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콘서트의 위기, 험난한 코미디의 앞날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9.08 15:00
  • 호수 156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당대 폐부 찔러야 수준 높은 폭소탄 나와

최근 KBS2 《개그콘서트》가 2주간 결방까지 하며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하지만 개편 첫날 시청률은 5.4%로 개편 전 마지막 시청률인 6.1%에도 미치지 못했다. 개업효과마저도 얻지 못한 것이다. 이는 시청자들 사이에서 《개그콘서트》에 대한 기대가 많이 사라졌다는 걸 의미한다. 주목도가 높은 프로그램이 개편할 경우, 좋은 반응이건 나쁜 반응이건 어떤 식으로든 화제는 일어나게 마련인데 이번 《개그콘서트》 개편은 화제조차 되지 못했다. 점점 무관심의 영역으로 밀려나는 느낌이다.

최고 인기를 누렸던 전성기에서 현재의 퇴조기에 이르기까지 몇 번의 변화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시청자를 만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이젠 시청자들이 기대 자체를 접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요즘 같은 다채널 시대에 5%대 시청률이 낮은 건 아니지만 추세가 문제다. 계속 가라앉는다는 점 말이다.

《개그콘서트》는 그나마 살아남기는 했다. MBC와 SBS에선 코미디 프로그램이 이미 사멸했다. 이들 방송사에서 코미디가 사라지기까지 몇 번의 개편, 변신 시도가 있었지만 실패했다. 《개그콘서트》도 이대로 개편 시도를 몇 번 하다가 사라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온다. 프로그램 하나 끝나고 다른 프로그램이 생기는 차원이 아니라, 지상파 코미디의 대가 끊기는 사태가 걱정된다.

ⓒ KBS
ⓒ KBS

국민 웃음 창구, 코미디에서 예능으로

코미디는 우리 국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장르 중 하나였다. 배삼룡, 이주일, 심형래는 고된 산업화 시절 국민을 위로했고, 김형곤과 최양락의 풍자는 통쾌함을 안겼다. 배삼룡이 지방 한 번 돌면 현금을 포대에 쓸어담고 대통령이 헬기를 보내 배삼룡을 모셨다던 그 시절엔 콘텐츠 자체가 워낙 적었다. 딱히 웃을 일도 없었다. 1980년대에 코미디가 개그로 바뀐 다음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고, 90년대에 미디어 혁명이라며 케이블TV가 개국했지만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하지만 진짜 미디어 혁명이 터진 2000년대 이후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케이블 채널이 약진하더니 종편까지 콘텐츠를 쏟아냈다. 거기에 인터넷이라는 해일이 미디어 시장에 닥쳐왔다. 코미디의 절대적 팬이었던 어린 세대가 유튜브로 이동했다.

장르적으로는 예능이 약진했다. 국민MC라는 말이 나오고 연말 연예대상이 최고의 화제가 될 정도로 예능의 위상이 격상됐다. 이러자 국민에게 웃음을 주는 창구가 코미디에서 예능으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과거엔 코미디언인 것만으로 국민스타일 수 있었지만 이젠 코미디에서 두각을 나타낸 후 예능 MC로 간택받아야 비로소 국민스타 반열에 오른다.

예능 형식도 과거엔 콩트 영상을 틀어주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리얼리티가 대세다.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이름으로 생생함을 추구하기 시작하더니 요즘은 관찰 다큐 형식으로까지 발전했다. 이러니 콩트, 코미디라는 이름의 ‘상황극’은 몰락할 수밖에 없었다. 웃기는 설정을 잡아서 연기하는 희극인보다 자연스럽게 자신을 드러내는 예능인을 대중이 더 선호하게 됐다.

특히 지상파는 이중의 족쇄를 차고 있다. 사회의 집중적인 감시다. 유튜브에선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자극적인 영상들이 날것으로 인기를 끈다. 케이블TV에서도 자극적인 표현이 등장한다. 하지만 지상파는 선을 조금만 넘어도 온 사회의 지탄을 받는다. 이런 환경 속에서 지상파 코미디 프로그램은 안전한 길로만 가게 됐고, 구태의연하다는 비웃음을 샀다. 그나마 기존에 많이 했던 안전한 콘셉트 중에 조롱, 비하하는 것들이 있었는데 이것마저 최근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분위기 속에 철퇴를 맞았다.

어차피 과거로 돌아갈 순 없다. 과거처럼 콘텐츠가 빈약한 환경에서 코미디가 독야청청하는 시대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이젠 ‘다(多)채널 다콘텐츠’ 환경에서 살아남을 길을 찾아야 한다.

《개그콘서트》는 최근 개편에서 ‘생활사투리’와 같은 과거 히트작을 다시 채용하고, 스튜디오 바깥으로 나가 꽁트 영상을 찍어오는 ‘좀비 서바이벌’로 형식 다변화를 실험하고, ‘주간 박성광’으로 특정 설정을 반복하는 전형적인 꽁트 구조에서 탈피하고, ‘국제유치원’으로 풍자를 선보였다. 나름 다양한 시도를 한 것이다. 이번 개편은 한두 달에 걸쳐 진행될 거라고 PD가 말했으니, 당분간 새로운 시도들이 이어질 걸로 보인다. 새 풍자 코너의 출격도 예고된 상태다.

그럼에도 상황이 녹록해 보이진 않는다. 시청자들의 기호가 워낙 코미디라는 극 형식에서 멀어졌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의 시청 행태가 수동적으로 바뀌어서 예능이나 인터넷 영상의 자극을 힘 안 들이고 받아들이려고만 한다. 반면에 코미디 극은 이야기에 집중하는 적극적 시청을 요구하는데 그게 시청자를 부담스럽게 한다. 이미 인터넷의 강한 자극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 지상파의 표현 수위로는 어필하기 힘들다는 점도 문제다.

풍자가 코미디의 믿는 구석이다. 예능이나 인터넷 영상이 단발적인 웃음은 줄 수 있지만, 사회적 공감이 담긴 깊은 웃음을 주긴 어렵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이 부분에서 코미디의 활로를 찾는다. 그래서 《개그콘서트》도 새로운 풍자 코너를 준비했을 것이다. 하지만 풍자의 전망도 그렇게 밝지 않다. 풍자 코미디의 적은 민주화다. 권위주의 시절엔 권력을 조금만 희화화하거나, 민감한 이슈를 살짝 언급만 해도 폭소탄이 터지고 호평이 쏟아졌다. 지금은 그런 호시절이 지나서, 얕은 언급 정도로는 대중이 움직이지 않는다. 유튜브에 직설적인 정치 발언이 쏟아지는 세상이다.

KBS2 《개그콘서트》의 한 장면 ⓒ KBS
KBS2 《개그콘서트》의 한 장면 ⓒ KBS

코미디 앞에 놓인 가시밭길

이러니 코미디의 앞날이 어두워 보인다. 하지만 환경이 불리해졌다고 쉽사리 포기하기엔 코미디 장르의 중요성이 크다. 예능의 웃음이 돌발적으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데 반해 코미디의 웃음은 인위적으로 창조되는 것이다. 그래서 코미디가 예능보다 훨씬 깊은 의미, 사회적 공감을 담은 웃음을 만들어낼 수 있다. 사회를 읽고, 대중의 마음을 대변해 당대를 표현하는 웃음이 코미디의 가능성인 것이다. 코미디를 육성하고 살려야 하는 이유다.

코미디를 살리려면 코미디를 보다 관대하게 봐줄 필요가 있다. 표현의 제약이 너무 심하다. 표현 수위의 문제도 그렇고, 풍자 내용도 조금만 정치적일 경우 풍자 대상이 되는 쪽에서 과도하게 반발한다. 코미디언 스스로도 수준을 올려야 한다. 사회와 대중을 제대로 연구해 당대의 폐부를 찔러야 수준 높은 폭소탄이 만들어질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