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갈등’에 대처하는 미국의 속내
  • 김원식 국제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8.16 17:00
  • 호수 155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본질은 사라지고 ‘지소미아’만 남아…겉으론 ‘창의적 해법’ 강조, 사실상 일본 손

“미국이 지금 다소 관망하는 자세를 보이는 것은 단지 한·일 갈등이 완화되기를 기다리는 것일 뿐이다. 미국은 절대로 ‘지소미아(GSOMIA·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가 파기되도록 방치하지는 않을 것이다.”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한·일 관계에 관해 워싱턴의 유력한 보수 싱크탱크의 한 관계자가 내놓은 말이다.

한·일 갈등에 관해 미국이 겉으로는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 같지만, 한국이 ‘지소미아’ 파기 카드를 꺼내들자 내심 한국을 압박하며 일본 편을 들고 있다는 워싱턴의 기류가 그대로 드러난다. 사실 한·일 갈등은 미국이 가장 바라지 않는 시나리오 중 하나다. 상호 수출규제 등 양국의 경제적인 충돌로 인해 발생하는 손실은 별도로 하더라도, 자칫 안보적인 측면에서도 대립한다면, 북·중·러 연합을 견제해야 하는 한·미·일 연합체제가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가장 상징적인 이슈가 바로 지소미아의 연장 여부다.

6월28일 오사카 G20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가 악수하며 활짝 웃고 있다. ⓒ연합뉴스
6월28일 오사카 G20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가 악수하며 활짝 웃고 있다. ⓒ연합뉴스

워싱턴 정가와 외교가는 이미 日에 기울어

2016년 11월에 체결된 이 협정은 특히,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관한 정보를 법적으로도 한·일이 상호 공유할 수 있도록 한 군사협정이다. 양국이 특별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이상 1년 단위로 자동 연장되지만, 올해 7월 일본이 수출규제 조치를 발표하면서 양국 관계가 얼어붙자 상황이 달라졌다. 일본이 신뢰 부족을 이유로 수출규제 조치를 단행하자, 한국도 신뢰가 없는 국가와 군사협정을 유지할 필요가 있느냐며 지소미아 파기 가능성을 꺼내들었다. 하지만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만나 협정 유지를 강하게 요구한 데 이어, 최근 방한한 마크 에스퍼 미 국방부 장관도 우리 정부에 협정을 파기하지 말 것을 강하게 압박했다. 한·일 간의 갈등이 악화하고 여기에 더해 군사·안보적인 측면으로까지 확대돼 한·미·일 삼각 공조체제가 무너지는 것은 절대 방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워싱턴 정가나 외교가도 겉으로는 한·일 갈등이 확대되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하면서, 속으로는 이미 일본의 논리에 기울어진 상황이다. 특히 지소미아 문제가 불거지자, 한·일 갈등의 본질적인 원인 규명은 사라지고 단지 한국의 대응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공개적으로 커지고 있다. 대표적인 지일(知日) 싱크탱크인 사사카와 평화재단의 대표를 맡고 있는 미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 출신 제임스 줌월트는 ‘미국의소리(VOA)’에서 “한국이 지소미아 협정을 파기하면 동북아 역내 미국의 이익에 심각한 피해를 입힐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일본을 넘어 미국의 이익에도 피해를 줄 것이라고 경고한 셈이다. 더 심각한 것은 지한파 싱크탱크도 마찬가지 기류라는 점이다. 대표적인 지한(知韓) 싱크탱크인 한미경제연구소의 부소장을 맡고 있는 주한 미국 부대사 출신 마크 토콜라도 이 매체에서 “지소미아가 한·일 갈등 상황에서 테이블에 올라와서는 안 된다”면서 “이 협정은 한·미·일 3국에도 모두 유용한 만큼 계속 유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어정쩡한 자세를 보이던 미 행정부도 지소미아 문제만큼은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나섰다. 지난 8월3일, 미 국무부 당국자는 언론이 이 문제에 관해 질의하자 “현재 한·일 간의 긴장이 한·미·일 협력의 모든 측면에 적용되지 않는다”면서 “한·미·일은 서로 의존하고 있다. 그중 어느 하나라도 상실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며 서로를 방어하는 능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다소 정제된 목소리지만, 한국의 대응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그는 또 “이 관계가 무너지면 미국의 안보와 이해관계도 위태로워진다는 것”이라며 한국 정부를 압박하는 발언도 내놨다. 한국과 일본을 담당하는 마크 내퍼 미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도 지난 7일, “3개국(한·미·일)은 특히, 북한과 러시아, 중국이 제기한 공동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면서 “이들은 한·일 관계의 최근 갈등을 이용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더는 우리 3개국 사이에 끼어들도록 해서는 안 된다”고 속내를 밝혔다.

8월2일 아세안+3 외교장관 회의에서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기념촬영 후 강경화 장관과 고노 외무상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연합뉴스
8월2일 아세안+3 외교장관 회의에서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기념촬영 후 강경화 장관과 고노 외무상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실상 일본 편?” 질문에 美 국무부 ‘침묵’

이에 더해 8월초에는 미 국무부 정책기획국의 고위 인사가 직접 한국 외교부를 방문해 지소미아 파기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이 서로 창의적인 해법(creative solutions)의 공간을 찾기 바란다”는 공식적인 입장의 뒤편에서 사실상 한국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지난 8월12일, 필자가 “미국이 최소한 관여(engagement)라도 한다면, 무엇이 창의적인 해법인지는 내놓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미 국무부에 질의하자, 한 관계자는 “할 말이 없다”라며 아무런 답변도 하지 못했다. 필자가 재차 “속으로는 일본 편을 들면서 겉으로만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 아닌가”라고 질문을 이어가도 그는 묵묵부답이었다. 필자의 전화를 먼저 끊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분명한 입장을 밝힐 수도 없는 난처함이 그대로 묻어났다.

이에 대해 워싱턴의 한 보수 싱크탱크에 속한 한반도 전문가는 “미국의 입장은 분명하다”면서 “강제징용 배상 문제가 제기되면서 1965년 체결된 한·일 협정이 흔들리고 또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마저도 흔들리는 상황을 싫어한다”고 잘라 말했다. 쉽게 말해 한·일 양국에 현재의 판을 깨지 말고 ‘현상 유지’를 하라는 것이다. 그는 “미국은 현실적으로 이번 한·일 갈등에 관해 일본의 손을 들어주고 있지만, 다만 이를 대놓고 공식화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오히려 불에 기름을 부을까봐 한국 눈치도 보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최근 한국에서 반일 감정이 폭발하고 있는 것을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미국이 공식적으로는 자제하고 있지만, 이미 한국 정부와 막후나 물밑 대화를 통해 한·일 공조를 깨지 말라고 강한 압력을 넣고 있다는 얘기가 정설로 통하고 있다. 한·미·일 삼각 공조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지소미아 문제에 유독 미국이 완강한 입장을 천명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