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홍콩 시위 한복판에서 밀레니얼 세대를 만나다
  • 홍콩=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19.08.30 14:00
  • 호수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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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이 대륙에 뿔난 ‘진짜’ 이유는?

타는 듯하던 태양이 자취를 감춘 뒤에도 열기는 가라앉지 않았다. 바람은 선선했지만 공기는 뜨거웠다. 수천 명이 내지르는 함성과 뿜어내는 땀이 뒤엉켰다. 한 발자국 내딛기에도 숨이 막혀 올 지경이었다.

8월28일 저녁 8시 센트럴지역 차터가든(Charter Garden)을 물들인 시위대의 표정은 결연했다. 넘어지는 사람을 붙잡아주고, 앞으로 나가려는 사람을 위해 길을 터줬다. 잡담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누군가 ‘홍콩사람(香港人)’을 선창하면 ‘파이팅(加油)’이 울려 퍼졌다. “홍콩을 광복하자(光復香港)! 이 시대의 혁명이다(時代革命)!” “5대 요구(五大訴求) 하나도 빠져선 안 된다(缺一不可)!”는 외침이 이어졌다. 홍콩의 밤이었다.

월25일 홍콩 취엔완에서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 EPA 연합
8월25일 홍콩 취엔완에서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 EPA 연합

이날 집회는 시위 도중 체포된 여성에게 부당한 대우를 한 경찰을 규탄하기 위해 마련됐다. 시위대는 경찰이 여성을 알몸수색하며 성적 수치심을 줬다고 비판했다. 성폭력 피해를 폭로했다는 점에서 ‘미투(metoo)’ 집회라는 이름이 붙었다.

요즘 홍콩에선 이 같은 시위가 하루에도 여러 차례 열리고 있다. 지난 6월9일 범죄인 인도 법안, 일명 송환법 도입 반대 집회에서 시작된 반중(反中) 시위가 세 달 가까이 이어지면서다. 시위가 잠잠해지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확대되고 격렬해지고 있다. 덩달아 경찰의 진압도 과격해지고 있다. 시위 진압 과정에서 한 여성이 실명을 하는 사고가 발생했고, 최루탄은 물론 실탄까지 발사됐다. 중국이 군대를 투입해 무력진압에 나설 것이라는 소문도 돌고 있다.

시위대는 중국을 향해 ‘죽어도 같이 죽자(If we burn, you burn first, 람차우攬炒)’고 외친다.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분노하게 만들었을까. 홍콩 시민의 칼끝이 어쩌다 중국을 향하게 된 걸까. 홍콩의 분노를 이해하려면, 1997년 홍콩 반환 전후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의 현실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10~20대 청년층이 이번 시위를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시위를 기획하고, SNS를 통해 정보를 공유한다. 특정 단체가 집회를 지도하는 게 아니라, 청년 개개인이 주체가 되어 동참한다.

그중 적극적으로 시위에 가담하고 있는 4인방을 만났다. 기자 개인의 SNS를 통해 홍콩 현지 취재에 도움이 되는 사람을 수소문했더니, 여기저기서 만나 달라는 연락이 왔다. 이 가운데 시위 최전방에서 경찰이 쏘는 최루탄에 맞서거나, 국제적 홍보에 힘쓰는 이들 네 명을 엄선했다. 홍콩의 한 자그마한 카페에서 만난 이들은 3시간 동안 열변을 토했다.

8월28일 밤 8시경 홍콩 도심인 센트럴 차터가든(Charter Garden)에서 열린 송환법 반대 미투 집회에 수천 명이 운집했다. 이들은 집회에 참석했다가 체포된 여성 시위자가 알몸수색을 받은 것에 대해 강력히 규탄했다. ⓒ 시사저널 조문희
8월28일 밤 8시경 홍콩 도심인 센트럴 차터가든(Charter Garden)에서 열린 송환법 반대 미투 집회에 수천 명이 운집했다. 이들은 집회에 참석했다가 체포된 여성 시위자가 알몸수색을 받은 것에 대해 강력히 규탄했다. ⓒ 시사저널 조문희

[정치] ‘일국양제’ 약속은 어디 가고 ‘홍콩색’ 지우기만

제니 황(Jenny wong·26)은 한국 계열 화장품회사에서 마케팅 일을 하고 있다. 평범한 직장인이지만, 퇴근 이후엔 누구보다 바쁘다. 주말 집회는 물론 평일에도 동료들과 함께 시위에 나선다. 한국어에 능통한 덕에 한국 언론에서 요청하는 각종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이날도 두 건의 인터뷰를 하고 온 뒤였다. 그는 “국제적으로 홍콩의 상황이 더 알려져야 정부가 압박감을 느낄 테니까”라고 말했다.

제니는 “홍콩이 중국과의 분리 독립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어차피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얘기”라면서다. 그러나 거짓말에는 민감했다. “홍콩을 돌려받은 1997년에 중국은 ‘일국양제’를 내세우며 50년 동안 홍콩의 민주주의를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지난 22년간 중국은 노골적으로 홍콩을 대륙화하려 했다.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 하지 않나. 벌써부터 이 지경인데, 일국양제가 끝나는 2047년 이후엔 어떨지 암담하다.” 그는 연신 고개를 저었다.

나머지 3명 모두 제니의 의견에 공감했다. 이들은 특히 중국이 홍콩의 문화를 말살하려는 게 아닌지 의심했다. 지난 6월 홍콩교육청이 홍콩의 수능인 DSE에서 광둥어 듣기와 말하기를 없앤다고 발표했는데, 홍콩색 지우기의 일환이 아니냐는 것이다. 또 중국인은 매일 150명씩 홍콩으로 이주하고 있다. 반환 뒤 거의 100만 명의 대륙인이 홍콩인이 됐다. 이를 두고도 홍콩 원주민의 비율을 낮추려는 속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 불을 지핀 것이 바로 송환법이었다. 홍콩인들은 송환법이 통과되면 반중 성향의 시민들이 언제든지 본토에 끌려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송환법을 시작으로 홍콩의 사법권이 침해되면, 자치권도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는 두려움이 엄습한 거다. 제니는 “우리는 홍콩의 문화를 지키고 싶다”고 호소했다.

 

[경제] 홍콩에 밀려오는 중국인…상대적 박탈감

여기에 먹고사는 문제까지 겹쳤다. 저성장에 허덕이는 전 세계 밀레니얼 세대가 그렇듯 홍콩 청년들도 실업난에 주거난까지 겪고 있다. 특히 홍콩의 주거환경은 열악하기로 유명해 침대 하나 간신히 들어가는 단칸방 월세가 60만원을 훌쩍 넘는다. 매년 수만 명씩 중국인이 홍콩으로 이주하면서, 청년층은 중국에 일자리와 살 곳 모두 뺏겼다고 생각하고 있다.

니콜라스 증(Nicholas Tsang·21)은 “아무리 노력해도 집 하나 못 사는 게 홍콩의 현실이다. 공공주택도 홍콩인은 10~20년을 기다려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중국인은 사회복지사를 통해 2년 만에 배정받는다. 불공평하잖나”라며 언성을 높였다. 그는 올해 7월까지 한국에서 유학 중이었다. 그러던 중 홍콩 시위가 발발했고, 7월10일 귀국하자마자 시위 대열에 합류했다. ‘홍콩을 도와달라’고 호소하는 포스터를 한국어로 제작해 한국 신문에 광고를 싣기도 했다.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다. 기자에겐 “홍콩의 실상을 제대로 알려달라”고 읍소했다.

이런 불만이 쌓인 상태에서 거리로 쏟아진 홍콩 청년층을 자극한 것은, 다름 아닌 홍콩 정부의 오만함이었다. 캐리 람(林鄭月娥) 행정장관을 비롯한 홍콩 정부는 친중국 성향으로 알려졌다. 유이(yui·24)는 “시위가 거세지자 정부는 ‘송환법은 죽었다’는 표현을 쓰면서 마치 다 끝난 것처럼 말했는데, 사실 이런 표현은 법적으로 유효하지 않다. 결국 며칠 전(8월26일) ‘송환법 완전 철폐는 어렵다’고 시인하지 않았나. 빤히 보이는 거짓말로 시민을 속이려 한다”고 말했다. 유이는 6월12일 집회에 처음 나갔다가 경찰이 쏜 최루탄을 마셨다. 당황이 분노로 바뀐 순간, 그는 시위대 앞으로 전진했다.

불온서적을 판매한 혐의로 사장이 중국 경찰에 끌려가 감금됐던 코즈웨이베이서점 앞에서 안손, 유이, 제니, 니콜라스(왼쪽부터)가 홍콩 시위의 상징이 된 눈을 가리는 포즈를 취했다. ⓒ 시사저널 조문희
불온서적을 판매한 혐의로 사장이 중국 경찰에 끌려가 감금됐던 코즈웨이베이서점 앞에서 안손, 유이, 제니, 니콜라스(왼쪽부터)가 홍콩 시위의 상징이 된 눈을 가리는 포즈를 취했다. ⓒ 시사저널 조문희

[사회] 정부의 오만함과 경찰의 과잉진압

무력시위의 방아쇠를 당긴 건 경찰의 무책임한 모습이었다. 7월21일 윤롱(元朗) 지역에서 흰색옷차림의 괴한들이 해산하는 시위대를 무차별 폭행한 ‘백색테러’는 홍콩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그런데 경찰은 시민의 신고를 받고 42분이 지나서야 출동했다. 8월11일에는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은 구호대원이 실명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또 경찰이 한 뼘 사이 근거리에서 후추탄을 쏘거나, 잡힌 이들을 알몸수색했다는 폭로도 이어지고 있다. 결국 시민을 지켜야 할 경찰이 시민을 사지로 내몰고 있다는 비판이 일었다. 여기에 SNS를 통해 중국 경찰이 홍콩 경찰에 섞여 있다든가, 시위대에 섞여 분탕질을 한다는 소문까지 퍼지고 있다. 이들 4인방은 “무엇보다 경찰에 대한 불만이 가장 크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그렇다면 이들은 이 시위를 언제까지 계속할 계획인 걸까. 안손 찬(Anson Chan·24)은 “5대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목숨을 걸고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10월1일 국경절을 데드라인으로 보고 있다. 세계인의 이목이 쏠린 터라 그 전까지 홍콩을 안정시키려 하지 않을까 예상한다.” 낮에는 유통회사 직원으로 일하는 안손은 밤이 되면 시위 최전방에서 경찰이 쏘는 최루탄을 쳐내고 있다. 그의 가방엔 늘 헬멧과 마스크, 고글이 들어 있다.

끝으로 4인방은 한국의 관심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정부를 압박하려면 국제사회의 지지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한국은 촛불을 통한 시민혁명을 경험한 나라이기에 더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다만 “홍콩에선 더 이상 촛불이 통하지 않는다. 한국 정부는 시민의 말을 들어주지만 홍콩은 아니다. 폭력적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해해 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홍콩 시위대는 오는 8월31일 차터가든에서 또다시 대규모 행진을 앞두고 있다. 물리적 충돌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이날 만난 4인방은 모두 “당연히 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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