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 영화’? 세상에 사소한 이야기는 없다
  •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8.17 12:00
  • 호수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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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 가치가 있는 영화, 윤가은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우리집》

시작에 《우리들》(2016)이 있었다. 느닷없이 가까워지고, 또 정확히 알 수 없는 이유로 서로 멀어지기도 하는 아이들의 세계를 내밀하게 들여다본 영화다. 여기에는 ‘우리’라는 관계를 맺기 위해 우리 모두가 느꼈던 인생 최초의 당혹감이 또렷하게 새겨져 있다. 어른들이 모르는,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오래전 겪었으나 이미 잊어버리고만 시절의 풍경이다. 초등학생들의 이야기지만 어른들의 마음까지 사로잡는 작품을 만든 이는 윤가은 감독. 《우리들》은 ‘아이들이 주인공인 영화는 안된다’는 오래된 편견을 깨고 그해 독립영화 최고 화제작이 됐다.

《우리집》은 윤 감독이 두 번째로 내놓은 장편영화다. 이번에도 초등학생이 주인공이다. 전작을 답습한다고 오해받을 여지도 있지만, 차이는 분명하다. 《우리들》이 관계를 맺어나가는 아이들 사이의 감정 그 자체가 중심이었다면, 《우리집》은 제목대로 ‘집’의 문제가 전면에 나선다. 자기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가족의 문제들을 감당하는 아이들의 이야기. 윤가은 감독의 신작은 또 한 번 주목해야 할 가치가 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롯데엔터테인먼트

어른들은 모르는, 이토록 세밀한 세계

열두 살 하나(김나연)는 집에서 이리저리 눈치 보기 바쁘다. 매일 다투는 부모님 때문이다. 중학생 오빠는 부모님을 빨리 화해시키고 싶은 하나의 마음을 잘 몰라주는 것 같다.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하나는 동네에서 우연히 유미(김시아)와 유진(주예림) 자매를 만나 가까워진다. 이사를 자주 다녀야 하는 유미 자매는 하나와는 또 다른 고민을 안고 있다. 부모님이 일 때문에 지방에 내려간 사이, 유미네 집에는 부동산 업자들과 집주인이 드나들기 시작한다. 한쪽은 다툼으로 와해되기 직전이고, 다른 한쪽은 이사로 또다시 잃게 될 것 같은 ‘우리집’을 지키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들은 집을 지키기 위한 모험을 감행한다.

《우리집》에서 아이들에게 주어진 숙제는 ‘나 아닌 외부의 문제’다. 《우리들》에서 사이가 멀어지려는 친구 때문에 속앓이를 해야 했던 주인공과 달리, 《우리집》의 주인공들은 부모의 사이나 재정 상태 때문에 고민을 안고 있다. 첫 장면, 하나의 얼굴에서 출발해 다투고 있는 부모와 집 안의 모습을 비추는 것으로 점점 넓어지는 카메라는 이 영화가 아이들을 둘러싼 풍경 전체를 주목할 것임을 암시한다. 영화는 외부 갈등과 문제에 부딪친 아이들이 고민과 힘을 합쳐 내리는 어떤 선택들을 따라간다.

감독은 아이들을 확실한 행동과 생각의 주체로 그린다. 매체에서 보통 어린이 배우를 보호해야 할 대상이거나, 어른을 각성하게 만드는 주변 캐릭터로 바라보는 시각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다.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가족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할까. 고민 없이 마냥 해맑기만 할까. 마음을 끓이는 순간들이 없을까. 선택의 주체가 될 수 없을까. 《우리집》은 분명하게 ‘아니’라고 말하는 영화다. 영화 속 아이들은 자기 자신보다 타인의 감정을 먼저 생각하고,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정성을 발휘해 상황을 바꾸기 위해 애쓴다. 남몰래 마음을 쓰며 불안을 겪는 속 깊은 여자아이들의 세계. 감독은 작지만 깊고 넓은 그 세계를 충실하게 들여다본다.

아이들의 키에 맞춰 내려간 카메라의 위치는 세상을 조금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좋은 장치다. 그 덕에 가족에게 위기가 생겼을 때 아이들이 느끼는 불안, 좋은 친구를 사귀었을 때의 행복,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 등이 자연스럽고도 확실하게 다가온다. 윤가은 감독은 “어른들이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것만큼 주인공 또래의 아이들도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게 꿈”이라고 말한다. 그의 영화에서 크고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들은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닌 이야기다. ‘애들 얘기’라고 가볍게 치부될 만한 것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이들의 세계를 바라보고 영화에 담는 감독의 생각은 확고하다. “그 사소함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세계가 전부 흔들리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네가 느끼는 감정은 사소하지 않아, 아주 중요해’라는 이야기를 해 주고 싶다”는 것이 감독의 말이다.

영화 《우리집》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우리집》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아이들이기 이전에 현장의 배우

촬영 방식도 눈여겨볼 만하다. 윤가은 감독 영화 속 배우들의 연기는 놀랍도록 자연스럽다. 비결은 리허설이다. 《우리집》의 배우들은 촬영 전 상황극에 가까운 리허설을 여러 번 거쳤다. 감독이 전작부터 꾸준히 써온 방식이다. 시나리오는 존재하지만, 배우들에게는 대사를 외우게 하는 대신 상황을 충분히 설명해 주며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말할 수 있는 여지를 줬다. 마치 카메라가 없는 듯 배우들이 생생하게 연기할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배우들은 감독이나 제작진이 미처 떠올리지 못했던 디테일이나 더 좋은 방향을 제시하기도 한다. 실제로 완성된 영화에는 배역을 연기하는 모습뿐 아니라, 어떤 상황을 받아들이는 배우의 실제 반응이 조금씩 뒤섞여 들어갔다.

현장에서 감독이 스태프들에게 직접 만들어 나눠줬다는 촬영 수칙에서는 아이들을 어른과 동등한 시선에서 대하고 바라보도록 배려하는 그의 자세가 드러난다. ‘배우’를 대하는 당연한 방식이지만, 어린이 배우라는 이유로 여느 현장에서 무심코 잘 지켜지지 않는 것들이다. ‘어린이 배우들과 함께 하는 성인분들께 드리는 당부의 말’이라는 부제가 적힌 이 수칙에는 신체 접촉, 칭찬의 방식, 건강과 안전 문제 등등에 대한 당부가 적혀 있다. 감독이 《우리들》을 찍으면서 자기 자신도 무심코 지키지 못한 것들이나 놓쳤던 것들을 챙기기 위해 만들어 공유했다.

어떤 작품을 보고 나서 누구도 ‘이 영화에는 왜 성인 배우만 나오냐’고 반문하지 않는다. 같은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윤가은 감독에게 ‘왜 계속 어린이가 주인공인 영화를 찍냐’고 물어야 할 이유는 없다. 영화는 하나의 세계를 보여주는 장치다.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한 그 세계에 접근하지 않아야 할 이유는 없다. 《우리집》은 그 좋은 증거이고 말이다.

 

윤가은 감독의 영화들

감독은 꾸준히 성인이 되기 전의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만들었다. 단편 《사루비아의 맛》(2009)과 《손님》(2011)은 청소년기 소녀들을 다뤘다. 전자는 친하지 않은 두 소녀가 함께 보내는 짧은 시간을, 후자는 아빠와 불륜을 저지른 여자의 집에 들이닥쳐 그 집의 어린 남매를 마주하는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다. 단편 《콩나물》(2013)은 클레르몽페랑단편영화제 국제경쟁부문에서 그랑프리, 베를린국제영화제 제너레이션부문(아동, 청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성장영화 부문) 단편영화상을 수상하며 감독의 이름과 작업의 주목도를 높인 작품이다. 일곱 살 아이가 엄마의 심부름으로 콩나물을 사러 가면서 겪는 모험을 느슨한 판타지로 엮었다. 첫 번째 장편 《우리들》은 전 세계 30여 개 이상 영화제에 초청되며 사랑받았다. 국내에서는 독립영화 박스오피스에선 이례적으로 5만 관객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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