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롱 佛 대통령의 ‘골칫거리 트럼프’ 다루는 법
  • 최정민 프랑스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9.12 10:00
  • 호수 1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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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오랜만에 佛 언론에서 호평
G7 회담에서 트럼프도 마크롱에 “Great Guy” 찬사

8월26일, 프랑스 비아리츠에서 사흘간 진행된 G7 정상회담이 막을 내렸다. 이날 프랑스와 미국 양 정상은 한자리에서 함께 폐막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흥미로운 광경이 연출됐다. 취재진의 질의응답과 기념촬영까지 모두 마치고 곧장 자리를 뜨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붙잡은 것이다. 한 프랑스 기자가 예정에 없던 추가 질문을 하려 하자, 이를 들어보고 가자며 마크롱이 제안한 것이다. “어제 만찬장에서 미국 영부인이 프랑스 와인을 마시는 걸 봤는데, 프랑스에 부과된 와인세를 철회할 의사는 없습니까?” 프랑스 기자의 돌발질문에 트럼프는 “멜라니아가 프랑스 와인을 좋아하는지 확인해 줄 순 없다”고 재치 있게 받아쳤고 좌중은 웃음바다가 됐다. 마크롱 역시 크게 웃으며 흡족한 듯 트럼프를 향해 엄지를 치켜올렸다.

불과 회담 일주일 전만 해도 미국과 프랑스는 ‘디지털세’(구글과 페이스북 등 글로벌 IT기업에 세금을 부과하는 법)를 둘러싸고 서로 강펀치를 주고받았다. 지난 7월 프랑스 하원에서 디지털세를 통과시킨 것을 두고 미국 정부는 “프랑스 와인에 보복관세를 부과한다”고 반발하며 양국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그러다 이번 2박3일간 회담을 거치는 동안 양국은 다시 돈독한 모습을 연출하며 분위기를 급반전시켰다.

8월26일(현지시간) 프랑스 비아리츠 G7 정상회담 폐막 공동 기자회견을 진행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오른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AP 연합
8월26일(현지시간) 프랑스 비아리츠 G7 정상회담 폐막 공동 기자회견을 진행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오른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 AP 연합

트럼프와 모든 스포트라이트 나눈 마크롱

‘비아리츠 페스티벌’. 이번 G7 정상회담을 두고 프랑스 언론이 붙인 별명이다. 마치 칸영화제처럼 화려하고 볼거리가 풍성한 회담이었다는 의미다. 장소부터 프랑스의 3대 휴양지로 각광받는 스페인 접경 비아리츠 해변으로 정했으며, 7개국 정상의 안전을 위해 경찰 병력만 1만여 명이 동원됐다. 그러나 이러한 볼거리보다 더 큰 관심을 끌었던 것은 트럼프를 다루는 마크롱의 능숙한 ‘스킬(기술)’이었다.

정치학자, 국제관계 전문가들의 분석을 종합하면 이번 회담에서 마크롱이 트럼프의 혼을 쏙 빼놓은 방법은 총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매 순간 트럼프와 스포트라이트를 함께 나누는 것, 둘째, 트럼프의 의견에 반기를 들지 않는 것, 마지막으로 트럼프의 템포에 최대한 맞추는 것이었다. 회담 내내 트럼프는 자신이 주인공 대접을 받았다는 데 매우 흡족해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의장국의 수반으로서 홀로 스포트라이트를 독점할 수 있음에도 마크롱이 철저하게 자신의 옆자리를 트럼프에게 내주면서 그의 만족도를 높였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비아리츠에 도착한 직후 마련된 ‘깜짝 오찬’에서부터 엿볼 수 있었다. 참모는 물론 통역까지 제외한 둘만의 오찬장은 드넓은 팔레스 호텔의 테라스에 마련됐고, 전 세계 카메라 플래시는 두 정상에게 집중됐다.

대화 도중 두 정상은 간간이 이견을 보였지만, 중요한 쟁점에 있어선 비슷한 입장을 갖고 있다는 점을 끊임없이 견지했다. 대표적으로 ‘이란 핵 문제’를 두고도 마크롱은 이란 외무부 장관을 초대하는 ‘모험’을 감행하긴 했으나, ‘이란 핵확산 반대’ ‘이란 주변지역의 긴장 완화’ 부분에 있어선 계속 미국의 주장과 보조를 맞춰나갔다. 폐막 기자회견 자리에서 마크롱은 북핵 해법에 대해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뒤에 있을 것”이라며 전폭적인 지지까지 공개적으로 표명해, 자국으로 돌아가는 트럼프의 발길을 한껏 가볍게 해 주기도 했다. 이처럼 줄곧 마크롱이 트럼프의 템포에 철저히 맞추는 모습을 보인 덕에 이번 회담이 큰 파열음 없이 마무리될 수 있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번 G7 정상회담을 계기로 그동안 감춰져 있던 마크롱의 외교력에 대해 곳곳에서 조명하기도 했다.

 

“양국 핑크빛 무드, 오래 안 갈 것”

미국 방송 NBC의 빌 닐리 런던 특파원은 마크롱 대통령의 이번 회담 전략에 대해 ‘영리한 술책’이라고 평가했다. 애초부터 트럼프와 마찰을 빚을 수 있는 ‘공동선언’(국제회의 후 ‘코뮤니케’라는 명칭으로 발표되는 합동 성명)을 일찌감치 멀리하며 눈높이를 최대한 낮게 잡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회담 이후 A4용지 한 장이 채 안 되는 공동성명만이 배포됐다. 마크롱의 이러한 전략은 지난해 열린 캐나다 G7 정상회담의 ‘트라우마’ 탓이기도 하다. 당시 7개국 정상은 ‘보호무역주의를 비판한다’는 공동선언을 채택했으나, 발표 직후 트럼프가 강하게 반발하며 회담의 모든 성과가 한순간에 무너진 경험이 있다.

그러나 반대로 마크롱이 아무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프랑스 보도채널 ‘France24’의 아르멜 샤리에 논설위원은 “회담 진행 속도가 빨랐다. 다시 말해 어떤 사안도 깊게 들어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회담을 앞두고 기대를 받았던 사회적 불평등 문제, 기후 이슈 등 각종 국제적 사안들이 트럼프의 등장과 함께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그의 외교력에 대해 여러 평가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노란 조끼 시위로 국내에서 뭇매를 맞아온 마크롱이 이번 회담 개최를 통해 어느 정도 ‘숨 쉴 틈’을 마련했다는 데는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모처럼 프랑스 언론에서도 마크롱에 대한 칭찬 보도가 이어졌다. 경제 전문지 ‘레제코’는 ‘마크롱: 국제 긴장관계 해결을 위한 지휘자’라는 제목의 기사로 그를 치켜세웠다. 한 언론은 “G7은 늘 7개국 회담이 아니라, 6+1회담으로 진행된다. 6개 나라가 미국을 어떻게 상대할지 골머리를 앓는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마크롱은 외교 기술을 제대로 습득한 것 같다”고 호평했다. 트럼프 역시 마크롱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폐막 전야, 회담 성과를 묻는 프랑스 언론의 질문에 트럼프는 “환상적인 회담이었다”며“그(마크롱)는 Great Guy(멋진 친구)”라고 직설적 칭찬을 쏟아냈다.

두 나라 정상의 핑크빛 무드는 얼마나 이어질까. 프랑스 대표적 정치학자 파스칼 보니파스 국제전략연구소장은 양국 간 무역분쟁의 불씨가 아직 남아 있다며 긴장을 늦추긴 이르다고 지적했다. 그는 “트럼프 입장에선 미국이 무역적자를 보는 모든 나라가 곧 적국”이라고 전제하며 “북한이 트럼프의 적이 아닌 것은 무역적자가 없기 때문”이라는 흥미로운 분석을 내놓았다. 그러면서 “중국과의 분쟁이 어느 정도 해소되면 다음 타깃은 유럽연합이 될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화려했던 회담의 여운이 사라지면 프랑스 곳곳에서 다시 ‘회담 후 손에 쥔 건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마크롱에 대한 실질적인 외교 성과를 계산하게 될 것이란 관측도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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