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언제까지 서울 ‘님비’ 떠안나]① 경기도 ‘기피·혐오시설 공화국’ 오명
  • 경기취재본부 서상준 기자 (sisa220@sisajournal.com)
  • 승인 2019.09.24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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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택은 서울시민 누리고, 피해는 고스란히 경기도민 몫
'화장장, 분뇨 처리시설' 기피시설, 고양·파주 등 경기북부 집중
"경제적피해 최소 1조3000억, 환경적 피해 연간 약 300억 추정"

주민기피시설을 둘러싼 경기도와 서울시의 갈등은 수년 째 지속되고 있다. 갈등 양상의 골자는 혜택은 서울시민이 누리면서 악취, 분진, 소음 등으로 인한 피해는 경기도민들이 떠안고 있어서다. 군사시설보호, 팔당상수원보호구역 등의 규제와 악취 등 각종 환경오염으로 인한 피해도 해묵은 과제로 쌓여있다. 특히 이들 시설은 지역주민 피해와 함께 지역 균형발전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고 있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기피시설 중 분뇨·하수 처리를 담당하는 난지물재생센터. 인근 주민들이
서울시가 운영하는 기피시설 중 분뇨·하수 처리를 담당하는 '난지물재생센터'에 분뇨를 싣고 온 차량이 들어서고 있다. ⓒ시사저널 서상준

'서울시 운영' 경기도내 기피시설 56곳…고양·파주 등 경기북부 집중

화장장, 분뇨·폐기물 처리시설 등 서울시가 운영·추진 중인 경기도내 '기피·혐오시설'은 자그마치 56곳에 달한다. 부문별로 수용시설 28개소, 장사시설 12개소, 교통관련 12개소, 환경관련시설 4개소 등으로 서울시민들이 기피하는 혐오시설이 대부분이다. 경기도가 서울시의 기피시설 총집합소인 '기피·혐오시설 공화국'으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역별로 경기 고양시와 파주 등 경기 북부지역에 해당 기피시설이 집중돼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고양시의 경우 서울시립승화원(대자동), 서울시립벽제묘지(벽제동), 서울시 난지물재생센터(현천동), 서대문구 음식물 처리시설(현천동) 등 5개소와 행정구역상 서울에 속하지만 고양시와 경계에 위치한 시설(재활용집하장, 자원순환센터)까지 합치면 무려 7곳이나 된다. 이 중 서울시립승화원과 벽제묘지는 50년 이상 운영 중이고, 다른 시설들도 30~40년 이상을 운영해 오면서 지역간 갈등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파주시 광탄면에도 118만평 규모의 서울시립 용미리 제1, 2묘지(총 7만8605기 봉안)가 만장돼 있다.

이렇게 보면 서울시민은 경기도에서 장례를 치른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서울시 자치구가 운영하고 있는 봉안시설도 경기도에 위치해 있다.

고양시는 그동안 서울시가 운영하는 벽제승화원, 난지물재생센터 등 기피시설에 대한 문제점을 꾸준히 제기해왔다. 주민기피시설대책위원회 설립부터 민원대책간담회, 주민피해실태조사 등 시사저널이 파악한 것만 14차례나 된다. 지난 2012년 5월에는 서울시와 고양시간 '상생발전을 위한 공동합의문'을 체결해 기피시설 문제 해결을 위한 원칙적 합의까지 도출했지만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고양시 관계자는 "서울시에서 고양시 덕양구에 운영중인 서울시립승화원으로 인해 40년 넘게 지역 주민들이 정신적·물질적 피해를 입었으나 이에 대한 보상은 미흡했다"며 "설, 추석 등 성묘객이 집중돼 극심한 교통 혼잡 및 교통체증으로 지역주민의 생활을 제한하고 있어 주민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난지물재생센터 시설개선 "사실상 방치"…슬러지 무단매립 정황 포착

과거에는 부각되지 않던 도내동 차고지 불법 문제, 은평자원순환센터 입지, 서대문구 음식물처리시설 운영 등 새로운 갈등까지 여기에 더해지면서 양 도시가 체결한 공동합의문의 본래 취지는 이제 무색해졌다. 특히 은평 광역자원순환센터 문제는 인근 주민이 정부당국과 자치단체에 제기한 민원이 월 평균 5000건에 달해 국가인권위원회도 '심각 민원'으로 분류할 만큼 국가적 차원의 갈등이 심화된 상황이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기피시설 중 분뇨·하수 처리를 담당하는 '난지물재생센터' 입구에 주민들이 걸어 놓은 현수막. ⓒ시사저널 서상준
서울시가 운영하는 기피시설 중 분뇨·하수 처리를 담당하는 '난지물재생센터' 입구에 인근 주민들이 걸어 놓은 현수막이 눈에 띈다. ⓒ시사저널 서상준

난지물재생센터 인근 주민들의 불만도 터져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시 소재 물재생센터는 2010년부터 수천 억원의 예산을 편성해 시설 현대화를 추진해온 반면, 고양시에 위치한 난지물재생센터의 시설 개선사업은 후순위로 밀려 있다. 탄천물재생센터가 2009년부터 이미 공원화 사업을 진행한 데 비해 난지물재생센터는 거의 방치 수준이란 지적이다.

여기에 고양시의회 환경경제위원회는 최근 현장점검을 통해 난지물재생센터 내 유휴부지에 무단으로 슬러지를 매립·야적한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을 포착했다. 고양시의회는 오물 특유의 불쾌한 냄새로 뒤덮여 있었고, 하수 슬러지로 오염된 토양에 뒤섞인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물웅덩이에서는 기포가 계속해서 끓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하수슬러지가 매립 또는 야적된 것으로 보이는 오염토양의 시료를 채취해 경기도 보건환경연구원에 성분검출을 의뢰한 상황이다.

 

서울시민도 '장사시설, 분뇨·폐기물 처리시설' 가장 기피

전문가들은 서울시 기피시설로 인한 경기도의 환경적, 경제적 피해도 심각할 것으로 분석했다. 경기연구원에 따르면 고양시 장사시설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최소 1조3000억원, 난지물재생센터의 악취로 인한 환경적 피해는 연간 약 300억원으로 추정된다. 

이들 기피시설은 소음이나 분진, 악취 등 집단 민원에 떠밀려 경기도에 정착한 것들로 1970년대부터 1990년 초까지 지자체 시행 전 또는 민선 1, 2기에 집중 설치됐다. 해당 자치단체의 당시 사전 동의나 법적 강제 규정을 마련해 놓지 않은 상태에서 마구 설치됐지만 누구하나 반대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지금 와서는 지역이기주의로 몰아세우며 '님비'(공공의 이익에는 부합하지만 자신이 속한 지역에는 이롭지 아니한 일을 반대하는 행동)라는 오명을 뒤집어쓸까봐 속앓이만 하는 분위기다.

기피시설 입지문제는 전국 어디서나 지역현안으로 대두되고 있다. 서울 시민들 또한 장사시설과 분뇨·폐기물 처리시설을 상대적으로 가장 기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연구원이 서울시민을 상대로 갈등사례를 분석한 결과, '심각한 수준으로 느끼는 갈등의 순위'는 주민기피시설, 지역개발, 도로·교통 순으로 나타났다. 서울 원지동 추모공원은 계획에서부터 실제 개장까지 14년이나 소요됐다. 혜택은 다수가 누리지만 피해는 특정지역에만 발생하는 지역 간 갈등 문제해결이 시급하다는 걸 보여주는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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