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세대에게는 헬조선의 미필적고의가 있다”
  • 조철 북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9.01 11:00
  • 호수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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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세대 전격 해부한 《386 세대유감》 펴낸 젊은이들

“우리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크고, 가장 강력한 세대라 할 수 있는 386세대를 바라본다. 가난과 전쟁 탓에 못 먹고, 못 입고, 못 배운 부모 세대 등에 올라타 독재자가 허용한 효율과 성장의 과실을 맛보며 10대를 보내고, 두 번째 독재자가 교육의 평등을 설파하며 내건 교육 개혁 조치의 수혜로 20대를 열었던 386세대. 이어 반(半)독재자가 내민 200만 호 아파트 건설 카드와 청약통장 덕에 일찌감치 내 집 마련의 기회를 얻어 중산층에 진입했으며, IMF 외환위기의 파고조차 비껴간 운 좋은 세대. 시대가 선사한 거듭된 운을 실력이라 믿으며 불운한 뒷세대에게 ‘우리는 안 그랬다’며 ‘노오력’을 강조하는 이 사람들 말이다.”

언론계과 학계, 정치권에 몸담고 있는 3명의 젊은 세대가 50대가 된 이른바 386세대를 비판한 《386 세대유감》을 펴냈다.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사회 전 방면에 걸쳐 386세대의 공과 과를 해부한 비평서다. 20대에 민주화운동을 이끌었고, 그 후광으로 30대에 정계에 진출했으며, IMF의 파고 덕분에 윗세대가 사라진 직장에서 탄탄한 입지를 굳히고, 40대에 고임금과 부동산으로 빠르게 중산층으로 진입하고, 자신들만의 끈끈한 네트워크로 오랫동안 대한민국을 이끌어온 386세대. 이 유례없는 장기집권 과정에서 386세대가 자신들이 꿈꿨던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었는지, 앞으로도 이들에게 우리 사회의 지휘권을 맡겨도 될 것인지를 묻는다.

《386 세대유감》 김정훈·심나리·김항기 지음│웅진지식하우스 펴냄│268쪽│1만6000원 ⓒ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386 세대유감》 김정훈·심나리·김항기 지음│웅진지식하우스 펴냄│268쪽│1만6000원 ⓒ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40년간의 발자취 더듬어 공과 과 따져

그동안 정부는 각종 청년 정책을 내놓았지만 상황은 좋아지기는커녕 몇 걸음 나빠졌다고 청년들은 체감한다. 전 세계적인 저성장 경제가 암울한 미래의 원인으로 지목되자 더 나아질 게 없는 현실과 자신들에 대한 자조 섞인 체념이 유행처럼 퍼지고 있는 오늘이다. 우울증과 공황장애 등 심리적 불안이 커지는 것 또한 불안한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이런 상황인지라 세대 불평등의 이슈는 새삼스럽지 않다. 저자들의 비판에는 젊은 세대가 느끼는 386세대에 대한 울분을 담은 것들도 눈에 띈다.

“여전히 개인의 양심을 지키며 사회정의를 위해 싸우는 386도 많다. 그러나 386세대가 자의든 타의든, 적극적 가담자이든 소극적 방관자이든 사회 각 분야에서 잘못된 의사결정을 했고, 그 결과 대한민국은 헬조선이 됐다는 사실 또한 부인할 수 없다. 386세대에게는 헬조선의 ‘미필적고의’가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로 나쁜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음을 알면서도 그 행위를 행했다. 한때 대의를 외쳤던 이들이 1년 11개월짜리 계약서를 만들어 내밀고 노동조합 가입을 방해하는가 하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가르며 노노(勞勞) 싸움을 채찍질했다면, 그들이 헬조선의 가해자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자의든 타의든 대한민국의 제도는 386세대에게 유리하게 작동됐다. 비정규직 보호법, 신도시 개발, 분양가 상한제 폐지와 같은 제도가 386세대에게 맞춤형으로 제공됐다. 그러므로 2019년의 헬조선은 386세대가 자신들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눈감고 허용해 준 소악(小惡)들이 모여 만들어진 거악(巨惡)이라 해야 맞다.”

한때 떠들썩했던 ‘88만원 세대’처럼 ‘세대론’을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유효한 프레임으로 제시한 것이다. 요즘처럼 개개인의 특성이 다양하고 존중받는 시대에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할 수 있을 텐데 이렇게 용감한 주장을 펴는 이유가 뭘까.

“파편화가 심해 세대 공통의 특징을 포착해 내는 게 쉽지 않다. 그런데 386세대는 20대에 민주화, 30대에 IMF 외환위기와 같은 패러다임의 변화를 겪으면서 공통의 집단적 심성을 키웠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인간이 사회적으로 크게 성장하는 20~30대에 역사의 한복판에 서 있던 경험, 사회가 자신들의 목소리를 경청한다는 경험은 다른 세대가 겪어보지 못한 것들이다. 말하자면 구시대의 막차를 타고 새 시대를 꿈꾼 세대라고도 할 수 있겠다.”

 

더 나은 사회 향해 팀플레이 하기를

저자들은 그런 세대에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주도하고 방관한 사람들이 있다는 데 유감을 표명한다. 여전히 ‘월급여 88만원’의 한계를 넘지 못하는 오늘날 청년 세대에게 그들이 속한 사회의 연원을 설명하고,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라고 한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를 상기시키며 현실과의 괴리를 논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케바케(case-by-case)’ 아니냐고 반박할지도 모른다. 딱 떨어지는 인과관계를 입증해 내기도 어렵지만, 그렇다고 마냥 입을 다물 수만은 없다. 민주화 훈장이 386세대의 가슴팍에만 독점적으로 달리는 것은 정당한가. 재야 운동권과 광장을 메운 시민들, 노동자 대투쟁으로 불을 지핀 노동자들은 어디로 갔는가. 오늘날 출신 학교와 학번으로 줄 세우고 공고한 네트워크를 만들어 이익을 주고받는 ‘386 독식사회’가 그들이 경험한 민주화투쟁에 기원을 둔 것은 아닌가. 386세대가 사회 각계에서 ‘젊은 피’로 등장해 일찌감치 의사결정권을 갖는 데 명분이 돼 주었던 80년대 민주화투쟁과 학생운동의 경험은 이제 재평가의 시간을 맞이해야 한다.”

노인 절반이 빈곤의 늪에 빠져 있고 청년 취업자 절반이 비정규직인 우리 사회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팔짱 낀 채 모른 체한다면 어떤 변화도 기대할 수 없다. 저자들은 게임의 규칙 자체에 의문을 품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모두가 게임 판을 바꿀 ‘게임 체인저’가 돼야 한다. 특정 세대가 주도하지 않는 게임 판, 모든 세대가 각자의 임무를 하고 함께 이익을 나누는 팀플레이, 이것이 후퇴한 대한민국을 일으킬 시발점이 될 것이다. 평등하고 공정하며 정의로운 세상은 30여 년 전 386세대가 눈물 흘리며 바랐던 그 세상과 다르지 않다. 그들이 바랐던 혁명이 아직 매듭지어지지 않은 현재진행형이라면, 세대 독점의 해소는 비록 늦었지만 혁명의 완결로 가는 길일 수 있다. 이제는 혁명의 열정을 뽐내는 주체가 아니라 염치와 배려의 미덕을 풍기는 혁명의 지원군으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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