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보조금 판치는 5G 시장, 소비자 가격은 천차만별
  • 조유빈 기자 (you@sisajournal.com)
  • 승인 2019.08.26 08:00
  • 호수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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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통법 유명무실해졌는데도 방통위 '뒷짐'…사기 피해 구제 방안도 없어

‘성지’ ‘좌표’ ‘ㅍㅇㅂ’ ‘할원’이라는 단어를 들어봤는가. 인터넷 정보통신 커뮤니티에서 종종 등장하는 단어들이다. ‘성지’는 휴대폰을 저렴하게 살 수 있는, 불법 보조금을 제공하는 대리점을 말하고, ‘좌표’는 대리점 주소를 말한다. ‘ㅍㅇㅂ’은 ‘페이백(현금을 돌려주는 것)’의 초성이고, ‘할원’은 ‘할부원금’을 말한다.

불법 보조금을 제공하는 ‘성지’에 가서 낮은 ‘할원’으로 휴대폰을 구매하거나 ‘ㅍㅇㅂ’을 받으면 각 이통사에서 지원하는 공시지원금보다 몇 배나 큰 할인을 받을 수 있다. 대리점마다, 불법 보조금 규모에 따라 가격은 달라진다. 같은 단말기, 같은 요금제, 같은 이통사를 선택한 소비자들의 차별을 막기 위한 단통법은 이미 유명무실해졌다. 시장 감시에 나서야 할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사실상 뒷짐을 지고 있는 상황에서, 불법 보조금이 다시 5G 통신시장에서 판치고 있다.

8월23일 공식 출시될 갤럭시노트10의 출고가는 124만8500원이다. 이동통신사 공식몰에서 8만원대 요금제를 이용해 노트10을 구매하는 가격은 73만원에서 78만원 수준. 그러나 시중에서는 30만원대에도 노트10 구매가 가능하다. 심지어 노트10을 9만원에 사전예약한 소비자도 있다. 이렇게 가격이 천차만별인 이유가 바로 불법 보조금이다. 8월20일 이통3사가 발표한 갤럭시노트10의 공식 공시지원금은 28만~45만원. 여기에 ‘불법 보조금’이 +a로 더해진다. 어떤 사람들은 공식 지원금만 받아서 70만원대에, 어떤 사람들은 불법 보조금을 추가로 받아 절반도 되지 않는 가격에 동일한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다.

서울 용산구의 한 휴대폰 대리점 ⓒ 시사저널 고성준
서울 용산구의 한 휴대폰 대리점 ⓒ 시사저널 고성준

갤럭시노트10 출시 앞두고 또다시 요동

단통법은 불투명하게 차등 지급되는 불법 보조금을 없애고, 과도한 경쟁비용을 절감해 통신요금 인하 경쟁을 촉진하자는 취지로 2014년 도입됐다. 단통법상 이통3사는 대리점에 공시지원금만 보조해 줄 수 있다. 그러나 방통위의 ‘이통3사 방통위 소관법령위반 현황’ 자료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박선숙 바른미래당 의원실의 자료를 종합해 보면 2014년 단통법 도입 이후 3년간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 등 이통3사의 단통법 위반 사례는 총 14건에 달했다.

이통사들은 공시지원금을 뛰어넘는 리베이트를 다양한 형태로 대리점에 지급한다. 대형 대리점에 제공하는 판매장려금, 대리점을 관할하는 마케팅팀에서 주는 보조금, 일정 수량 이상을 팔면 제공하는 인센티브 등이다. 불법 보조금을 제공하는 일부 판매점들은 이런 리베이트 일부를 떼어 소비자들에게 제공하면서 ‘박리다매’를 추진하는 것이다.

세계 최초로 5G 상용화에 성공하면서 이통사들의 경쟁은 더 거세졌다. 이통3사의 올 2분기 마케팅 비용을 보면 이통사들이 5G 가입자 유치를 위해 거센 출혈 경쟁을 펼쳤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SK텔레콤의 2분기 마케팅 비용은 7286억원, KT는 7116억원, LG유플러스는 5648억원이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7%, 20.2%, 11.2% 증가한 수치다. 특히 지난 4월 출시된 삼성전자 갤럭시 S10 5G 폰을 시작으로 불법 보조금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LG V50 씽큐는 출시되자마자 ‘공짜폰’으로 전락했고, 가입자들이 오히려 페이백으로 현금 10만원 등을 받는 일까지 벌어졌다.

최근 갤럭시노트10 출시를 앞두고 휴대폰 시장은 또다시 요동쳤다. 한 대리점에 갤럭시노트10 256G 모델을 7만5000원 요금제를 사용하면서 구입하고 싶다고 문의한 결과 제품 가격은 16만원대에 불과했다. 조건은 ‘페이백’이었다. 현금으로 기계 값 등을 일시완납할 경우, 개통 후에 페이백 형태로 현금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일부 대리점은 이 과정에서 신분증 보관이나 단말기 대금 선입금을 요구하기도 한다.

‘먹튀’ 당해도 손해배상 어려워

문제는 지원금 지급을 약속하는 판매방식 자체가 단통법 위반 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용자들의 피해가 발생했을 경우 구제 방안이 없다는 점이다. 지난 2012년 ‘거성모바일 사태’는 유명했다. 당시 거성모바일이라는 한 휴대폰 업체는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휴대폰을 개통하면 보조금을 지급한다’고 속인 뒤 4000여 명에게서 23억여원을 가로챘다. 피해자들은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했으면 개통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운영자와 SK텔레콤, KT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

법원은 “온라인 카페의 판매 공지에 음영표시를 이용하는 등 은밀한 방법으로 사후보조금 지급 약정을 한 것으로, 피해자들은 사후보조금을 지급받는 것이 불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신적 손해배상도 받을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불법 판매인 것을 알고 휴대폰을 구입할 경우 발생하는 피해에 대해서는 보상을 받을 수 없다고 본 것이다.

‘페이백 먹튀’ 사건 이후 단통법이 사실상 유명무실화되면서 불법 사례가 적지 않았다. 2016년에도 삼성전자의 갤럭시 S7과 갤럭시노트7을 번호이동으로 가입할 경우 페이백을 최대 50만원까지 지급한다고 홍보했다가 잠적한 사례가 있었고, 2018년에도 아이폰X 구매자에게 페이백 지급을 약속하고 총 16억여원을 챙겨 달아난 대규모 사기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5G 휴대폰에 대한 불법 보조금 지급 사례가 늘고 있는 만큼, ‘페이백 먹튀’ 사건이 재발할 우려가 높은 상황이다.

이통3사와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KAIT)는 8월15일 ‘휴대전화 판매 사기 주의보’를 발령했다. 갤럭시노트10 5G 출시를 앞두고 불법 보조금을 미끼로 한 휴대전화 판매 사기를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KAIT는 “이런 판매사기는 단통법 위반 행위에 해당되고, 이용자 피해가 발생해도 마땅한 구제 방안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며 “먼저 판매점의 사전승낙서 정보를 확인하고, 신분증 보관이나 단말기 대금 선입금을 요구하는 영업점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통사의 공언이 무색하게도, 불법 보조금 경쟁은 계속되고 있다. 가입자 유치에만 혈안이 될 것이 아니라, 이용자들에게 합당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반 마련과 요금제 정비, 단말기 값 할인 등이 우선시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직도 잘 터지지 않는, 무늬만 ‘5G’인 서비스에 불만을 품으면서도 소비자들이 5G 휴대폰을 구매하는 것은 이통3사가 역대 최고 수준의 지원금을 제공하면서 최신 5G 폰이 기존 LTE 폰보다 저렴해지는 ‘가격 역전 현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안진걸 민생연구소장은 “이통사는 마케팅 비용으로 수조원을 쓰면서, 누군가에게는 지원금을 많이 줘서 공짜폰을 사게 하고, 누군가에게는 비싸게 휴대폰을 사게 해 ‘호갱’을 만들고 있다”며 “단통법의 보조금 상한이 없어지면서 이통사는 공시한 대로 지원금을 줄 수 있다. 전체적인 공시지원금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이통사는 일부 소비자들에게 보조금을 많이 주는 척하면서 비싼 5G 요금제를 유지하게 하고 있다. 5G 가입자와 고가요금제 사용자가 늘어날수록 이통사의 매출은 늘어나게 되고, 결국 이통사만 쾌재를 부르게 되는 구조”라며 “정부도 공시지원금을 늘리고 저렴한 5G 요금제를 내놓을 수 있도록, 또 단말기 가격 자체가 저렴해질 수 있도록 제조사와 통신사를 압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3월14일 서울 중구 SK텔레콤 본사 앞에서 한국소비자연맹, 민생경제연구소 등 시민단체가 고가 중심의 5G 요금제 철회 및 단말기 가격과 통신요금 인하를 촉구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3월14일 서울 중구 SK텔레콤 본사 앞에서 한국소비자연맹, 민생경제연구소 등 시민단체가 고가 중심의 5G 요금제 철회 및 단말기 가격과 통신요금 인하를 촉구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방통위 솜방망이 처벌, 이통사 불법 부르나

“5G 활성화 때문” 지적도

불법 보조금과 이에 따른 피해를 책임지고 감시해야 할 방통위가 뒷짐을 지고 있다는 지적이 그동안 적지 않았다. 불법행위와 시장 과열 양상을 방통위가 방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방통위는 최근 3년간 이통사의 단통법 위반에 대해 강력한 처벌을 하지 않았다. 지난 3월에도 이통3사의 단통법 위반 행위에 대한 제재가 논의됐다. 유통점을 통해 온라인 영업을 하면서 현금대납, 사은품 지급 등의 방법으로 불법 보조금을 지급하고, 이용 약관에 없는 별도의 지원금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고가요금제를 유치해 3~6개월 의무사용 조건을 거는 등 불법행위를 한 것이 드러난 것이다. 불법 보조금뿐 아니라 부당하게 고가요금제를 권유하는 조건을 부과하는 것도 단통법 위반이다.

방통위는 이통사가 위반 행위를 막기 위한 주의와 감독을 소홀히 했다고 판단해 7일간의 영업정지 명령을 내릴 예정이었지만, 총 28억5100만원의 과태료 처분만 내렸다. “5G 상용화를 앞둔 시점에서 시장 활성화에 영향을 초래할 수 있고 영세 유통점의 영업활동 위축이 우려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지난 7월 SK텔레콤이 공시지원금을 최소 7일간 유지하도록 규정한 단통법을 위반한 행위에 대해 부과된 과태료는 150만원에 그쳤다. 당시 SK텔레콤은 갤럭시 S10 5G 단말기 공시지원금을 홈페이지에 공시한 뒤 경쟁사가 지원금을 많이 주는 상황을 보고 이틀 뒤에 지원금을 변경했다. 위반 행위가 최근 3년간 1회일 경우 과태료 100만원을 부과하게 규정돼 있다. 방통위는 SK텔레콤의 위반 행위에 고의성이 있다고 판단해 기준에 50%를 가중해 150만원을 부과했지만, ‘이통사 입장에서는 이 과태료를 내고 가입자 유치에 나서는 것이 이익일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5G 상용화 이후에는 방통위가 직접적으로 나서 통신사에 과징금을 내린 적도 없다. LG유플러스가 지난 7월 방통위에 단통법에 따른 실태점검과 사실조사를 요청하는 신고서를 제출하며 시장 감시를 요청했지만 아직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LG유플러스가 신고를 했지만 방통위에서는 아직 과열 시장이 아니라며 조사에 나서지 않고 있다. 정부가 5G 산업을 경제정책의 핵심으로 내세우면서 이통사의 불법행위를 눈감아주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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