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의 DJ 평가 “자신감 바탕…제대로 克日 하려고 했다“
  • 한동희 PD (firstpd@sisajournal.com)
  • 승인 2019.08.22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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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끝짱]

■ 진행: 소종섭 시사저널 편집국장
■ 대담: 이준석 바른미래당 최고위원
■ 제작: 시사저널 한동희 PD, 조문희 기자, 양선영 디자이너
■ 녹화: 2019년 8월20일

 

소종섭 시사저널 편집국장 (소): 지난 8월 18일은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였습니다. 여야 5당 대표들이 출범식에 참석을 했는데 여야 다 이렇게 한자리에 참석해서 추모를 하는 이런 분위기 자체도 오랜만에 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에 한일관계의 경세, 그리고 남북관계가 예전 같지 않은 이런 상황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서 여야 대표들은 전부 좋은 의미에서 추모를 했는데, 새롭게 김대중 정신이 조명되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 해봤습니다. 젊은 보수라고 불리는 우리 이준석 바른미래당 최고위원 모시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관련된 얘기 좀 해보겠습니다. 이 최고위원님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잘은 모르시죠? 

이준석 최고위원 (이): 저는 만나 뵌 적이 없기 때문에 잘 모르죠. 사실 제가 JP 빼고는 3김을 만나 뵌 적이 없습니다. JP는 2017년 대선 때 유승민 후보랑 같이 가서 만나 뵌 적이 있고. 사실 제가 제안 받은 것 중의 하나는 JP 회고록 연재하고 있었잖아요. 그거 보고 어떤 출판사에서 기획을 해가지고 정치 파트만 한번 JP 대담자로 제가 하라는 얘기를 들었었는데. 출판사에서 사전 미팅을 해보더니만 기력이 쇠하셔서 그러기는 좀 어려울 거 같다, 이렇게 얘기하던데 그게 제3김과의 그 엇갈림입니다.

소: 개인적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과는 잊을 수 없는 어떤 추억이 있습니다. 제가 기자 생활을 하면서 독대를 했던 유일한 전직 대통령이었습니다. 짧은 한 5분간의 독대였는데 그때 어떤 일과 관련해서 저한테 물론 집권하기 전이죠. 96년인데 사과를 했습니다. 사과를 하면서 도와 달라 이렇게 얘기를 했는데 그 당시에 야당 총재였는데. 야당 총재가 그런 모습을 보이니까 이분이 참 대단한 분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이준석 최고위원은 만나신 적은 없는데 어떤 분이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故 김대중의 對日외교, 現정부와 궤가 달라”

이: 최근에 한일관계가 경색국면에 들어서서 사실 김대중 대통령의 관광, 어업협정이라든지 아니면 일본과의 대일 외교 이런 것들을 보면서 상당히 지금의 정권과는 궤가 다르구나. 그러니까 보통 초록은 동색이라고 생각하면 보통 민주당 쪽에 있는 분들이 봤을 때는 바른미래당이나 자유한국당이나 같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근데 저희 내부적으로는 굉장히 선명하게 다른 것처럼. 또 민주당이랑 정의당이랑 저희는 구분이 잘 안 가는데 내부에서는 나름 노선 투쟁하는 것처럼 DJ와 노무현은 확실히 달랐구나. 노무현을 계승한 문재인 정부와 DJ 정부는 확실히 다르구나, 이 느낌이 드는 게. 김대중 대통령도 과거에 김영삼 정부에서 사실상의 반일 또는 역사 바로 세우기 기조를 통해가지고 정권 지지율을 어떻게 유지하고 관리하는지를 봤을 거예요.

소: 김영삼 대통령이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 이런 얘기를 했었죠.

이: 그 이후에 사람들이 체득한 것이 그전부터 대충 알고 있었겠지만, 반일은 표가 된다. 잘 알고 있었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정작 한일어업협정이나 이런 것들을 할 때 보면 우리 국민 입장에서 봤을 때는 불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올 수도 있겠죠.

소: 일본 문화도 그때 이제 개방을 한 거잖아요. 

 

“故 김대중 전 대통령, 제대로 克日 보여줬다”

이: 그런데 그게 상당한 자신감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사실 오히려 일본 정부에서 극일이라는 단어를 많이 얘기하지만, 진짜 극일 한번 제대로 해보려고 한 분은 김대중 대통령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왜냐면 그 일본을 대하는 그 방식에서 아까 말했듯이 일본 문화 개방도 그렇고. 그거는 전혀 수구적인 자세가 아니거든요. 그런데 김대중 대통령은 애초에 집권 자체를 보수랑 같이 했는데. 그 정도의 그 개방성이라고 한다면, 그리고 발상의 전환 가능성이라면. 그런데 그 노무현 계열의 문재인 정부가 보여주는 모습이라는 거는 우선 보수랑은 손을 잡을 생각이 전혀 없고요. 그리고 일본도 하나의 아이템화된 개체로 보는 것이 동반자 관계로 보지 않는 것이거든요. 우리 지지율 필요할 때 한번 툭 치면 좋은 나라 정도로 일본을 보는 게 느껴져요, 어느 정도는. 일본이 어떤 식으로 먼저 우리에게 선제적으로 공격을 하고 우리를 비난하고 우리에게 안 좋은 어떤 접근을 해왔든지 간에 우리가 대응하는 방식이 꼭 강성일 필요는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표현이 있는 것처럼 오히려 우리가 대범하게 예를 들어 “당신들은 자유무역 질서에 어긋나고 있어. 당신들이 그렇게 하는 거는 국제사회에서 왕따 당하려고 작정한 거야” 이렇게 가면 일본도 말문이 막히거든요, 그런 상황에서는. 그런데 이거는 과거에 노무현 대통령이 연설하면서 사람들이 싸울 때 나중에 가면 왜 싸웠는지 모르는 순간이 오잖아요. 싸우다 보면 “너 나이가 몇이야” 이렇게 나오기 시작하고 “아버지가 뭐 하시나” 이런 것부터 시작하면 안 된다, 이렇게 했던 것처럼 싸우는데. 정작 왜 싸우는지를 잃어버리는 순간이 와요. 그래서 저는 대일 갈등도 그런 단계까지 가지 않도록 잘 관리했어야 되는데 그게 참 DJ가 했던 것과 지금의 정부가 하는 것이 다르게 느껴진다, 저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소: 특히 최근의 한일 무역갈등, 일본의 경제침략, 이런 국면 속에서 98년 10월 8일 있었던 김대중·오부치 선언. 11개 항의 선언이었는데 일본에서 식민지 지배에 대해서 통절한 반성과 마음에서의 사과, 그 모두를 이제 문서화한 그러한 선언이었고. 일본 문화 개방 등등을 포함해서 한일 관계의 그야말로 새로운 전기를 만들었던 그런 대통령으로서의 김대중, 새롭게 조명이 되고 있는 상황이고.

이: 문재인 대통령께서 지난번에 지지 않겠습니다, 그러고 좌시하지 않겠다 이랬는데 좌시가 뭡니까? 앉아서 본다는 건데 지금 앉아서 보고 있어요. 지금 좌시 중입니다, 보면. 그러니까 이게 바로 식언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는 거거든요, 그렇게 구호가 세다 보면. 저는 김대중 대통령 같으면 그 상황에서 좌시하지 않겠다, 아니면 김영삼 대통령이 했던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 이런 식의 발언은 안 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좀 하고. 반대로 김대중 대통령이 그런 초석을 다져놨기 때문에 98년도 이후로 쭉 제가 봤을 때는 오히려 극일을 하기 위한 운동장은 잘 마련되어 있었다. 다만 나중에 2006년? 2009년이었던가 10년이었던가 이명박 대통령이 또.

소: 독도 갔을 때요? 

이: 독도 간 게 나쁜 거는 아니지만, 약간 개연성은 없잖아요, 그때 가는 게. 그러니까 개연성 없이 그냥 간다는 게 그때는 이제 정치적인 이벤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죠.

 

“文정부 對日정책,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교훈 얻어야”

이: 저는 그런 생각을 해요. 우리 사회에서 보면 극일을 원하는 지도자도 있고, 반일을 원하는 지도자도 있는데요. 반일을 하는 사람이 극일을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꼬이는 거다. 둘은 완전히 방식이 다릅니다, 제가 봤을 때는. 저는 그래서 꼭 극일의 방향으로 가는 것이 나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봅니다.

소: 문재인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의 극일, 여기서 배워야 된다. 이런 얘기인데 그 당시 김대중 정부에서 민정수석을 지냈던 김성재 김대중 전집 발간위원장이 김대중 정신이 뭡니까? 이렇게 물어보니까 세 가지로 딱 얘기했더라고요. 용서, 화해, 협력. 이게 김성재 위원장은 김대중 정신이라고 믿는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사실 그 당시에 보면 아까 이준석 최고위원도 얘기했지만, 집권 자체가 JP랑 같이했고. 그 이후에도 정책을 통해서 많은 이른바 보수계열 인사들을 또 실질적으로 등용을 했고, 그런 점들이 어쨌든 지금 문재인 정부와 대비되는 부분이 있는 거 같아요.

 

“용서, 화해, 포용…김대중의 자신감에서 나왔다”

이: 용서, 화해, 포용이라는 거는 굉장한 자신감입니다. 우리가 솔직히 음식점에 가보면 재료 자신 있으면 조미료 그렇게 많이 안 넣습니다. 그게 재료에 대한 자신감이거든요. 근데 재료에 대한 자신감이 없고, 재료 자체가 부실하면 조미료 맛으로 버텨야 되는 상황이 오게 되면 세지잖아요. 제 생각에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자신감이 있던 게 아닐까. 어쨌든 본인은 민주화 운동을 통해가지고 정통성이 있는, 김영삼 대통령도 문민정부였지만.

소: 최초의 정권교체.

이: 그러니까 그들과 결탁하지 않고 내가 독자 집권을 했다. 물론 JP와의 그런 연대는 또 하나의 흠이라고 많이 얘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내가 주력이었다. 그런 어떤 호랑이굴에 들어가서 호랑이를 잡은 게 아니라 내가 그냥 따로 딸려 들어온 그런 것쯤 이제 된 최초의 정권교체였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그런 분위기인데. 저는 그게 자신감이었다고 봐요. 그리고 IMF를 극복하는 과정 중에서 본인에게 많이 제기되었던 행정의 능력에 대한 의구심 같은 것을 떨쳐버리고 그런 것들이 있어서 그 이후로는 대북 행보나 이런 거에 있어가지고 자신감이 보이는 행보들이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자신감의 문제다. 이런 생각을 해요. 저도 정치를 하다 보면 굴곡이 있고, 어떨 때는 굉장히 자신감 있는 시기가 있고 어떨 때는 좀 요즘 그냥 쉬고 싶다, 아니면 요즘 그냥 아무도 말 안 걸었으면 좋겠다, 이런 시기가 있는데 사람이 날카로워지는 시기는 오히려 내려가는 시기잖아요. 평소에는 저한테 어떤 사람이 말도 안 되는 의혹 제기하고 이래도 보면 ‘그냥 정치하다 보면 당연히 이 정도야 감내해야 되지’ 이렇게 생각하다가도 내가 진짜 힘들 때 그렇게 하면 조금이라도 억울한 게 있으면 고소할까? 이렇게 생각하는 그 시점이 오거든요. 근데 저는 그런 느낌으로 지금 문재인 정부가 발끈하는 부분들이 보입니다.

소: 우리 역사상에서도 보면 고려 시대가 귀화인들이 가장 많았던 시기인데 그것이 고려 문화가 갖고 있는 자신감. 국제화된 고려문화의 어떤 우월감, 자부심, 이런 것들이 많은 귀화인들이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었던 배경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지금 이준석 최고위원이 분석한 대로 김대중 대통령이 그렇게 이른바 동진정책 등을 취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결국 자신감이 있었다는. 그게 어떻게 보면 이종교배의 경쟁력.

이: 그럴 수 있죠. 그리고 예를 들어 민주당을 박차고 나가서 국민회의를 차릴 수 있는 정도의 자신감. 그러면서 니들 남은 거 다 가져라,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그런 자신감? 정치적 박력, 저도 높게 평가합니다. 왜냐면 이것은 최근의 저희 당 상황과 결부돼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많은 사람들이 그 박력을 지향하면서도 현실적으로 못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지난번에 말씀드렸듯이 돈 문제 이런 거는 아니지만, 저희 같은 경우에는 뭐 같이 행동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그러지 못하는 부분도 있고 한데. 그런 게 DJ의 매력이었고, 앞으로 다시 보기 좀 어렵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매력입니다. 

소: 문재인 대통령의 이런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포용, 화합, 탕평 정책, 이런 것을 본받아서 그런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다는 얘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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