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JAPAN’ 후폭풍에 출구 ‘캄캄’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19.08.21 14:00
  • 호수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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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지분 얽힌 기업까지 불매운동 확대 조짐…전문가들 “아베 정권과 일본 구분해야”

최근 일본의 경제보복으로 촉발된 일본 상품 불매운동이 거세다. “곧 사그라질 것”이라는 일각의 예상과 달리 ‘노 재팬(NO JAPAN)’ 캠페인이 한국 사회 곳곳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시사저널이 8월5~6일 ‘포스트데이터’에 의뢰해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민 10명 중 8명은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을 지지했다. 또 국민 10명 중 7명은 지금의 불매운동이 일본 정부를 압박해 태도 변화를 가져오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주목되는 사실은 일본과 조금이라도 거래 관계가 있거나, 일본 기업의 지분이 있는 국내 기업들까지 불매운동의 표적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야쿠르트와 동아오츠카, 다이소, 쿠팡, 세븐일레븐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기업의 경우 대부분 한국 기업이 지배권을 갖고 있다. 본사 역시 한국에 위치해 있고, 생산이나 소비 역시 대부분 한국에서 발생한다. 그럼에도 일본 기업이 지분을 보유했다는 이유로 불매운동 리스트에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야쿠르트와 아성다이소가 대표적이다. 한국야쿠르트는 1969년 외국인투자기업으로 설립됐다. 지주회사인 (주)팔도와 오너 2세인 윤호중 부회장이 각각 40.83%와 16%대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혼샤 야쿠르트의 지분도 38.3%에 달한다. 등기임원뿐 아니라 감사도 일본인으로 경영에 참여할 뿐 아니라, 매년 거액의 배당금도 일본으로 넘어간다. 지난해의 경우 예년보다 배당 규모를 25%나 늘리면서 소비자들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있다.

일본의 수출규제를 계기로 국내에서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 여론이 퍼지고 있다. 사진은 일본 제품을 팔지 않는다는 한 식자재 마트 ⓒ시사저널 최준필
일본의 수출규제를 계기로 국내에서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 여론이 퍼지고 있다. 사진은 일본 제품을 팔지 않는다는 한 식자재 마트 ⓒ시사저널 최준필

재계 ‘일본색’ 빼기에 전전긍긍

‘1000원 숍’으로 유명한 아성다이소도 현재 일본 기업이 주요 주주로 등재돼 있다. 아성다이소의 최대주주(50.02%)는 창업주인 박정부 회장이 지배하고 있는 아성에이치엠피다. 하지만 일본 대창산업이 34.2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다이소의 연원 역시 대창(大創)의 일본 발음이어서 불매운동 이전부터 소비자들의 공격을 받아야 했다.

포카리스웨트와 오로나민C 등으로 유명한 동아오츠카는 한·일 합작 회사다. 현재 일본 오츠카제약이 50.00%, 한국 동아쏘시오홀딩스가 49.99%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인과 일본인이 각각 5명씩 이사로 임명돼 있다. 무엇보다 동아오츠카는 일본 오츠카제약으로부터 재료를 구매할 뿐 아니라, 거래 규모 역시 매년 늘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소비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오는 10월 열리는 서울달리기대회 협찬사에서 일본 브랜드인 미즈노와 함께 동아오츠카의 이름이 빠진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밖에도 전자상거래 업체인 쿠팡은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이 지분을 투자한 탓에 ‘일본 기업’이라는 소문에 시달리고 있다. 세븐일레븐을 계열사로 거느린 롯데그룹의 경우 최근 한 달여 만에 계열사 10곳의 시가총액이 5조원 가까이 빠지기도 했다. 일본 롯데홀딩스 등 일본 기업이 여전히 그룹 지배구조 상단에 위치해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최근 국내외를 오가며 대응책 마련에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호텔롯데 상장을 통해 ‘일본색’을 빼려는 시도는 2017년 경영비리 혐의로 신 회장이 구속되면서 중단됐다. 이에 따라 ‘롯데=일본 기업’ 이미지가 여전히 소비자들의 뇌리에 각인돼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불매운동 리스트에 오른 기업들은 한결같이 “일본 기업이 아니다”고 강조한다. 아직까지 매출에 큰 타격이 없지만, 일본 불매운동의 불똥이 잘못 튈 경우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해명에 나서고 있는 모습이다. 롯데그룹 측은 “지난해 롯데그룹이 낸 법인세가 1조5800억원 수준이다. 직접고용 13만 명, 간접고용까지 포함하면 30만 명 이상”이라며 “70여 개 계열사를 거느린 롯데지주 역시 코스피에 상장돼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야쿠르트 역시 ‘일본 기업설’을 일축했다. 회사 관계자는 “한국야쿠르트의 최대주주는 지주회사인 (주)팔도로 경영권 역시 한국에 있다. 일본 혼샤 야쿠르트는 단순히 지분 참여만 하고 있다. 일본인 등기임원 역시 비상근으로 급여가 지급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쿠팡 관계자도 “KB금융의 경우 외국인 지분율이 70%에 육박하고, 삼성전자와 네이버의 외국인 지분율도 60%에 가깝다”며 “외국인 지분이 높다고 외국계 회사라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이들 기업이 최근 애국심 마케팅에 적극 나서는 것도 이 때문이다. 롯데 계열사인 세븐일레븐은 8월초 전국 9700개 점포에 ‘코리아세븐은 대한민국 기업입니다’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붙였다. 아울러 BI(Brand Identity)와 점포 외관의 디자인을 모두 교체했다. 한국야쿠르트와 다이소 역시 독도 관련 단체나 위안부 할머니 쉼터 후원에 적극 나서고 있다. 최근 격화되고 있는 일본 상품 불매운동을 의식해 이미지 개선에 나선 것이다.

롯데그룹은 2015년 8월 가로 36m, 세로 24m짜리 대형 태극기를 롯데월드타워에 설치했다가 논란을 빚었다. ⓒ연합뉴스
롯데그룹은 2015년 8월 가로 36m, 세로 24m짜리 대형 태극기를 롯데월드타워에 설치했다가 논란을 빚었다. ⓒ연합뉴스

“일본 수출규제 당분간 계속될 것”

전문가들은 “아베 정권과 일본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 국민들이 이번 이슈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를 배제하고 계도해 나가면서 불매운동을 진화시켜 나가고 있다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윤영덕 조선대 대외협력외래교수(전 청와대 행정관)는 “불매운동 과정에서 아베 정권과 일본 국민을 구별하는 성숙한 투 트랙의 접근법을 최근 우리 국민이 보여주고 있다”며 “자칫 맹목으로 흐를 수 있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의 열기가 일시적, 감정적인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익성 동덕여대 교수(한국유통학회장)는 “일본의 수출규제는 그간 역사적 관계 속에 잠재돼 있던 반일감정을 증폭시킴으로써 불매운동이란 현상을 가져왔다”며 “일본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반목정서와 불매운동이 진정되기는 당분간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그러나 “기술 협력과 분업이 그동안 양국의 경제 발전을 견인하는 요인이었음을 감안할 때 불매운동은 장기적으로 진정돼야 한다”며 “국민정서를 다독거릴 만한 즉, 명분과 실리를 챙기는 정치·외교적인 해결 방안들이 정부 차원에서 가시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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