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로 난도질하고 군화발로 짓밟은 범인
  • 정락인 객원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8.20 08:00
  • 호수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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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락인의 사건추적]  2005년 여수 돌산도 컨테이너 살인 사건

전남 여수시 돌산읍에는 국내에서 아홉 번째로 큰 섬 ‘돌산도’가 있다. 여수 시내와 돌산도 사이에는 길이 450m의 ‘돌산대교’가 연결돼 있다. 인심 좋고 아름다운 이 섬에는 억울하게 죽은 한 남성의 원혼이 14년째 떠돌고 있다.

굴삭기 기사인 이승래씨(35)는 살던 집이 도로에 편입되자 당장 머물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의 누나는 매형과 함께 돌산읍 우두리에서 중장비 학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갈 곳이 없던 이씨는 당분간 누나에게 신세를 지기로 했다. 학원 옆에 길이 9m 정도의 컨테이너를 갖다 놓고 그곳을 임시 거처로 삼았다. 이씨는 굴삭기 일을 하면서 가끔 학원 일도 도왔다.

2005년 12월3일 오후 6시20분쯤, 이씨의 동료 굴삭기 기사인 A씨가 컨테이너를 찾았다. 일을 함께 하기로 약속했는데, 이씨와 며칠째 연락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A씨는 출입문 앞에서 문을 두드리며 “승래, 안에 있는가”라고 몇 차례 물었다. 어찌 된 일인지 안에서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A씨는 조심스럽게 컨테이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순간적으로 자신의 코를 막았다. 안에서 진한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실내 전등을 켠 후에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고 말았다. 컨테이너 안은 온통 피로 물들어 있었다. 한쪽에는 이씨가 칼에 찔린 채 숨져 있었다. A씨는 119와 경찰에 신고했다.

ⓒ일러스트 오상민
ⓒ일러스트 오상민

피해자 몸에서 200개 넘는 칼자국 발견

출동한 경찰은 참혹한 시신의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시신에는 칼에 찔린 것으로 보이는 수많은 자창이 남아 있었다. 대체 누가 이렇게 사람을 잔인하게 살해한 것일까. 여수경찰서는 곧바로 특별수사팀을 구성해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우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시신 부검을 의뢰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이씨의 몸에서는 무려 200개가 넘는 칼자국이 발견됐다. 머리, 목, 어깨, 등, 하체까지 전신에 자창이 있었다. 주로 등쪽에 집중됐다.

특이한 것은 자창들의 방향과 크기가 일정하고 대칭적이었고, 겹치지 않도록 고르게 분포돼 있었다. 어느 정도 간격을 두고 찌른 것 같은 모양이다. 워낙 자창이 많다보니 직접적인 사망원인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흉기의 종류는 ‘과도’로 나타났고, 사용된 흉기는 최소 두 자루 이상으로 추정됐다.

사람의 머리뼈는 두뇌를 보호하느라 매우 단단하다. 과도로 찔러도 바로 관통되지 않는다. 칼날이 휘거나 부러지는 등 모양에 변형이 생긴다. 이씨의 머리에도 칼에 찔린 상처가 여러 개 있었다. 이때 사용된 칼에는 변형이 생겼을 것으로 보인다. 

이 칼로 몸을 찔렀다면 변형에 따른 상처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씨의 몸에 난 상처는 크기와 모양이 일정했다. 즉 머리에 사용된 흉기와 다른 칼을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 보통 맨손으로 과도를 잡고 사람을 내리치면 칼날에 자기 손바닥도 상처를 입게 된다. 법의학자들은 범인의 손에는 이때 생긴 상처가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숨진 이씨는 키 180cm, 몸무게 91kg의 건장한 체격이다. 만약 이씨가 범인과 정면으로 맞섰다면 손에는 방어흔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씨의 손은 깨끗했다. 제대로 저항 한 번 못해 보고 당한 것이다. 술에 취해 범인에게 당했다는 말도 돌았지만 시신에서 검출된 알코올 농도는 0.03%에 불과했다.

국과수는 범인이 컨테이너에 침입한 후 이씨의 배후에서 등과 목을 찔렀다고 봤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머리 뒷부분과 등쪽에 몰려 있는 상처다. 범인이 컨테이너에 침입했을 당시 이씨는 엎드린 상태에서 잠을 자고 있었고, 범인은 등쪽에 바짝 붙어 머리와 목, 등을 순간적으로 찌른 것으로 볼 수 있다.

불시에 공격을 당한 이씨는 등쪽에 붙은 범인을 떼어내려 안간힘을 썼다. 오른발을 딛고 일어서려다 흘린 피에 미끄러졌다. 범인은 이런 이씨를 완전히 제압하기 위해 목을 찔렀고, 이때  뿜어져 나온 피가 소파에 다량 묻었다.

이상한 것은 수많은 자창에 비해 컨테이너 내부에 흘린 피는 많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것은 이씨가 숨이 끊어진 뒤에 범인이 재차 칼로 찔렀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침대용 매트리스가 상당 부분 바닥에 있던 피를 흡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통 매트리스는 땀의 흡수를 막기 위해 흡수력이 낮은 재질을 사용한다. 이씨가 흘린 피를 매트리스가 흡수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범인이 컨테이너에 침입했을 당시 매트리스는 이씨가 깔고 잠을 자고 있었다. 시신으로 발견됐을 때는 세워진 상태였다. 즉 범인은 매트리스에 피가 스며들 때까지 꽤 오랜 시간 컨테이너에 머물러 있었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이씨는 언제 사망한 것일까. 이씨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것은 12월1일 오후 10시20분쯤이다. 이씨의 누나 부부는 저녁을 먹은 뒤 한 방송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방송이 끝난 후 잠시 학원에 들렀다가 이씨와 마주쳤다. 이때 이씨는 택시에서 내려 김밥을 들고 컨테이너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이씨의 위에서는 당시 먹었던 것으로 보이는 김과 밥알이 나왔다. 소화가 되기 전에 죽음을 맞이했던 것이다. 이씨가 김밥을 먹은 뒤 약 2~3시간 뒤에 살해당했다면 범행시간은 12월2일 오전 0시20분에서 1시20분 사이라고 볼 수 있다.

2016년 11월5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이 사건을 자세히 다뤘다. 방송에서는 당시 컨테이너에 있던 매트리스와 동일한 것으로 피가 스며드는 시간을 실험했다. 그랬더니 약 2시간30분 정도 걸렸다. 이걸 토대로 보면 범인은 최소 오전 3시까지는 컨테이너 안에 있었다고 봐야 한다. 

ⓒ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화면 캡처
ⓒ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화면 캡처

“내가 범인이다” 자수한 용의자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범인의 흔적을 찾기 위해 정밀감식을 실시했다. 그 결과 현장의 혈흔은 모두 피해자의 것으로 분석됐다. 그나마 현장에 남은 범인의 유일한 흔적은 신발 자국이었다. 피를 밟고 선명하게 찍힌 발자국. 경찰이 신발의 문양을 확인했더니 국방부에서 보급하는 전투화였다. 신발의 크기는 270mm였다.

경찰은 원한관계에 의한 살인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수사를 벌였다. 이씨 가족은 물론 주변 인물들을 상대로 탐문을 벌였지만 원한을 살 만한 사람은 없었다. 범죄학자들은 피해자의 몸에 있는 수많은 자창 등은 보통 원한에 의한 살인과는 다르다고 분석했다.

특히 범인은 이씨를 살해한 후 곧바로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한참 동안 현장에 머물면서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에 재차 시신에 상처를 냈다. 마치 숫자를 세면서 찌른 듯한 상처들이다.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이런 무수한 상처를 내기가 힘들다. 범죄학자들도 범인에 대해 ‘이성을 잃고 집착과 강박적인 성향을 가진 인물’로 추정했다.

범인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금품을 노렸다면 뒤진 흔적이 있어야 한다. 이씨의 컨테이너에는 뒤진 흔적이나 없어진 물건은 없었다. 또 금품이 목적이었다면 이씨의 몸에 수많은 자창을 낼 필요도 없었다. 범인은 처음부터 이씨의 목숨을 노리고 컨테이너에 침입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럴 경우 이씨와는 아는 사이여야 한다.

살해 현장도 용의자를 좁히는 단서다. 당시 사건 현장은 시내에서 가려면 돌산대교를 통과해야만 올 수 있다. 외지인들이 일부러 찾지 않는 이상 오기가 힘든 장소다. 차가 다니는 도로가에 눈에 잘 띄지 않는 ‘중장비 학원’ 입간판 하나만 세워져 있었다. 한마디로 이곳 지리를 알지 못하면 올 수 없는 곳이다.

당시 컨테이너 옆에는 이씨 누나 부부가 키우던 커다란 진돗개 2마리가 있었다. 주인 외에는 사납게 굴던 개였다. 만약 외부인이 컨테이너에 침입했다면 개가 심하게 짖었어야 한다. 하지만 그날 개 짖는 소리를 들었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범인이 평소 개와 교감이 있지 않으면 설명되지 않는 상황이다.

이제 용의자를 좁힐 수 있는 최소한의 단서는 만들어졌다. 경찰은 이를 토대로 광범위한 조사에 들어갔다. 경찰은 이 중 133명을 별도로 분류해 집중수사를 벌였다. 그리고 한 명을 유력한 용의선상에 올렸다.

중장비 학원생이었던 B씨였다. 그는 경찰이 추정한 ‘용의자의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사건 전후 행적도 수상했다. 더욱이 B씨는 사건 8개월 후에는 여수 시내에 있는 한 파출소를 방문해 “내가 이승래를 죽였다”고 자수했으며 자필로 ‘자수서’까지 작성했다.

그러나 B씨는 얼마 후 “내가 죽이지 않았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자수에 대해서는 “엄마와 싸우고 홧김에 거짓 자백을 했다”고 주장했다. 범행에 사용된 흉기가 발견되지 않았고, B씨가 정신병력이 있던 것을 감안해 경찰은 그를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 사건 발생 5년여 뒤인 2010년 경찰은 이 사건을 ‘미제’로 분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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