에 뼈아픈 품목이 화이트리스트 제재 품목에 포함된다면, 생산 차질에 이어 고용 등 경제적 파급효과가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가 8월28일 어떤 ‘개별허가’ 품목 리스트를 내놓을지 노동계도 긴장하고 있다. 한 노조 관계자는 “중소기업들은 일본이 수출을 규제하면 당장 생산 위기에 빠질 것”이라며 “한·일 갈등이 빨리 해결돼 고용 불안이 해소되면 좋겠다”고 했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제조업 부문에서 노동 수요를 유지할 수 있을지를 걱정하는 목소리다.

식당 등 서비스 업체도 일본의 수출규제를 우려하긴 마찬가지다. 제조업의 고용 악화가 숙박·음식업 등 서비스업 부진으로 전이되기 때문이다. 한 창원 지역 소상공인협회 관계자는 “경기침체로 가뜩이나 어려운 소상공인들에게 더 큰 부담이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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