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공화국③] 조직원이 말하는 ‘범죄 노하우’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19.09.16 09:00
  • 호수 1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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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타고 시·도 경계 넘나들며 수사 혼선 유도…일당은 피해금액 10%”

“택시, 목적지 대림, 그리고 다시 택시 타고 수원.”

3년 전 보이스피싱 현금인출책 모집 담당으로 활동하다 검거돼 보이스피싱 가담 및 방조 혐의 등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풀려난 전만기씨(가명·30)는 “보이스피싱 조직에서 공유되는 경찰에 잡히지 않는 노하우”라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 8월28일 서울 한 카페에서 만난 전씨는 조직원으로 활동하며 알게 된 보이스피싱 조직의 시스템에 대해 털어놨다.

보이스피싱 조직원이 된 계기가 있었나.

“어릴 때 중국에서 일을 좀 해서 중국어를 할 줄 안다. 처음에는 아는 형이 중국어 관련 단기 아르바이트라며 잔심부름만 하면 된다고 일자리를 소개해 줬다. 가끔 통역도 해 주면 보너스를 준다고 했는데, 하다 보니 그거(보이스피싱)더라. 아는 형이 대만으로 출국하고 나서는 내가 현금인출책 역할까지 도맡게 됐다.”

주로 어떤 일을 했나.

“구인 사이트에 단기 아르바이트 공고 만들어서 올린다. 나중에는 중국 쪽 상선이랑 연락하면서 (피해금의) 입금 여부 등을 확인해 줬다. 송금을 담당하는 조직원이 따로 있는데, 이들에게 중국 쪽 지시를 전달하기도 했다. 주로 징검다리 역할이었다.”

보이스피싱 조직만의 특별한 규칙 같은 게 있었나.

“일단 연락은 무조건 텔레그램을 썼다. 전화번호도 모른다. 그리고 항상 답은 5분 내로 하게 했다. 늦어지면 경찰에 잡힌 줄 알고 연락을 끊을 거라 했다. 또 경찰에게 자신들의 정체를 불면, 가족들까지 죽일 거라 협박하기도 했다. 나는 직급이 높지도 않으니까, 그냥 묻지 않고 시키는 일만 하는 정도였다. 실제 조직 ‘대가리’가 누군지도 모르고 지냈다.”

수익 배분은 어떻게 하나.

“처음에는 10일 일하면 100만원 정도 준다고 했는데, 나중에는 가져오는 돈의 10%를 받았다. 500만원을 뜯었으면 나는 50만원 갖는 구조였다. 6000만원 정도 뜯어낸 게 가장 크게 성공한 날이었다. 텔레마케터나 다른 상선은 월급을 받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경찰에 결국 잡혔는데.

“나 같은 경우는 정말 1%의 케이스라 생각한다. 다른 일 탓에 경찰에 꼬리를 밟힌 경우다. 경찰에 잡히지 않는 노하우가 있는데, 돈이 오가는 과정에서 조직원들은 무조건 택시를 탄다. 그리고 서울에서 대림이나 신림처럼 조선족들이 많은 곳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잠시 뒤 거기서 다시 택시를 타서, 다른 시·도로 넘어가고 이 과정을 몇 번 반복하고 나면 CCTV나 블랙박스로 추적하는 데 한참의 시간이 걸리니까 경찰이 보통 추적에 실패한다. 단순하지만 이게 먹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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