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리는 어떻게 대체불가 예능인이 됐나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8.31 10:00
  • 호수 155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려오고 있는 중” 진솔하게 보여줘…‘덜어내는 삶’에 시청자들 공감

현재 JTBC에서 방영되고 있는 《캠핑클럽》이나 작년 방영되며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효리네 민박》을 본 고등학생들이나 스무 살 남짓의 시청자들이라면 아마도 핑클이라는 걸그룹이 낯설 수 있다. 물론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 이후 90년대 복고 열풍이 불면서 당대의 아이돌그룹들이 친숙해진 면은 있지만 핑클의 당시 활동을 직관한 건 아니다. 걸그룹이 흔치 않던 시대에 핑클은 1집 활동부터 신인상은 물론이고 본상까지 받을 정도로 열풍을 일으켰던 그룹이었다.

이효리는 1998년 《Blue Rain》으로 데뷔해 4개의 정규 앨범과 2개의 스페셜 앨범을 내며 활동했던 핑클의 리더였다. 메인 보컬은 옥주현이었지만 맏언니로서 남다른 카리스마에 솔직함을 더한 이효리는 음악활동은 물론이고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섭외 1순위였다. 2001년 《해피투게더》 시즌1인 ‘쟁반노래방’에서 신동엽과 MC를 맡았던 이효리는 20%를 넘는 시청률을 내며 ‘효리 효과’라는 말까지 나오게 했다.

2002년 핑클은 활동을 중지했지만 해체되지는 않았다. 그 상황에서 멤버들은 개인활동에 들어갔는데 이효리는 그중에서도 독보적인 인기를 끌었다. 2003년 발매한 ‘STYLISH...E hyOlee’라는 첫 정규 음반의 타이틀곡 《10 Minutes》이 큰 인기를 끌면서, 가수로서도 예능 프로그램의 MC로서도 이효리의 입지는 확고해졌다. 특히 놀라웠던 건 예능의 새 트렌드로 리얼 버라이어티 시절이 열렸을 때도 이효리는 《패밀리가 떴다》로 유재석과 함께 중심에 섰다는 점이다.

tvN 《일로 만난 사이》의 한 장면 ⓒ tvN
tvN 《일로 만난 사이》의 한 장면 ⓒ tvN
tvN 《일로 만난 사이》의 한 장면 ⓒ tvN
tvN 《일로 만난 사이》의 한 장면 ⓒ tvN

특이한 연예인 ‘이효리’…군림 대신 공감

2010년 《패밀리가 떴다》가 시즌1을 종료하고 2013년 이상순과 결혼해 제주도로 내려가면서 예능 프로그램과 멀어지는 듯 보였지만 이효리는 지난해 《효리네 민박》으로 돌아와 건재함을 알렸다. 리얼 버라이어티에서 이른바 관찰카메라로 예능의 트렌드가 바뀌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효리에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효리네 민박》의 성공으로 후속작이라고 할 수 있는 《캠핑클럽》은 다시 핑클 완전체가 모여 캠핑카를 타고 전국을 여행하는 이야기로 화제를 만들었다. 역시 여기에도 그 중심은 리더인 이효리였다.

최근 방영된 tvN 《일로 만난 사이》는 첫 회에 4.9%의 시청률을 냈다. 메인 출연자인 유재석 때문이었을까. 그것보다는 첫 번째 게스트로 출연한 이효리와 이상순 부부의 힘이 컸다고 보인다. 이런 예측을 하게 하는 건 그간 유재석이 출연한 프로그램들이 시청률 면에서 눈에 띄는 성공을 보인 적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물론 호평받는 좋은 프로그램이지만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평균적으로 2%대의 시청률에 머물고 있고, 이전에 했었던 JTBC 《슈가맨》도 3~4%에 머물렀다. SBS 《미추리 8-1000》 역시 2% 시청률에서 방송을 종료했고 JTBC 《요즘애들》은 1% 밑으로 떨어진 적도 있었다. 이처럼 유재석이 시청률에서 난항을 겪게 된 건 지금의 예능 트렌드가 관찰카메라로 바뀌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캐릭터쇼와 진행형 MC에 머물고 있어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효리는 일찌감치 《효리네 민박》으로 관찰카메라 시대에 단박에 적응했다고 볼 수 있다. 최고 시청률 10%를 넘기기도 했던 《효리네 민박》에서 이효리가 관찰카메라에 잘 어우러질 수 있었던 건 일반인 게스트들을 초대해 함께 지내는 이 프로그램의 콘셉트가 그의 솔직 털털한 모습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효리네 민박》에서 연예인이라기보다는 일반인들과 똑같은 평범한 면모들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하지만 이러한 솔직함이 대중들에게 호응을 받으려면 그것이 가식이 아닌 진짜로 여겨져야 한다는 점에서 이효리는 특이한 연예인이었다.

그는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연예인도 아니었고 정상에 있는 연예인도 아니었다. 대신 그는 이미 결혼해 제주도로 내려가 농사를 지으며 살아갈 때부터 몸소 ‘내려오는 중’인 자신의 상황을 보여준 바 있다. 정상에 머무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름이 있으면 내림도 있다는 자연스러운 섭리를 받아들이는 모습. 거기서부터 대중들은 이효리를 연예인이라기보다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같은 사람’으로 보기 시작했다.

JTBC 《캠핑클럽》의 한 장면 ⓒ JTBC
JTBC 《캠핑클럽》의 한 장면 ⓒ JTBC

연예인 프리미엄을 내려놓자 보이는 신세계

관찰카메라는 그 속성상 연예인 프리미엄을 지우는 특징이 있다. 그것은 영상의 보편화와 대중화와 관련이 있다. 즉 과거에 영상이라고 하면 연예인 같은 특별한 사람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그래서 연예인 하면 뭔가 우리와는 다른 프리미엄이 얹어진 존재들로 봤던 시대가 있었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찍어 올리고 그것이 많은 이들의 호응을 얻기도 하는 시대. 그래서 보편화된 영상이 가짜가 아닌 진짜를 요구하는 지점에서 관찰카메라라는 예능의 새로운 트렌드가 생겨난 것이다.

연예인 프리미엄이 사라진 관찰카메라 안에서는 연예인도 일반인들도 똑같은 프레임에 잡히는 모습을 우리는 흔히 보고 있다. 예를 들어 《유 퀴즈 온 더 블럭》 같은 프로그램이 호평을 받는 건 일반인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면서 연예인 프리미엄이 슬쩍 지워진 유재석과 조세호를 발견할 수 있어서다.

이효리는 최고의 위치까지 올라 그 정상을 경험한 연예인이었지만, 이상순과 결혼하고 제주도에서 반려동물들과 소박한 삶을 살아오면서 그 프리미엄들을 상당 부분 내려놓았다. 《효리네 민박》은 그런 모습을 초대한 일반인들과의 진솔한 대화를 통해 보여줬고, 《캠핑클럽》은 이런 면면을 오랜만에 모인 핑클 완전체 전부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캠핑클럽》에서는 이효리뿐만 아니라 옥주현, 이진, 성유리 같은 저마다 한 자리씩을 차지했던 연예인들이 자신들의 나이 들어감을 이야기하고, 과거 핑클 시절 영상을 보며 “꼴 보기 싫다”는 얘기를 털어놓는다. 이효리가 중심이 돼 핑클의 다른 멤버들 역시 요정이 아닌 보통 사람으로 내려오는 과정을 목도하게 되는 셈이다.

이효리의 ‘내려놓는 삶’의 이야기가 특히 지금의 대중들 마음에 와 닿았던 건 IMF 이후 우리 사회 전반에 깔린 ‘내려오는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성장과 성공에 대한 욕망보다는 소소해도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이나 많은 걸 소유하려는 삶보다는 덜어냄으로써 본질을 찾으려는 미니멀 라이프 같은 달라진 삶의 방식이 이효리의 이야기와 조응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버티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내려오는 걸 선택하는 삶. 이효리가 선택했던 그 삶은 지금의 대중들이 선택하고 공감하는 삶이기도 하다. 군림하기보다는 공감하려 한 이효리의 선택이 그에게 신세계를 선사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