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강남좌파 강남엄마
  • 소종섭 편집국장 (jongseop1@sisajournal.com)
  • 승인 2019.08.26 09:00
  • 호수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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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좌파’라는 용어가 생긴 것은 2000년대 초반입니다. 외환위기의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마자 우리 사회는 벤처 광풍에 빠져들었습니다. 강남 길거리를 배회하는 개도 돈을 물고 다닌다던 시절이었습니다. 정권 교체 흐름과 어우러진 벤처 광풍은 ‘강남좌파’를 탄생시켰습니다. 부의 집결지로 상징화된 강남과 좌파를 연결시킨 신조어였습니다. ‘강남우파’라는 말은 없으니 약간 비판적이고 비꼬는 뉘앙스가 담긴 말이었지요. 이후 지적이고 세련된 이미지가 더해지면서 부정적인 측면은 많이 사라졌습니다. 요즘은 부자이면서 진보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이들을 통칭하는 말로 쓰입니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8월14일 오전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종로구 사직로 적선현대빌딩으로 출근하고 있다. ⓒ 연합뉴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8월14일 오전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종로구 사직로 적선현대빌딩으로 출근하고 있다. ⓒ 연합뉴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강남좌파’의 상징이었습니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서울대 교수로 있으면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소리 높이 외쳤던 지식인이었습니다. 재산도 56억원이 넘으니 남부러울 것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키도 크고 얼굴도 잘생겼습니다. 그가 2010년에 쓴 《진보집권플랜》은 여야 할 것 없이 지식인들의 필독서였습니다. 공정 평등을 강조하며 특권층을 강하게 비판해 주목받았습니다. 문재인 정권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을 맡으면서는 개혁의 아이콘으로 거듭났습니다. 대선주자로 거론될 정도로 정치적인 무게감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습니다.

조 후보자도 굳이 ‘강남좌파’라는 말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2011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를 강남좌파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우리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강남좌파, 영남좌파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습니다. 강남에 산다고 다 보수적일 필요도 없고 강북에 산다고 다 진보적일 필요도 없습니다. 영남에 산다고 다 보수적일 필요도 없고 호남에 산다고 다 진보적일 필요도 없습니다. 무지개처럼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 공존한다면 우리 사회는 한 단계 발전할 것입니다.

문제는 조 후보자의 부인이 ‘강남엄마’라는 것입니다. 최근 제기된 여러 의혹을 보면 조 후보자의 딸은 전형적인 ‘기득권층의 학벌 대물림 코스’를 밟았습니다. 유학을 갔다 와서 외국어고에 들어갔습니다. 고교 시절에는 엄마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인턴을 하면서 논문 1저자, 3저자에 올랐고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했을 때는 주로 경제적으로 사정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주는 전액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한 뒤에는 두 번 낙제에도 6학기 연속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은 우연이라고 보기 힘듭니다. 사회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 ‘강남엄마’들의 일반적인 스펙 관리 수법이자 특혜입니다.

조 후보자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고 보는 게 상식입니다. 법을 위반했느냐 아니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조 후보자가 평소 공정 정의를 강조하고 특권층들이 특혜를 받는 행태를 강하게 비판했던 것과 견줘보면 참 어이가 없습니다. ‘개혁의 상징’은 이미 빛이 바랬습니다. 대통령의 고집 속에 국민들의 마음은 멀어지고 있고 권력의 오만은 깊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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