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돌이 묻는다…성이란,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조유빈 기자
  • 승인 2019.09.03 09:17
  • 호수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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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 던져진 난제…‘예고된 미래’ 섹스로봇 시대의 전초전

이것은 오래된 이야기다. 인류는 오랫동안 갈망해 왔다. 상상 속에서나 그려볼 만한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사람이 현실에서 나만을 사랑하는 상상을. 기원전 8세기에도 이런 갈망이 있었다.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가 《변신 이야기》에 담은 피그말리온 신화가 그렇다.

키프로스의 왕이자 조각가인 피그말리온은 현실에서 원하는 짝을 찾을 수 없었다. 인간 여성의 수많은 결점이 싫었다. 그래서 직접 상아로 자신만의 아름다운 여성 조각상을 만들고 ‘갈라테이아’라고 불렀다. 조각상과 사랑에 빠진 피그말리온은 ‘상아 여인’을 자신의 아내로 만들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 사랑에 감동한 아프로디테 여신이 소원을 들어줘 갈라테이아는 사람으로 변했다. 둘은 자식을 낳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살았다. 조각상이 인간 여성을 대체한 셈인데 주목할 점은 이때도 성별 권력의 운동장은 기울어져 있었다는 점이다.

ⓒ 시사저널 임준선
ⓒ 시사저널 임준선

리얼돌 수입 허용…‘성상품화’ 논쟁에 불붙여

단지 오래전 이야기가 아니다. 오드리 헵번 주연의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1964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야기와 예술작품에서 이 신화적 상상은 끊임없이 반복됐다. 이제 인간은 더 이상 상상만 하지 않는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인공지능(AI)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 지금, 인간의 피조물이 인간과 같은 존재로 변하는 것은 더 이상 신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7월8일 청와대에 ‘리얼돌 수입 및 판매를 금지해주세요’라는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리얼돌(real doll)’은 사람 모습을 한 성인 기구로, 성기가 달려 있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가짜일 수밖에 없는 인형이지만 겉보기에 사람과 몹시 비슷해 ‘리얼(진짜)’이라고 부른다.

8월7일까지 진행된 청원 서명에 총 26만3792명이 참여했다. 청와대가 의무적으로 답변해야 하는 기준인 20만 명을 훌쩍 넘겼다. 청원 내용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리얼돌은 여성의 신체적 특징을 그대로 떠온 성인 기구일 뿐만 아니라 원하는 얼굴로 맞춤형 제작이 가능해 여성에게 실체적 위협이 된다. 또 리얼돌 사용은 성범죄를 증가시킬 가능성이 높다. 마지막으로 리얼돌은 인간의 존엄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청원자는 “여성의 얼굴과 신체를 했지만 아무 움직임이 없어 성적으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실제 여성들을 같은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이 질문은 매우 실체적이면서도 근원적인 곳을 건드리고 있다. 성(性)이란 무엇인지,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시대의 변화와 기술의 진보에 따라 이런 가치들이 변화할 수 있는지 묻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 이른바 ‘리얼돌 논쟁’을 불러일으킨 건 지난 6월 대법원이 리얼돌 수입을 사실상 허용하는 판결을 내리면서부터다. 2017년 5월 인천세관은 “리얼돌은 풍속을 해치는 물품”이라는 이유로 수입통관을 보류했다. 수입업체는 “개인의 성적 결정권에 국가가 간섭해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세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세관의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 논리의 핵심은 이렇다. 관세법상 ‘풍속을 해치는’ 의미는 ‘음란함’을 뜻하는데, 리얼돌은 사람의 존엄성을 해칠 정도로 사람을 몹시 닮은 성기구이기에 수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2심 재판부는 판단이 달랐다. 이 물건이 ‘풍속을 해칠’ 정도로 사람과 닮지 않았다고 봤다. 오히려 2심 재판부는 어떤 물건의 인체 묘사가 “사실적이고 적나라하면 풍속을 해하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했다. 외형이 기준이라면 “의학 수업을 위한 인형, ‘인체의 신비’를 주제로 한 박물관 전시 인형” 등도 문제가 된다. 성기구라는 용도를 배제한 채 인간과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음란한 물건은 아니라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건 성기구라 할지라도 제재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2심 재판부는 2013년 헌법재판소 결정의 보충의견을 인용했다. “성기구는 매우 사적인 공간에서 이용되는데 이러한 사적이고 은밀한 영역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최소화돼야 한다.” 대법원은 2심 판결을 확정했다.

여성계는 크게 반발했다. 특히 여성들은 자신이나 지인, 연예인 등의 얼굴이 리얼돌에 맞춤형 제작될 수 있다는 사실에 엄청난 분노와 극도의 공포를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부대표는 “내 삶에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공포와 불안이 여성들에게 발화점이 됐다”고 했다. 그는 “작년 혜화역 시위 때도 ‘몰카’에 대한 공포와 불안이 분노로 옮겨붙은 측면이 있었는데, 리얼돌 청원에도 이 점이 부각되자 여론이 반응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내 삶에 폭력이 될 수 있다’가 발화점”

무엇보다 여성들의 분노는 리얼돌이라는 ‘상징’으로 향해 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몸과 성이 어떤 방식으로 소비돼 왔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상징이 바로 리얼돌이라는 주장이다. 서 대표는 ‘능멸’이라는 키워드를 들었다. 그는 “여성에게 리얼돌은 내가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살아가기 어렵다는 감각을 준다”며 “리얼돌의 기본 전제는 존재로서의 가치를 소거시키고 몸만 남아 있는 여성을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것으로 ‘능멸’이라는 키워드가 담겨 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여성이라는 존재가 성적 욕구를 해소할 대상으로 치환돼 인격체로서 세상에 오롯이 살 수 있지 않고 비인간, 비인격체로 느껴지게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도 여성들의 이런 불만과 불안을 알고 있다.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는 최근 “사법부 판결은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특정 인물 형상으로 주문제작하는 것은 인권 침해요소가 다분하다”고 말했다. “특히 청소년에게 유통돼서는 안 된다”고도 강조했다. 리얼돌 수입 허용을 규탄하는 시위도 곧 열릴 것으로 보인다. 최근 SNS와 여성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리얼돌 수입 허용 판결 규탄 시위’ 홍보글이 확산 중이다. 시위는 오는 9월28일 오후 서울시청 부근에서 계획되고 있다.

리얼돌에 찬성하는 입장의 논리는 뭘까. 국내 유일의 리얼돌 생산업체 ‘팀포유’ 김성식 대표는 “여성들의 입장을 솔직히 이해한다. 무조건 틀렸다고 할 수 없다”면서도 “리얼돌을 팔면서 한 번도 인형과 사람을 구분하지 못하는 이는 보지 못했다. 여성관도 지극히 정상적인 분들이 온다”고 설명했다. 또 “리얼돌이 어떤 행동을 유발하거나 조장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과도로 살인이 저질러졌다고 해서 과도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사생활은 사생활이다. 국가가 사생활에 개입할 근거는 적다”는 얘기도 했다. 다만 김 대표도 아동·청소년 모습을 한 리얼돌에는 반대했다.

 

해외에서 진행 중인 섹스로봇 관련 논쟁

“로봇 애인을 경험하면 다시는 인간 남자친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없어질 거야!” 먼 미래의 어느 날을 무대로 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2001년작 《AI》에서 섹스로봇이 확신에 차서 한 말이다. 리얼돌이 한국 사회에 던지고 있는 질문들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에게 곧 ‘섹스로봇’이라는 ‘예고된 미래’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해외에는 AI가 탑재된 섹스로봇이 출시돼 있다. 찬반 논의가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은 물론이다.

기술의 진화는 그간의 윤리적 상식을 뒤흔든다. 아무리 정교해 봤자 리얼돌은 어떤 감정도 없는 도구에 불과하다. 그 자체를 인격체라고 부르기엔 무리가 있다. 하지만 AI와 로봇공학의 성과가 합쳐진 섹스로봇은 다를 수 있다. 사람처럼 따뜻한 피부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성격이 부여되며 질투까지 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섹스로봇이 우리에게 던질 난제는 리얼돌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소설가 장정일은 “섹스로봇의 출현과 필요는 인간 사이의 이성애와 생식에 성을 한정시켰던 주장을 발밑에서부터 허물어뜨린다”고 했다.

해외에선 논쟁이 이미 시작됐다. ‘책임 있는 로봇연구재단(Foundation for Responsible Robotics)’은 2017년 영국 국립건강서비스의 지원 아래 ‘로봇과 함께할 미래의 성생활’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내고 섹스로봇의 긍정적·부정적 영향을 분석했다. 보고서는 섹스로봇이 성관계 상대를 찾기 어려운 사람이나 노인 등에게 혁신적 도구가 될 수 있지만, 여성이나 어린이에 대한 성적 대상화를 부추겨 성 의식과 문화를 왜곡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세상은 넓다. 한국에선 리얼돌 논쟁이 뜨겁지만, 태평양 건너에선 이미 현실에 닥친 섹스로봇에 대한 찬반이 뜨겁다. 한반도만 섹스로봇 이슈가 비켜갈 리 없다. 결국 시간문제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 리얼돌 논쟁을 치열하게 한다면 이후 도래할 섹스로봇 딜레마를 한층 더 성숙하게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거꾸로 이미 해외에서 진행 중인 섹스로봇 논쟁의 뿌리를 살펴보면, 지금의 리얼돌 논쟁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부분이 적지 않을 수 있다.

섹스로봇을 찬성하는 이들의 논리는 뭘까. 기본 전제가 있다. 일단 이들에게 섹스로봇은 인간의 다양한 성욕 해소를 위한 ‘도구’다. 인격체가 아님을 분명히 한다. 이들에게 성과 사랑 그리고 인간성은 성적 쾌락의 추구 그리고 만족의 측면에서 엄연히 분리될 수 있는 성질이다. 영국의 AI 연구자인 데이비드 레비는 저서 《로봇과의 사랑과 섹스》에서 “모든 성행위의 목적은 쾌락과 감정적 친밀감을 추구하는 데 있고 섹스로봇은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에 좋은 수단”이라고 했다.

섹스로봇이 부부관계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성 전문가 마리나 아드쉐이드는 2017년 MIT 출판사를 통해 내놓은 저서 《로봇 성: 사회 윤리적 의미》에서 “AI에 기반한 섹스로봇의 부상이 가계의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고, 결혼생활에 있어 부부 사이의 성관계에 대한 압박이 섹스로봇을 통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며, 결혼의 질을 향상시키고 이혼율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섹스로봇에 의한 사회적 변화가 임박했고, 결혼은 언제나 기술의 변화와 함께 진화해 왔음을 강조하며 ‘가정의 전자화(electrification in the home)’가 어떤 방식으로 여성이 일하는 시간의 낭비를 줄이고 결혼생활의 질을 향상시켰는지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이들은 섹스로봇이 매춘을 대체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내놓는다. 논리는 이렇다. 매춘에 대한 부정적인 일반적 견해를 극복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의 성적 욕구와 취향 등을 만족시키는 섹스로봇의 매춘 시장 진출은 긍정적으로 검토해 볼 여지가 있다. 섹스로봇은 성병의 감염으로부터 안전함도 담보한다는 것이다.

 

쾌락을 위한 행위에 인격은 존재할까

섹스로봇 반대론자들은 찬성론자들의 전제 자체가 틀렸다고 지적하며 이들의 논리를 강하게 부정한다. 반대론자 입장에서는 성과 사랑을 인간성으로부터 분리해 사고하는 것 자체가 비윤리적이다. 섹스로봇은 그 자체로 인간성의 훼손이며, 성의 노예화 문제를 불러온다. 로봇과 AI에 대한 윤리와 문화를 오래 연구한 캐슬린 리처드슨 영국 드몽포르대학교 교수는 “섹스로봇은 잠정적으로 인간을 권리(right)를 가진 인격체가 아닌 사물(things)로서 대하도록 유도하는 수단”이라면서 섹스로봇과 같은 도구는 현실에서 성 착취와 학대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그는 “성매매 로봇은 성매매 찬성론자들의 논리적 결론”이라면서 “여기서 여성은 비인간화되고 비인간적인 인공물로 재구성된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사랑은 사람으로부터 추출해 내거나 따로 옮겨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인격체로서의 인간(personhood)과 분리될 수 없다. 성행위 역시 인격체와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일 그럴 수 있다면, 그것은 돈으로 살 수 있는 도구에 가깝다. 인간은 사랑, 그리고 성행위에 있어 도구가 될 수 없다.” 이 논리에 따르면 섹스로봇으로부터 얻는 성적 쾌락과 사랑의 감정은 섹스로봇을 인격체로부터 분리해야 가능하다. 하지만 섹스로봇을 대상으로 하는 성적 쾌락과 사랑은 근본적으로 인격체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따라서 섹스로봇의 사용은 분리될 수 없는 성행위와 사랑을 도구로 이용하면서 심각한 인격체의 존엄을 훼손하는 방식이 된다.

결국 이들은 섹스로봇의 상용화가 바로 여성의 성을 성적 도구로 인식할 가능성에 대한 문제에 주목한다. 인간이 특정 목적을 위해 성을 도구화하고 이를 노예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 즉 인간에게 내재한 불평등한 성에 대한 인식과 관계가 섹스로봇의 개발과 사용이라는 주제 안에 내포돼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또 이들은 섹스로봇이 매춘을 대체할 수 있다는 주장도 근거가 없다고 지적한다. 리처드슨 교수는 “새로운 기술의 발전과 보급이 섹스 산업에 기여했는지를 들여다봐야 한다”며 “현재 과거보다 더욱 많은 여성들이 사이버 공간 등과 같은 새로운 기술을 통해 이 시장에 참여하고 있다. 섹스로봇은 매춘 시장을 감소시키지 않는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멀지 않은 미래에 남성이든 여성이든 로봇과 섹스를 하는 것은 물론 결혼까지 하는 일을 흔하게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영국의 미래학자 이안 피어슨 박사는 2016년 발간한 《미래의 섹스》 보고서에서 “사랑과 섹스가 분리될 날이 머지않았다. 2025년에 여자는 남자보다 로봇과 더 많이 섹스하고 2050년 로봇섹스가 인간끼리의 섹스보다 많아진다”고 예측했다. 《특이점이 온다》로 잘 알려진 레이 커즈와일 구글 엔지니어링 이사는 2029년이면 인간이 로봇과 성관계를 맺는 것은 물론이고 결혼도 많이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금의 복잡한 리얼돌 논쟁은 섹스로봇이 불러올 어떤 미래의 ‘특이점’일지 모른다. 그리고 지금 이 딜레마는 ‘예고된 미래’의 혼란에 비하면 아주 ‘쉬운 일’일지 모른다. 그래서 지금 리얼돌이 대한민국에 던지는 질문과 그 파장은 정말 ‘소중한 기회’일지도 모른다. 인류의 오래된 상상은 벌써 현실에 발을 담갔다. 우리는 준비해야 한다. 리얼돌이 던진 질문에, 곧 다가올 섹스로봇 시대에 던져질 질문에. 그리고 답할 준비도 해야 한다. 인류에 여성은 속해 있냐고, 지금도 기원전 8세기처럼 원하는 여성을 깎아 만들 것이냐고. 우리는 이 질문에 곧 답해야 한다.

*참고: 《섹스로봇 상용화가 갖는 윤리적 문제와 윤리적 정당성 확보에 대하여》 (김태경, 철학논총 제95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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