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그 이상의 ‘혈전’ 예고하는 한·일전 경기는?
  • 기영노 스포츠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8.30 14:00
  • 호수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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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한·일 관계로 한.일전도 관심 최고조…배구 이어 야구·축구 줄줄이

“일본엔 가위바위보도 져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태극마크를 가슴에 단 선수들에게 새겨져 있다. 최대 라이벌인 일본과의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의 각오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한·일 관계가 급속도로 경색된 요즈음 한·일전에 임하거나 임하게 될 선수들의 부담감은 백배 더하다. 지난 8월24일 여자배구 대표팀이 일본에 패배한 것이 그 단적인 예다. 슈퍼스타 김연경을 내세운 한국은 20세 이하의 2진급 선수들이 주축을 이룬 일본에 1대3으로 역전패했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가진 경기였던 탓에 무난한 승리가 예상됐던 터라 그 충격은 더했다. 

여자배구에 이어 남자배구도 곧 한·일전을 치른다. 남자배구는 9월13일 이란의 테헤란에서 열리는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5번째 우승을 노린다. 한국 남자배구가 아시아 정상에 올라서기 위해서는 아시아 최강으로 꼽히는 개최국 이란과 함께 최근 급격히 전력이 향상된 일본을 반드시 넘어서야 한다. 한국은 D조, 일본은 B조에 각각 속해 두 라이벌은 8강 토너먼트에서 만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자배구의 패배를 지켜본 남자배구 대표팀의 분위기는 벌써부터 사뭇 비장하다. 

2017년 12월16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2017 EAFF E-1 챔피언십’ 한국 대 일본 경기에서 김신욱이 일본 수비수를 앞에 두고 슛을 시도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17년 12월16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2017 EAFF E-1 챔피언십’ 한국 대 일본 경기에서 김신욱이 일본 수비수를 앞에 두고 슛을 시도하고 있다. ⓒ 연합뉴스

11월 日에서 야구, 12월 韓에서 축구 한·일전 펼쳐져

한·일 간 라이벌 의식이 가장 강한 종목은 역시 야구와 축구다.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이 주관하는 ‘프리미어 12’는 야구월드컵(WBC)과는 달리 각 지역 예선 없이 세계랭킹 1위부터 12위까지 12팀이 출전한다. 2015년 1회 대회는 당시 세계랭킹 8위 한국이 준결승전에서 세계랭킹 1위 일본에 역전승을 거두고 결승전에 올라 세계랭킹 2위 미국마저 제압하며 초대 우승국이 되었다. 올해 11월에 벌어지는 2회 대회는 2020도쿄올림픽 출전권이 걸려 있어 더욱 치열한 접전이 예상된다. 일본은 올림픽 개최국으로서 이미 자동출전권을 따냈지만, 1회 대회 우승을 한국에 넘겨주었기 때문에 반드시 우승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C조에 속한 한국은 11월2일부터 서울 고척돔에서 호주·캐나다·쿠바와 예선 경기를 갖고, 일본은 푸에르토리코·베네수엘라·대만과 대만에서 조별 라운드를 벌여 각조 1, 2위 6팀이 2라운드 즉 슈퍼라운드를 벌이게 된다. 슈퍼라운드는 11월11일부터 16일까지 일본 지바 마린스타디움과 도쿄돔에서 풀리그로 벌어진다. 슈퍼라운드 결과 상위 두 팀은 11월17일 도쿄돔에서 결승전을, 3·4위 팀은 동메달 결정전을 각각 갖게 된다. 한국과 일본은 슈퍼라운드에서 최대 2번 만날 가능성이 있다.

한국은 프리미어 12에 대비해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 9전 전승으로 금메달을 딴 김경문 감독을 일찌감치 국가대표 전임 감독으로 선임해 대회에 대비하고 있다. 김 감독은 김광현·양현종 좌완 원투펀치로 마운드를 튼튼히 한 후, 양의지·박병호·이정후·최정·김하성·강백호 그리고 출전의사를 밝힌 메이저리그 템파베이의 최지만 선수 등으로 최정예 타선을 꾸려 대회 2연패와 도쿄올림픽 출전권을 노린다. 한국에 설욕을 벼르고 있는 일본은 이나바 야스노리 감독을 일찌감치 올림픽 감독으로 선정, 2019 프리미어 12까지도 맡게 했다.

김경문 감독은 “일본에는 150㎞ 넘는 강속구를 던지는 투수가 많다. 한국 타자들이 타이밍을 맞출 즈음에 계속 교체할 것이다. 따라서 다득점을 내기는 어렵고, 일본 타자들이 전통적으로 약한 왼손 에이스를 내세워 실점을 최소화한 뒤 한두 점을 먼저 내서 지켜내는 야구로 상대할 것”이라며 박빙의 투수전을 전망했다.

오는 12월10일부터 18일까지 부산에서 벌어지는 2019 EAFF E-1 풋볼 챔피언십에서 한국과 일본 축구는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동아시아축구대회로 불렸던 EAFF E-1 풋볼 챔피언십은 2003년 처음 시작됐다. 한국과 일본, 중국은 자동 출전하고, 나머지 한 장의 티켓을 놓고 7개국(몽골·북한·홍콩·마카오·대만·괌·북마리아나제도)이 예선전을 치러 본선 진출국을 가린다. 이번 대회는 홍콩이 1위를 차지해 본선에 올랐다. 운명의 한·일전은 12월18일 오후 7시30분 부산 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벌어진다.

2000년대 이후 한·일 축구는 일본의 기술축구, 한국의 피지컬(체격조건과 운동능력) 축구로 대비된다.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 있는 FIFA 랭킹은 항상 일본이 앞서고 있고, 8월 랭킹도 한국(37위)보다 일본(33위)이 약간 높다. 니시노 아키라 감독이 이끄는 일본은 미드필드 위주의 숏패스 축구를 구사한다. 그래서 티키타카에서 따온 ‘스시타카 축구’로도 불린다. 그러나 선수 개개인의 과감성이 떨어져 충분히 해볼 만한 기회에서도 자신이 직접 처리하기보다는 옆 사람에게 패스하기 급급한 모습을 보여주곤 한다. 그래서 강하고 거친 압박축구에 무너지곤 한다. 한국 축구에 덜미를 잡히곤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강한 피지컬을 가진 유럽 선수들과 플레이를 해 본 해외파들이 주축을 이루면서 그 같은 약점이 사라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일본, 야구·축구 모두에서 단단히 설욕 별러

야구와 마찬가지로 축구 역시 일본은 한국에 설욕전을 벼르고 있다. 일본은 지난 2017년 자국에서 가진 EAFF E-1 풋볼 챔피언십 대회에서 한국에 충격적인 1대4 대패를 당한 바 있다. 그러나 벤투호 역시 한국에서 벌어질 한·일전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경기이기 때문에 총력전을 펼 것으로 보여, 근래 보기 드문 혈전이 예상된다.

핸드볼 한·일전도 예고돼 있다. 핸드볼은 1970년대까지 일본이 한국에 우위를 보인 대표적인 구기종목이었다. 그러나 한국은 1984년 LA올림픽에서 여자핸드볼이 은메달을 따고,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여자핸드볼이 금메달, 남자핸드볼이 은메달을 따면서 본격적으로 일본에 우위를 보이기 시작했다.

일본은 2020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지난해 자국에서 아시아여자선수권대회를 개최해 한국을 누르려 했지만, 결승전에서 25대30으로 패했다. 하지만 당시 일본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나름대로 한국의 약점을 파악하고 가능성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원래 한·일 여자핸드볼은 최소한 10골의 전력 차이가 있다고 봤는데, 그 격차를 줄인 것이다. 일본은 오는 11월30일부터 구마모토에서 세계여자핸드볼대회를 개최한다. 그 대회에서 ‘숙적’ 한국을 넘어서, 그 기운을 도쿄올림픽까지 이어가려 한다. 한국 여자핸드볼 대표팀의 강재원 감독은 “일본 여자핸드볼이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수년 전부터 준비해 오고 있다. 지난해 아시아선수권대회는 점검하는 성격이었다. 일본의 상승세가 예사롭지 않다. 조금도 방심할 수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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