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와 에레나 할머니
  • 노혜경 시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8.17 17:00
  • 호수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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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혜경의 시시한 페미니즘] ‘미군 위안부’가 무슨 말인가요 ①
노혜경 시인
노혜경 시인

몇 년 전 인기 있었던 JTBC 드라마 《유나의 거리》에 등장한 인상적인 노래가 있다. 극 중 소매치기 출신 양순(오나라 분)이 노래방을 운영하던 남편의 종용으로 도우미 대신 손님방에 들어가서 부르는 《에레나가 된 순이》라는 노래다. ‘미군 위안부’가 된 순이의 애환을 그린 노래였다는 것이 정설이다. 극 중 양순의 처지와 노래에 담긴 사연이 어우러지며 슬픈 여운이 오래 남았던 장면이다. 이 노래가 갑자기 생각난 것은, 이영훈씨가 자신의 책 《반일종족주의》에서 말했다는 다음 구절 때문이다.

 

“‘나는 일본군 위안부였다’고 고백한 여인이 170여 명이나 됩니다만, ‘나는 미군 위안부였다’고 고백한 여인은 그 수가 불과 두세 명입니다.”(이영훈)

 

일본군 ‘위안부’는 알겠는데 미군 ‘위안부’는 또 뭔가 하실 분들이 있을 줄 안다. 더 끔찍한 이름도 있다. 양공주, 양색시, 심지어 양갈보. 그러니까 에레나다. 에레나를 왜 미군 위안부라 부를까.

위안부라는 명칭은 알려져 있다시피 일본이 전시에 설치운영했던 위안소와 결부되어 있으나, 전용되어 국가가 동원하여 성매매 피해를 당한 여성들을 부르는 명칭이 되었다. 2014년 공식 문서엔 ‘외국군인을 상대로 성적 서어비스를 제공하는 여성’이라고 되어 있다.

미군정은 1948년 2월에 공창제를 폐지하고 성매매를 불법화한 바 있다. 그러나 미군정은 자신들을 위한 공창은 사실상 묵인하고 활용했으며, 한국전쟁 당시 한국군은 한국과 미국 군인들을 위한 위안소를 설치 운영했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미군을 계속 주둔하게 하기 위한 방편으로 미군 상대 성매매 업소들을 존속시키고 다양한 폭력을 조장, 방임해 왔다. 1961년에 이미 윤락행위 방지법을 제정하고서도 성매매를 허용하는 특수지구(미군 기지촌)를 미군부대 주변에 설치하고 성매매를 외화벌이 수단으로까지 이용했다. 자료에 의하면, 1960년대에는 한국 GNP의 약 25%를 기지촌 여성들이 성매매로 벌어들였다고 한다. 이 기지촌 여성들이 바로 미군 위안부인 셈이다.

1980년대 동두천 기지촌의 미군 전용 클럽 ⓒ연합뉴스
1980년대 동두천 기지촌의 미군 전용 클럽 ⓒ연합뉴스

‘일본군 위안부’에만 관심 있고, ‘미군 위안부’엔 무관심하다?

이영훈씨가 저런 이야기를 한 의도는 한국인들이 다 같은 위안부인데도 ‘일본군 위안부’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미군 위안부’에는 무관심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그 이유가 바로 한국인들의 반일정서 때문이라는 거다. 굳이 미군 ‘위안부’라는 명칭을 사용한 의도 또한 일본군만 위안부 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정말로 한국 사람들, 특히 페미니스트들이 미군 위안부에는 관심도 없어서 그분들이 ‘나는 미군 위안부였다’고 고백조차 못한 걸까? 그동안 미군 범죄 반대운동 등을 통해 그분들을 보호 지원하려는 노력은 반일감정 때문이었던 걸까. 기지촌 문제가 국가 책임임을 밝히고 피해자들을 도우려는 노력은 반일감정 때문인 걸까.

이영훈씨의 주장과 달리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한 한국인은 237명, 미군 ‘위안부’로 스스로를 드러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최소한으로 잡아도 122명. 2014년 기지촌 성매매 피해자 국가배상 청구소송 원고의 숫자다. 이 소송은 “국가가 포주”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는 끔찍한 사연을 담고 있고, 원고가 승소했다. 그동안의 많은 사람의 관심과 노력의 결과다. 바로 이 재판에서 미군 위안부가 공식 명칭으로 사용된다. 두세 명이라니! ※다음 호에 ②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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