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는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19.08.19 10:00
  • 호수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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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가 보여준 혐오 비즈니스

국회의사당이 폭탄 테러로 무너져 대통령과 국무위원 전원이 사망한 초유의 사태. 모두가 불안감에 휩싸인 순간, 누군가에 의해 ‘탈북민’이 테러 용의자로 지목된다. 루머는 언론과 온라인, SNS 등을 타고 순식간에 들불처럼 확산된다. 탈북민들을 향한 폭력 사태가 일어났지만, 오히려 어떤 정치인은 탈북민을 ‘공공의 적’으로 몰며 이들을 탄압한다. 최근 방영 중인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의 한 장면이다.

상황을 보고받은 대통령. “이해가 안 되는 건 저 혼자입니까. 근거는 불충분하고 부정확한 데다 추론 과정도 비논리적인 데이터를 사람들은 어떻게 믿는 거죠?” 비서실장의 답. “사람이니깐요. 두려움과 공포를 느낄 때 사람들은 제일 먼저 그 원인을 찾지 않아요. 눈에 보이는 적을 찾기 마련이죠. 마음껏 미워하고 분노할 대상이 필요하니깐요. 그 편이 훨씬 쉬우니깐요.”

관련 대책을 브리핑해야 할 청와대 행정관에게 상급자가 브리핑실에 오지 말 것을 주문한다. 그가 ‘탈북자’ 출신이라는 이유를 들어서. 이 말을 덧붙였다. “정말 궁금하긴 하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까?” 한 동료가 “탈북민들은 북한이 싫어서 목숨을 건 사람들이에요. 그런 사람들이 북한 지령을 받아서 테러를 저지른다는 게 말이 돼요?”라고 반박하지만 탈북자에 대한 의구심은 청와대 내부에서조차 쉽게 진정되지 않는다.

결국 탈북민이 ‘용의자’라는 주장은 사실무근으로 밝혀진다. 한 정치인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가짜뉴스’를 퍼뜨린 것이다. 지지(표)를 얻기 위해,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부각시킨 ‘혐오 비즈니스’였다. 탈북자 출신 행정관은 이런 말을 남겼다. “주먹은 아래로 향한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탈북민을 공격한 건 위험해서가 아닙니다. 힘이 없어서지.”

tvN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의 한 장면 ⓒtvN
tvN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의 한 장면 ⓒtvN

혐오는 대체로 다수자 강자에서 소수자 약자에게로 흘러내린다. 《60일, 지정생존자》가 짧게 묘사했지만, 우리에게 던진 메시지는 묵직하다. 혐오라는 괴물이 어떻게 태어나고, 순식간에 키워져, 사회 전체를 마비시켰는지 잘 보여줬기 때문이다.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는 저서 《말이 칼이 될 때》에서 혐오표현의 해악을 세 가지로 요약한다. 먼저 혐오표현에 노출된 소수자 개인 또는 집단이 ‘집단적 고통’을 당한다. 둘째, 혐오표현은 누구나 평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공존의 조건’을 파괴한다. 셋째, 혐오표현은 그 자체로 차별이며, 실제 차별과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저 드라마 속 이야기일까. 홍 교수의 진단은 다르다. 그는 “백주 대낮에 오로지 성 소수자라는 이유로, 이주자라는 이유로, 정신질환자라는 이유로 집단 린치를 당하는 비극적 사태는 이제 ‘임박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처럼 사회 불만이 증폭될 수 있는 사회경제적 현실에서 차별과 혐오는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다”며 “여유를 부리기에는 상황이 너무 급박하다. 절박한 심정으로 우리 사회의 혐오와 차별에 맞서 싸워야 할 시기가 왔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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