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깃집 악취에 못 살겠다” 플래카드까지…곳곳이 전쟁터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19.08.20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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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연기로 인해 업주와 주민 사이 갈등 빈발
규제하는 법규 없어…극소수만 '방지 시설' 설치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에 내걸린 현수막. 이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는 현수막에 "고깃집 악취로 인한 미세먼지와 환경오염으로 고통받는 입주민을 살려 달라"며 "입주민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OO갈비는 즉시 해결하라"고 적었다. 얼마 전에는 가게에서 아파트 입주자들과 업주 간에 고성이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에 내걸린 현수막. 이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는 현수막에 "고깃집 악취로 인한 미세먼지와 환경오염으로 고통받는 입주민을 살려 달라"며 "입주민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OO갈비는 즉시 해결하라"고 적었다. ⓒ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

직화구이 식당에서 나오는 냄새와 연기로 인해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서울의 한 아파트에는 고깃집에 '악취를 즉시 해결하라'고 촉구하는 플래카드까지 등장했다. 음식점 악취가 위법 사항이 아니라, 책임 소재를 따지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8월20일 네티즌들이 많이 찾는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서울 강북구의 A아파트 사진이 게재됐다. 아파트 상가에 입점한 숯불 돼지갈비 전문점에서 희뿌연 연기가 솟아오르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었다. 연기가 향한 곳은 상가 바로 윗쪽 아파트였고, 그곳엔 5층에 걸쳐 초대형 현수막이 내걸렸다. 

해당 숯불 갈빗집은 지난 5월 개업했다.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는 현수막에 "고깃집 악취로 인한 미세먼지와 환경오염으로 고통받는 입주민을 살려 달라"면서 "입주민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OO갈비는 즉시 해결하라"고 적었다. 얼마 전에는 가게에서 아파트 입주자들과 업주 간에 고성이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숯불 갈비 등 직화구이는 한국인의 대표 외식 메뉴다. 수많은 직화구이 식당을 찾는 손님은 잠깐 동안 냄새·연기를 맡으며 식사를 하면 되지만, 인근 주민 입장은 다르다. 매일 바람을 타고 집안으로 들어오는 악취와 매연에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전국 각지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서울시청에 따르면, 지난해 직화구이 식당 등 음식점에서 풍기는 냄새·연기로 인한 민원 건수는 98건에 이른다. 2017년에는 109건으로 더 많았다. 부산시청에 접수된 관련 민원은 2017년 14건에서 2018년 47건으로 급증했다. 

강원도 원주시 B아파트 입주자들은 지난 3월 "아파트 정문과 200여m 떨어진 곳에 문을 연 숯불 갈빗집에서 발생하는 냄새와 연기 때문에 수개월째 창문을 못 열고 있다"며 시청에 민원을 제기하는 한편 피해를 호소하는 현수막을 곳곳에 설치했다. 인천에선 한 숯불 치킨집 근처에 살던 40대 남성이 업주를 상대로 항의를 거듭하다 사장에게 흉기를 휘두르는 일도 있었다. 

직화구이 식당 냄새·연기 논란에 대해 네티즌들은 "우리 동네에도 숯불 갈빗집이 생겼는데 냄새가 800m를 넘어 날아온다" "아래층에서 담배만 펴도 힘든데 매일 고기 냄새를 맡아야 한다면 괴로울 것"이라는 등 공감을 나타냈다. '식당을 상대로 민사 소송을 진행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관련해 음식점을 규제하는 법규는 없다. 환기 시설 설치 의무만 지웠을뿐 밖으로 배출하는 냄새·연기에 대해서는 별다른 기준을 두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가 민원을 접수해도 업주에게 개선 권고 정도만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대안이 될 수 있는 집진기 등 악취 방지 시설은 극소수 직화구이 식당 업주들만 설치해 가동한다. 의무 사항이 아닌데다 설치·관리에 적잖은 돈이 들어 영세 자영업자들이 구비하기 꺼리는 탓이다. 악취 방지 시설 설치 비용은 테이블 10개를 갖춘 식당 기준 1000만원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지자체들은 조례를 마련해 설치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으나, 예산이 부족하고 참여도 역시 미미한 실정이다. 

서울시의 경우, 2016년부터 공모를 통해 음식점을 선정, 악취 방지 시설 설치비의 70% 정도를 지원해주고 있다. 설치비 약 1000만원 중 700만원을 주는 경우가 보통이다. 식당 규모가 커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가면 최대 1000만원까지 지원한다. 서울시청 관계자는 "위법 사항이 없고 악취 방지 시설을 2년간 유지·관리하겠다는 의무 조건을 충족하면 지원받을 수 있다"며 "제한된 예산(연간 1억5000만원) 하에서 설치비 전체를 지원해 주는 게 아니고 서울시 전체를 커버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시설 자체에 대한 홍보 효과가 있다고 판단해 꾸준히 지원 정책을 추진해 왔다. 예산도 늘려보려 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향후 악취 방지 시설 보급이 많이 돼 설치·관리비 등이 보다 저렴해지고, 음식점들이 자발적으로 설치하는 선순환 구조로 가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몇몇 대규모 주상복합시설 내 상가, 음식점 프랜차이즈 업체 등은 최근 들어 스스로 악취 방지 시설을 설치하고 있다. 현장 점검 결과, 영세 자영업자들 가운데서도 음식점 개점 전부터 악취 방지책을 고민하고 시설을 마련하는 사람이 꽤 있었다고 서울시청 관계자는 전했다. 아파트 주민들과 점주가 상생안을 찾은 사례도 엿보인다.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의 한 이용자는 "우리 아파트는 아파트 자연환기 덕트(공기 또는 가스의 이송 및 환기용 관로)에 고깃집 덕트를 연결하게 해줌으로써 문제를 해결했다"면서 "물론 식당이 폐점하면 덕트는 원상복귀하기로 약속한 뒤 설치했다. 같이 살고자 하면 서로 양보해 좋은 해결 방안도 보일 듯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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