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지키기’는 진영의 승부인가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9.02 10:00
  • 호수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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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만 바라보고 국민은 보지 못하는 진영의 굴레

“나는 조국을 지지한다. 적폐청산, 검찰 개혁 절절했고 그걸 하겠다는 문프를 지지했으니까. 문프께서 그걸 함께할 사람으로 조국이 적임자라 하시니까 나는 문프께 이 모든 권리를 양도해 드렸고 그분이 나보다 조국을 잘 아실 테니까.”

얼마 전 어느 유명 작가가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지지한다며 SNS에 올렸던 내용이다. 간단히 말해 문재인 대통령이 적임자라고 판단하고 지명했으니까 문재인 정부를 지키기 위해 조국 후보자가 반드시 법무부 장관이 되도록 싸워야 한다는 얘기였다. 

요즘 대한민국 뉴스의 블랙홀로 부상한 조 후보자 논란을 바라보는 문 대통령 지지층 진영 일각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SNS에 들어가 보면 이와 비슷한 생각과 주장들이 넘치고도 넘친다. 이들의 생각을 요약해 보면 대체로 이런 것이다. 조 후보자에게서 다소 실망스러운 부분이 발견된 것은 있지만(이조차도 ‘가짜뉴스’들이라며 문제로 인정하지 않는 지지자들도 많다), 법무부 장관으로 부적격 판정을 내릴 정도로 심각한 것은 아니다. 검찰 개혁과 사법 개혁을 위해서는 조 후보자가 장관이 되어야 한다. 자유한국당이 조 후보자를 낙마시키려고 하는 마당에 그들의 의도대로 돼서는 안 된다. 그러니 반드시 조국을 지켜야 한다.  

8월19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왼쪽 사진). 한국당은 8월24일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문재인 정권 규탄 대규모 집회를 열고 장외투쟁을 시작했다. ⓒ 시사저널 박은숙
8월19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 ⓒ 시사저널 박은숙
8월19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왼쪽 사진). 한국당은 8월24일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문재인 정권 규탄 대규모 집회를 열고 장외투쟁을 시작했다. ⓒ 시사저널 박은숙
한국당은 8월24일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문재인 정권 규탄 대규모 집회를 열고 장외투쟁을 시작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최대 피해자는 박탈감과 열패감을 겪게 된 젊은이들

이들에게 조 후보자가 반드시 법무부 장관이 되어야 한다는 결론은 이미 내려져 있는 상태다. 이미 그랬듯이 인사청문회가 어떻게 진행되든 별다른 변수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조 후보자가 무사히 장관직에 취임하도록 하는 것은 숙고가 필요 없는 신념의 영역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여당인 민주당의 기류도 다르지 않다. 조 후보자 문제를 논의한 의원총회에서는 조국 지키기를 위해 당 차원에서 ‘총력대응’하기로 결론 내렸다. 민심을 우려하며 위기의식을 토로하는 의원들도 한때 있었지만, 지금은 한목소리를 내야 할 때라는 분위기 속에 파묻혀 버렸다. 여기서 밀려 조 후보자가 낙마하는 사태가 빚어진다면 내년 총선이 힘들어지고 문재인 정부의 레임덕이 올 수도 있다는 우려로 ‘조국 사수’ 이외의 다른 목소리는 고개를 들지 못하는 상태다.

조 후보자의 많은 언행불일치에 대한 배신감으로 민심이 돌아서고, 특히 딸이 누린 여러 특혜들이 여론을 들끓게 했지만, 한국당과 보수언론에 밀리면 안 된다는 진영논리만이 득세한 것이 여권 세력 내부의 모습이었다. 조 후보자 문제는 과연 어느 한 진영이 ‘정말 꼭 이겨야 하는 싸움’일까. 그 싸움은 누구를 상대로 한 것이며, 무엇을 위한 것일까. 문제는 그러한 생각과 민심 사이에 벌어진 심각한 괴리 현상이다. 여론조사에서 조 후보자의 부적격론이 늘어가고 대통령의 지지율도 하락하며 촛불을 드는 대학이 늘어가건만, 진영으로부터는 밀리면 안 된다는 암송의 목소리만 들려온다.

물론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의 문제가 진영 간의 대결로 변질된 데는 한국당의 책임도 분명히 존재한다. 한국당은 조 후보자에 대한 지명이 있자마자 “법치국가이길 포기한 인사”라며 인사청문회 일정 잡는 것조차 한동안 거부해 왔다. 후보자에 대해 어떠한 의혹이 제기된다 하더라도 일단은 인사청문회를 열어 그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국민의 판단을 구하는 것이 절차적 민주주의의 방식이다. 야당의 무조건적인 거부 태세는 그 반대쪽 진영으로 하여금 또한 자기 진영의 입장만 무조건 고수하는 쪽으로 몰고 갔다. 그래서 ‘극과 극’의 패싸움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 여야의 두 진영이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를 놓고 논쟁하고 있을 때는 아니다. 진영논리에 따른 목소리들만 팽배한 가운데 정작 사안의 본질은 파묻히고 있기 때문이다. 

여야 정치권과 그 지지층은 이번 논란 과정에서 가장 상처를 입은 것은 누구일까를 헤아려야 한다. 아마 조 후보자 지지층은 후보자 본인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장관, 그것도 법치의 책임을 맡는 법무부 장관이 되려는 사람으로서 감수해야 할 과정이다. 언론보도가 과도한 면은 있지만, 그래도 조 후보자는 제기된 의혹들에 대해 성실하게 답해야 할 책임이 있다. 

진짜 느닷없는 피해자들은 크나큰 박탈감과 열패감을 겪게 된 젊은이들이다. 6년 만에 고려대학교에 등장한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는 “촛불로 쌓아올린 세상이 적어도 한 걸음쯤은 나아갔다고 믿었다”며,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을 것 같다”고 문재인 정부의 인사를 질타했다. 이 땅의 2030세대가 정유라 때 무너졌던 억장이 촛불 시민혁명으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에 와서 다시 한번 무너질 줄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래서 다시 촛불을 든 학생들에게 대통령 진영의 어느 유명 인사는 페이스북에 이런 조롱의 말을 올렸다. “집회에 모인 학생들 중에 ‘자기소개서’를 저 혼자 쓴 학생이 몇 명이나 될지 궁금하네요.” 그리고 그 글에는 수많은 ‘좋아요’가 이어졌다.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는 것은 부끄러움과 염치라는 것을 갖고 살기 때문이다. 이 사회에서 나이깨나 먹은 사람들이라면 그 젊은이들에게 기성세대로서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을 갖는 것이 염치다. 하지만 젊은 세대는 그렇게 조롱당하고 있었다. 누구를 위해, 그리고 무엇을 위해? 조국을 지키고 우리 편의 진영을 지키기 위해? 피해 갈 수 없는 질문은 이런 것이다. 눈앞에 드러난 편법과 특혜의 불공정함을 바로잡으려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더 큰 정의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잘못이 있었다면 이제라도 그것을 바로잡는 분명한 모습을 보이는 것만이 상처받은 젊은이들에게 치유의 속죄를 하는 길이다.

 

2030 분노 헤아리지 못하는 ‘진보 꼰대’ 돼버려

정치학자 파커 파머는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에게 자신의 가장 근본적인 신념과 모순되는 확고한 증거를 제시하면, 그들은 자기의 신념을 오히려 더욱 강력하게 옹호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중략) 자신의 확신과 가치에 누가 도전하는 것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을 때, 비로소 우리는 진실에 가까이 가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절제되지 않은 신념은 종종 이성을 뒷전으로 밀어낸다. 진영의 대결 논리는 자기 성찰의 부재 속에서 정치적 승부만을 의식하게 만든다. 박근혜 정권이 몰락한 데는 그가 무엇을 하든 지지했던 ‘콘크리트 지지층’의 탓도 컸다. 그때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진영의 승리가 중요해도 보편적 상식에 우선할 수는 없다. 전에는 박근혜를 찍어야 한다는 어르신들과의 세대 간극을 느낀 시절이 있었다. 그때 반대 의견을 내놓았던 사람들이 이제는 2030들의 상처와 분노를 헤아리지 못하고, 촛불을 든 그들을 적반하장으로 훈계하는 ‘진보 꼰대’가 돼 버렸다. 그들은 줄곧 성난 민심의 불에 기름을 끼얹는 역할을 하곤 했다. 진영논리에 갇혀 한국당만 바라보고 정작 국민은 보지 못하는, 욕하면서 닮아가는 모습이다. 진영은 좁은 울타리고 민심은 넓은 바다다. 문재인 정부가 진영에 의존하는 정치로부터 이제는 벗어나야 함을 조국 후보자 논란 과정은 말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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