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 않는 할리우드의 별 브래드 피트, 다시 반짝이다
  •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9.21 12:00
  • 호수 1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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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부터 제작자까지 가능한 스타…《애드 아스트라》로 본 브래드 피트의 위치

브래드 피트는 데뷔 이래 한 번도 스타성을 잃은 적 없다. 1980년대 후반 스크린에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그의 존재는 곧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델마와 루이스》(1991), 《흐르는 강물처럼》(1992) 등 초기작부터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 타이틀을 놓아본 적 없던 그의 나이는 이제 어느덧 50대 중반. 제니퍼 애니스톤과 안젤리나 졸리로 이어진 떠들썩했던 결혼생활과 이혼은 피트를 가십 뉴스의 단골손님으로 만들었지만, 이것이 피트가 걸어온 세월 전체를 증명하지는 않는다. 그사이 그는 스크린 안팎으로 점점 더 완숙함을 뽐내는 영화인이 됐다. 현재 피트는 배우로서, 제작자로서 할리우드에 길이 남을 배우로 끊임없이 진화 중인 몇 안 되는 존재다.

영화 《애드 아스트라》의 한 장면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영화 《애드 아스트라》의 한 장면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인간의 심연이라는 우주에 가닿는 연기

신작 《애드 아스트라》는 100년 뒤 미래를 배경으로 한 SF다. 피트는 우주 비행사 로이를 연기한다. 로이의 아버지는 그가 어릴 적 우주에서 지적 생명체를 찾는 프로젝트를 수행하던 중 실종됐다. 그럼에도 그는 지금까지도 모든 우주 비행사들의 존경을 받는 전설적 존재다. 어느 날 지구에 전류 급증 이상 현상이 일어나고, 그 원인으로 로이의 아버지가 진행하던 ‘리마 프로젝트’가 중심에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아버지는 살아 있는 것일까. 로이는 비밀을 풀기 위해 우주로 향한다. 제목인 《애드 아스트라》는 케네디 우주센터 기념비에 있는 문구를 인용한 것이다. 온전한 문장은 ‘퍼 에스페라 애드 아스트라(pεr spera at stra)’. ‘역경을 헤치고 별을 향하여’라는 뜻이다.

우주는 최근 수많은 영화들 안에서 다양한 배경으로 등장해 왔다. 《그래비티》(2013), 《인터스텔라》(2014), 《마션》(2015)과 같이 드넓은 공간 안에서 더욱 사적이고 인간적인 감정을 이야기하는 작품들도 나왔다. 이들 영화의 공통된 목표는 지구로의 귀환이며, 주인공들에게는 감동적인 서사가 존재한다. 과거로부터 명맥을 이어온 《스타워즈》나 《스타트랙》 시리즈 같은 스페이스 오페라(우주를 무대로 하는 활극적 우주 공상과학 장르)도 꾸준히 등장했고, 코믹스를 바탕으로 한 슈퍼히어로 장르 영화의 배경 역시 우주로 넓어졌다.

《애드 아스트라》는 조금 다른 노선을 걷는다. 우선 이 영화는 최근 등장한 우주 배경 영화를 통틀어 가장 광활하고 깊은 우주에 가닿는 데 성공한다. 그간 여러 차례 다뤄진 달과 화성도 《애드 아스트라》 안에서는 색다른 배경으로 기능한다. 다만 이 영화의 우주는 단순히 태양계 전체를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로이의 내면 그 자체이기도 하다.

관객은 자신의 상태를 차분히 설명하는 로이의 내레이션에 따라 그의 심리에 이입해 간다. 그는 어딘가 고장 난 상태다. 사적인 감정을 극도로 배제하며 살고 있지만, 그건 상처와 분노를 억누르기 위해서다. 그는 지쳐 있다. 아버지를 사랑하지만 증오한다. 우주를 동경하며 많은 것을 포기하지만, 실상 깊은 마음은 지구에 있는 사랑하는 것들로 향한다. 피트는 로이라는 고독한 안내자로서 충실한 연기를 선보인다. 로이의 텅 빈 내면은 어두운 우주와 맞닿아 있다. 여기에 존재하는 건, 끝을 알 수 없는 공허함이다. 아무것도 없음. 《애드 아스트라》를 지탱하는 건 그 아득한 ‘무(無)’의 정서다.

피트는 이 영화의 주연배우이자 제작자이기도 하다. 마냥 상업적이라고 보기엔 어려운 이 기획을 가능한 것으로 바꾸어 세상에 내놓게 된 일등공신은 단연 피트의 스타성이다. 상업적인 기획과 예술적 가치가 있는 작업 그 사이 어딘가. 좋은 안목과 유연함을 지니고 연기에서부터 제작자까지 가능한 스타. 지금 할리우드에서 피트가 차지하는 중요한 위치다.

피트의 또 다른 신작 《원스 어폰 어 타임 인…할리우드》도 흥미로운 작품이다. 여기서 피트는 제작자의 위치를 내려놓고,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시끌벅적하게 주무르는 세계의 완벽한 일원이 된다. 피트는 한물간 액션 스타 릭 달튼(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스턴트 배우이자 매니저 클리프 부스를 연기한다. 1969년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부인이었던 샤론 테이트 살해 사건을 모티브로 실제와 허구를 넘나드는 이 영화는 당시 할리우드의 풍경에 보내는 러브레터 같은 작품이기도 하다. 이 안에서 피트는 타란티노 감독의 짓궂은 농담 속 주인공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전성기 시절 스티브 매퀸과 버드 에킨스, 버트 레이놀즈와 할 니드햄을 보는 듯한 디카프리오와 피트의 모습에서는 현재 최고의 위치에 있는 배우들이기에 가능한 여유와 매력이 묻어난다.

영화 《애드 아스트라》의 우주 비행사 로이를 연기한 브래드 피트
영화 《애드 아스트라》의 우주 비행사 로이를 연기한 브래드 피트

그리고 Plan B

피트가 뛰어난 안목과 좋은 연기를 보였던 건 비단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단지 실력으로 주목받기엔, 그걸 단숨에 가려버릴 만큼 언제나 심하게 빼어난 외모의 소유자였을 뿐이다. 다행히 피트가 걸어온 길은 그 스스로도 자랑스러울 필모그래피가 증명한다. 피트의 필모에는 《오션스》 시리즈와 《트로이》(2004),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2005) 그리고 《월드워 Z》(2013) 같은 대형 흥행작들도 존재하지만, 그가 배우로서 의미 있는 작품에 출연하는 것을 더 선호했다는 것은 함께한 감독들이 증명한다. 테리 길리엄(《12 몽키즈》), 데이빗 핀처(《세븐》 《파이트 클럽》),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바벨》), 장 자크 아노(《티벳에서의 7년》), 테렌스 맬릭(《트리 오브 라이프》) 등의 이름이 그 증거다.

2002년 제작사 ‘Plan B’를 설립한 이후 기획과 제작의 행보는 더욱 눈부시다. 《디파티드》(2006),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2006), 《월드워 Z》(2013), 《노예 12년》(2014), 《옥자》(2017) 등은 피트가 제작자로서 혹은 배우를 겸하며 쌓아올린 필모그래피다. ‘차선’이라는 뜻처럼, 이 제작사는 다른 투자자나 제작자들이 선뜻 나서기 어려운 프로젝트나 신인 감독의 작품을 발굴하는 것을 비전으로 삼는다. 영화 역사에 길이 남는 영화들을 만들고 싶다던 피트의 목표는 Plan B를 통해 작품성과 상업성을 모두 충족하는 방향으로 이뤄지고 있다. 대중과 평단이 계속해서 그의 미래를 더 기대하게 만든다는 것. 피트는 그 쉽지 않은 길을 훌륭한 방식으로 걸어가고 있다.

 

오스카 연기상 트로피는 언제쯤 그의 손에?

아카데미 시상식은 뜻밖에도 피트에게 연기상을 수여한 적이 없다. 그가 처음으로 후보에 오른 건 1996년이다. 《12 몽키즈》로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에는 실패했다. 첫 주연상 후보로 이름을 남긴 영화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8). 피트가 제작자로도 활약한 《머니볼》(2011)은 작품상과 남우주연상 부문에 후보로 올랐으나, 이 역시 수상으로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2014년과 2016년은 피트가 제작자로서 만든 작품들인 《노예 12년》(2013)과 《빅 쇼트》(2015)가 각각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이 중 《노예 12년》은 그해 작품상을 수상했다. 이는 피트가 제작자로서 거머쥔 첫 오스카 트로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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