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훌륭한 배우 아닌 연기 기술자”
  • 하은정 우먼센스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8.17 14:00
  • 호수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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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변신》으로 처음 공포영화에 도전한 배우 성동일

배우들은 으레 영화 개봉에 앞서 언론 매체와 릴레이 인터뷰를 갖는다. 하지만 그는 최근 기자가 만난 가장 근사한 인터뷰이였다. 여러 방면에서 그랬다. 유쾌하고 솔직했고 무던하고 담백했다. 이 모든 것이 확고한 소신에 기반했다. 스페셜한 연기력만 봐도 보통의 내공자가 아닐 거라 예상됐지만, 그 이상이었다. 적절한 비유와 그 전반에 깔려 있는 유머러스함은 주변의 공기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성동일. 그는 tvN 《응답하라》 시리즈를 연달아 히트시키면서 ‘국민 아빠’로 등극했다. 그러고 보면 그의 연기엔 별다른 ‘장치’가 없다. 실제로 그것이 그의 연기철학이기도 한데, 그는 그저 대본에 충실하며 특별할 것 없이 그 배역을 녹여낼 뿐이다. 인터뷰도 마찬가지다.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그저 자신을 말할 뿐이다.

그가 데뷔 후 처음으로 공포영화에 도전했다. 영화 《변신》은 사람의 모습으로 변신하는 악마가 가족 안에 숨어들며 벌어지는 기이하고 섬뜩한 사건을 그린 공포 스릴러 영화다. 《기술자들》 《공모자들》을 연출한 김홍선 감독의 신작이며, 배성우와 함께 출연한다. 극 중 성동일은 가족 구성원의 모습을 하고 집 안에 숨어든 악마 때문에 사랑하는 가족을 의심하게 되는 가장 강구 역을 맡았다.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신작 영화 《변신》이 개봉했다. 주연배우로서 완성된 영화를 본 소감은.

“가장 익숙한 공간인 ‘집’에서, 가장 익숙한 ‘가족’이 악마라는 모티브가 재미있었어요. 친숙함이 가장 무섭잖아요. 모르는 사람이 망치 들고 달려오는 것보다 아버지가 망치 들고 달려오는 게 더 무섭잖아요. 감독님이 그런 말을 했어요. 사람이 가장 무섭다고요. 그걸 느낄 수 있는 영화예요. 이른바 한국적인 오컬트 새드 무비입니다.”

그러고 보면 첫 공포영화 출연이다.

“결과물이 공포이지 현장은 코미디였어요(웃음). 저는 배역을 선택하는 것에 대해 기준이 없어요. 연기자라기보다 기술자라고 생각하는 쪽이거든요. 특별히 선호하는 역할도, 싫어하는 역할도 없죠. ‘요즘 왜 액션영화에만 출연하세요?’라는 말을 종종 듣는데, 섭외가 오니까 하는 거예요. 나이 한 살 더 먹기 전에 주먹 좀 흔드는 거 해 보자 싶은 거요. 저는 훌륭한 배우보다 훌륭한 가장 혹은 남편이라는 소리가 더 좋아요. 솔직히 말해 훌륭한 연기자도 아닌 것 같고요. 물론 배우는 내 직업이니까 최선을 다하긴 합니다.”

‘기술자’라는 정의가 오히려 프로페셔널하게 들린다.

“아내에게 듣는 ‘여보 사랑해’, 자식들에게 듣는 ‘아빠 사랑해’라는 말이 세상에서 가장 듣기 좋아요. 물론 연기 잘했다고 상 주고 칭찬해 주면 좋지요. 한데 굳이 꼽으라면 전자가 더 좋다는 거예요. 그래서 일도 많이 합니다. 《변신》을 끝내놓고 곧바로 다음 영화에 들어갔고, 줄줄이 찍고 있어요. 주변에서 언제 쉬냐고 하는데, 죽어서 쉬면 되죠 뭐. 가족을 위해 일하는 게 제 행복이거든요. 아, 첫 공포영화 출연, 맞아요. 한데 큰 의미는 없어요. 내 직업이 목수면 양옥이든 한옥이든 창고든 경계 없이 다 지어야죠. 그게 목수죠. 주변에서는 작품을 안 가리냐고 하는데 그게 제 신조예요. 기술자라니까요.”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직업이죠. 영화를 찍으면 먹여주고 재워주고 심지어 돈까지 줍니다. 연기가 부족하면 감독님이 가르쳐주기도 해요. 그래서 전 현장에 나가면 행복해요. 짜증 낼 일이 없어요. 그 많은 스태프들이 나를 배우로 만들어주려고 노력하는 걸 보면 눈물 나게 고맙죠. 그래서 스태프들과 소주 한잔 기울이는 게 제 낙입니다.”

훌륭한 배우가 아니라고 말했지만, 이 정도면 훌륭한 배우 아닌가.

“후배 배우들에게 사람을 많이 만나라고 해요. 연기라는 게 국·영·수처럼 사교육을 받는다고 느는 게 아니거든요. ‘선배님, 시간 되면 소주 한잔해요’가 아니라 시간 내서 만나야죠. 기자님도 시간 내서 저를 인터뷰하러 온 거잖아요. 서울역 앞 노숙자들도 시간 내서 거기 앉아 있는 거예요. 싫은 사람들도 만나고, 좋은 사람은 더 자주 보며 느끼고 경험해야 좋은 연기가 나옵니다. 배우라는 직업이 그런 것 같아요.”

뜬금없는 질문이지만, 배역을 거절할 땐 어떻게 하나.

“일단 제게 도착한 시나리오는 다 읽어요. 거절할 때는 반드시 술자리를 만들어 얼굴을 보고 거절합니다. 전화로 하지 않아요. 저를 먹고살게끔 해 주는 분들인데 적어도 감사의 인사는 해야죠. 거절하는 이유요? 간단해요. 그 역할을 하기에 내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요. 그럴 땐 당연히 거절해야 마땅하죠. 목수로 치면 가진 게 망치밖에 없을 때 거절하고, 연장이 많으면 합니다.”

배우에게 중요한 덕목이 뭐라고 생각하나.

“저는 도태되지 않고, 무위도식하지 않고, 오랜 시간 꾸준히 활동하는 배우이고 싶어요. 그 와중에 즐기는 배우이고 싶고요. 그래서 스스로 기술자라고 말하는 거예요. 후배들에게도 그래요. 쉬지 않고 일해라. 어떤 후배는 그래요. ‘선배님, 저 이번 역할이 너무 마음에 들어요.’ 그럼 평생 그 역할밖에 못 해요. 벗어나지 못하는 거죠. 전 연극할 때부터 빨래가 너무 하기 싫어서 어두운색 옷만 입었어요. 그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한데 결혼을 하고 나니 아내가 밝은색 옷을 입혀주는 거예요. 처음엔 질색팔색했는데 입다보니 잘 어울리더라고요. 배우도 그런 것 같아요. 쉬지 말고 닥치는 대로 일해 봐야 인생도 알고 재미도 알지요.”

김홍선 감독의 전작에도 출연했다. 연이어 김 감독과 함께 작업하는 이유가 있나.

“김 감독은 일에 미친 사람이에요. 게다가 마음도 착해요. 예의 바르고 의리도 있죠. 해병대 출신이라 술도 잘 마셔요. 소맥을 그냥 쏟아붓는 스타일인데, 놀랍게도 촬영에 들어가면 개봉할 때까지 일절 술을 먹지 않아요. 물론 꼬셔봤죠. 안 넘어와요. 그래봤자 맥주 몇 모금 정도? 그렇게 영화에 미친 사람이에요. 더 이상 무슨 이유가 더 필요합니까.”

배성우씨와는 영화 《안시성》, 드라마 《라이브》에 연이어 함께 작품을 했다.

“그 친구는 화면이나 실제나 똑같아요. 연극을 했던 친구라 남을 배려하는 게 몸에 배어 있고, 주변을 밝게 만드는 에너지를 가진 친구죠. 그래서 전 성우와 뭔가를 하자고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합니다. 그런 친구예요. 눈을 보고 대사를 치고, 멋 부리지 않고 연기를 하는데, 그것도 너무 좋고요. 사람 좋아하고 술도 좋아해요. 아직 싱글이라 제가 술이 고플 때 부르기 딱 좋은 친구이기도 하죠. 하하.”

올해는 유독 영화만 연이어 하는 것 같다.

“지난해엔 드라마 위주로, 올해는 영화 위주로 하고 있어요. 내년엔 영화와 드라마를 같이 할 생각이에요. 드라마를 너무 안 해도 대중은 제 신변에 이상이 있는 줄 알더라고요. 영화와 드라마는 연기하는 방법도 조금 달라요. 그 감을 놓치는 게 싫어서 의식적으로 번갈아가며 하는 편이에요. 드라마는 호흡이 긴 연기를, 영화는 함축적인 연기를 해야 하죠. 환경도 완전히 달라요. 지방 촬영을 한다고 치면, 드라마는 출연료 안에 방값, 밥값이 다 포함돼 각자 알아서 해결하죠. 한데 영화는 다 같이 움직입니다. 우르르 몰려다니는 재미가 있죠.”

그러고 보면 행복한 배우다.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할 수 있는 배우니까.

“소원 풀었죠(웃음). 저도 무명이 길었어요. 언젠가 어느 유명 배우가 밴에서 컵라면을 먹고 있는 걸 우연히 봤어요. 얼마나 바쁘기에 차에서 컵라면을 먹을까, 오히려 부러웠어요. 바쁜 게 부럽더라고요. 근데 내가 그렇게 됐잖아요. 그럼 군말 없이 일해야죠. 밤새워서 일하는 게 소원인데, 그걸 이뤘잖아요. 열심히 해야죠. 그래서 전 진짜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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