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불거진 재벌가 3세 ‘일탈’에 국민은 ‘허탈’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19.09.06 15:00
  • 호수 1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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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마약, 갑질 등 유형도 다양…재벌 ‘봐주기 수사’나 ‘솜방망이 처벌’ 원인?

재벌가 3세의 마약 혐의가 또 불거졌다. 이번엔 CJ가(家)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장남이자 가장 유력한 후계자인 이선호 CJ제일제당 부장이 미국에서 대량의 마약을 밀반입하다 적발된 것이다. 이 부장이 반입을 시도한 것은 변종마약인 액상 대마 카트리지와 캔디·젤리형 대마 수십여 개다. 그는 소변검사에서 대마 양성반응이 나왔으며, 검찰에서 대부분 혐의를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일로 CJ는 기업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고, 이 부장을 중심으로 한 승계작업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마약을 비롯한 재벌가 3세들의 일탈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일그러진 재벌가의 단상이 단골소재로 등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대표적인 것이 영화 《베테랑》이다. 극 중에서 악역으로 등장한 재벌가 3세 조태오(유아인 분)는 그동안 재벌가들이 일으킨 사회적 물의의 집약체다. 마약은 기본이다. 조태오는 항상 마약을 소지하고 다니며 알사탕 까먹듯 한다. 그가 위기를 맞게 된 것도 마약 때문이다. 연예계와 정·재계 인사 자녀들과의 마약 파티가 꼬리를 잡혔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해외 도피를 결정한 상황에서도 조태오는 출국 직전까지 환각파티를 벌인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장남인 이선호 CJ제일제당 부장이 최근 마약 혐의로 구속됐다. ⓒ 시사저널 사진자료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장남인 이선호 CJ제일제당 부장이 최근 마약 혐의로 구속됐다. ⓒ 시사저널 사진자료

잊을 만하면 불쑥 튀어나오는 마약 이슈

현실도 영화와 다르지 않다. 우리 국민들에게 재벌가 자재들의 마약 투약 뉴스는 더 이상 놀랍지 않다. 워낙 빈번하게 벌어져온 일이어서다. 올해만 해도 SK·현대·남양유업 등 내로라하는 집안 자제들이 논란에 얽혔다. 시작은 올해 초 마약공급책 이씨가 검거되면서다. 이로 인해 올해 4월 이씨로부터 액상 대마 카트리지를 구매하고 투약한 혐의로 최영근 SK디앤디 매니저가 체포돼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고(故) 최종건 SK그룹 창업주의 장손이자 고(故) 최윤원 SK케미칼 회장의 외아들이다.

현대가(家) 3세인 정현선 현대기술투자 상무도 이씨로부터 마약을 구매해 투약한 혐의로 체포됐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8남 정몽일 현대엠파트너스(옛 현대기업금융) 회장의 장남인 정 상무는 최 매니저와 함께 대마를 투약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두 사람은 올해 8월 결심공판에서 징역 1년6개월을 구형받고 재판부의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남양유업에서도 3세의 마약 논란이 불거졌다. 고(故) 홍두영 남양유업 명예회장의 외손녀 황하나씨의 필로폰 투약 혐의가 불거지면서다. 사실 황씨의 입건 시점은 2015년이다. 그러나 4년여가 지난 올해 들어 논란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은 과거 ‘봐주기 수사’로 황씨에게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다. 재수사 결과 황씨는 구속됐고, 담당 경찰관은 직무유기와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검찰에 넘겨졌다.

이 외에 정현선 상무의 여동생인 정문이씨도 2012년 대마초 투약 혐의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고, 또 다른 현대가 3세인 정광선씨와 정인선씨도 마약 혐의를 받았다. 또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도 2014년 대마초를 피운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정일선 현대비앤지스틸 사장은 2016년 ‘운전기사 갑질’로 여론의 비판을 받았다. ⓒ 연합뉴스
정일선 현대비앤지스틸 사장은 2016년 ‘운전기사 갑질’로 여론의 비판을 받았다. ⓒ 연합뉴스

을들의 눈물 쏙 빼놓는 ‘갑질러’들

재벌가에서 반복돼 온 또 다른 일탈 유형은 ‘갑질’이다. 이 역시 영화 《베테랑》에 잘 묘사돼 있다. 시작은 조태오가 부당해고로 1인 시위를 벌이는 화물트럭 기사 배철웅(정웅인 분)과 그의 아들을 사무실로 불러들이면서다. 조태오는 배철웅의 고용주인 국동화물 소장을 불러들여 싸움을 붙였다. 조태오는 아들이 보는 앞에서 무차별 폭행을 당한 배철웅에게 돈을 건넨다.

이는 2010년 SK가 2세인 최철원 전 M&M 대표의 이른바 ‘맷값폭행’이 모티브가 된 장면이다. 최 전 대표는 최종현 창업주의 동생인 고(故) 최종관 SKC 부회장의 아들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는 사촌지간이다. 사건 내용은 영화와 별반 차이가 없다. SK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인 탱크로리 기사를 사무실로 불러 야구방망이로 폭행하고 맷값으로 2000만원을 준 것이다. 이 일은 국민들의 큰 공분을 불러일으키면서 재벌가 갑질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기록됐다.

최근에는 한진가 역시 3세들의 잇따른 갑질 논란으로 곤욕을 치렀다.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장녀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땅콩회항’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었다.

조 회장의 차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는 지난해 3월 ‘물컵갑질’로 사회적 지탄을 받았다. 한 광고대행사와 대한항공 광고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에서 고압적인 태도로 소리를 지르고 음료수병을 던진 것이다. 조 전 전무는 광고대행사 직원에게 물을 뿌리고 급기야 회의실에서 쫓아내기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림가 3세인 이해욱 대림산업 회장과 현대가 3세 정일선 현대BNG스틸 사장은 운전기사를 상대로 갑질을 한 사실이 논란이 됐다. 이 부회장은 2016년 운전기사를 상습적으로 폭언과 폭행한 혐의로 형사처벌을 받았다. 특히 그는 운전기사들에게 ‘사이드미러를 접고 운전하라’는 위험한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져 공분을 샀다.

정일선 사장은 3년간 운전기사 61명을 교체했는데, 이들에 대해 법정 근로시간(56시간)을 초과한 주 80시간 이상의 노동을 강요한 사실이 드러났다. 특히 정 사장의 운전기사들은 140쪽에 달하는 매뉴얼을 숙지하고, 매뉴얼대로 하지 않으면 폭언과 폭행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삼남 김동선 전 한화건설 팀장은 총 세 차례의 주취 폭행 사건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었다. ⓒ 연합뉴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삼남 김동선 전 한화건설 팀장은 총 세 차례의 주취 폭행 사건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었다. ⓒ 연합뉴스

술 취하면 보이는 것 없는 주폭들

재벌가 3세 가운데선 술에 취해 물의를 일으킨 이른바 ‘주폭(酒暴)’들도 적지 않다. 영화 《베테랑》에서 조태오는 룸살롱에서 술에 취한 채로 처음 등장한다. 이곳에서의 조태오의 행실은 눈을 의심하게 할 정도다. 사내 두 명에게 팔씨름을 시킨 뒤 자신이 베팅한 이가 지려 하자 상대편의 목을 담뱃불로 지지는가 하면 심기를 건드렸다는 이유로 여자친구 얼굴에 케이크를 발라버리기도 한다. 심심풀이로 여종업원 옷 속에 얼음을 들이부은 건 귀여운 수준이다.

재벌가 3세 주폭의 대표 격은 단연 김승연 회장의 삼남 김동선 전 한화건설 팀장이다. 그동안 세 차례에 걸친 폭력 사건으로 물의를 빚었는데, 모두 술에 취해 벌어진 일이다.

첫 사건은 2010년이다. 서울의 한 호텔 주점에서 여종업원을 성추행하고 보안직원을 폭행한 것이다. 또 2017년 초에는 한 술집에서 만취 상태로 종업원 2명을 폭행하고 순찰차를 파손했고, 그해 9월에는 로펌 소속 신입 변호사들과의 술자리에서 폭언과 폭행을 했다.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의 장남 장선익 동국제강 이사도 지난해 12월 서울 용산구의 한 술집에서 지인들과 술자리를 가지다 사고를 쳤다. 종업원과 시비가 붙어 진열장에 컵을 집어던진 것이다. 이로 인해 고급 양주 5병이 파손되면서 장 이사는 재물손괴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중견기업 두정물산 임병선 회장의 아들인 임범준씨는 ‘기내난동’ 사건으로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다. 2016년 말 베트남에서 국내로 향하는 대한항공 여객기 내에서 술에 취해 옆자리에 있던 승객과 승무원들을 폭행한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임씨는 자신을 제압하던 승무원에게 침을 뱉는 등 2시간여에 걸쳐 난동을 부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이처럼 재벌가 3세들의 일탈이 끊이지 않고 언론에 등장하는 까닭은 뭘까. 그 가장 큰 원인으로는 재벌가 3세들이 ‘유전무죄’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더라도 처벌을 피해 가거나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기 때문이다.

실제 ‘맷값폭행’의 최철원 전 대표는 2011년 항소심에서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자유의 몸이 됐다. 폭행 전과 3범인 김동선 전 팀장도 이렇다 할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다. 피해자들과의 합의와 선처가 있었기 때문이다.

‘땅콩회항’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조현아 전 부사장도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고, 동생인 조현민 전 전무도 ‘물컵갑질’과 관련해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해욱 회장과 정일선 사장에 대한 처벌 수위도 다르지 않다. 이들 사례 역시 모두 벌금형으로 마무리됐다. 일부 의식 없는 재벌가 3세들의 불의한 행동에 제동을 걸 수단이 부재한 셈이다. 재벌 등 특권층에 대한 ‘봐주기 수사’나 ‘솜방망이 처벌’을 근절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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