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사다리가 있어 다행이다”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9.02 08:10
  • 호수 155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국’으로 아침이 열리고, ‘조국’으로 해가 저물던 날들 사이로 우울한 소식 하나가 전해졌다. 정부가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펼쳤음에도 소득 격차는 오히려 2분기 기준 역대 최대 수준으로 벌어졌다는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 결과가 나온 것이다.

통계청이 밝힌 소득의 빈부격차는 상당하다. 1년 전과 비교했을 때 1분위 소득은 겨우 550원 증가한 데 비해 5분위의 소득은 29만1100원 늘어났다. 이미 가난한 사람들의 돈벌이가 예전 수준에 그치는 사이, 이미 부유한 사람들은 훨씬 더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는 얘기다. 이는 달리 말해 소득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의 기울기가 더 심해졌음을 뜻한다.

이런 상황에 마음이 한층 더 무거워질 사람들은 아무래도 청년층일 것이다. 취업난으로 소득 1분위를 벗어나기 어려운 그들에게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딸을 둘러싼 논란은 진위 여부를 떠나 엎친 데 덮친 격의 박탈감 혹은 열패감을 안겨주었을 것이 분명하다(14쪽 커버스토리 참조). 그리고 그처럼 절박한 감정들이 뒤섞여 대학가의 촛불로 타오르고 6년 만에 다시 나타난 대자보 글들을 이루었을 것이다.

한 대학의 담벼락에 붙은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중에는 이런 문구가 들어 있다. “저는 그저 묻고 싶다. 그래서 지금 안녕들 하신지요. 별달리 유난한 것 없이 잘살고 있는지요.” 그가 말하는 ‘유난함’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다. 이 사회가 조 후보자의 딸처럼 유난하지 않으면 뒤처질 수밖에 없는 모순의 정글이 되어 버리지 않았느냐는 냉소가 그 짧은 단어에 담겨 있다. 그것은 ‘사회의 안녕’을 추궁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이 글이 말해 주듯 조 후보자와 관련한 의혹은 이미 법적인 문제를 벗어나 있다. 논란을 대하는 대중의 감정이 그만큼 예사롭지 않다. 특히 젊은 층의 마음이 크게 다쳐 있다. 최근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20대의 반감은 확연하게 드러난다. 국민 다수가 조 후보자 임명을 반대했는데, 그중에서도 20대층의 반대 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그래도 다행이다. 사다리가 있어서.” 재난이나 다름없는 청년세대의 상황을 은유적으로 그렸다는 영화 《엑시트》에 나오는 대사다. 소득 1분위의 고난이 계속되고 젊은이들의 상실감이 깊어지는 지금, 우리 사회에는 과연 유난을 떨지 않고 그저 평범하게 노력해도 조금씩 위로 올라갈 수 있게 해 주는 공정의 사다리가 구비되어 있는지를 생각하게 해 주는 말이다. 우리가 현재 갖고 있는 ‘제도’라는 사다리 또한 범용(汎用)으로 잘 만들어져 있는지를 다시 묻게 한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 시사저널 최준필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 시사저널 최준필

법적인 문제는 진위만 가려지면 쉽게 해결될 수 있지만, 조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에서는 이미 다친 대중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감정은 늘 법이 다스릴 수 없는 곳에서 법 이상의 힘을 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리 뜻이 옳다 하더라도 국민 다수의 의사에 맞서 싸울 수는 없다. 국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와 다른 방향을 고집한다면 이전 정권과 다를 게 무엇이겠는가.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