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스’ 고이즈미, 아베 독주 막을까
  • 류애림 일본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9.26 15:00
  • 호수 1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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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아베’로 급부상하며 환경상 발탁…고이즈미 前 총리 아들로 ‘反아베’ 견지

지난 8월7일 오후 일본 총리관저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총리 동향에 관한 보고나 발표가 아니라 일본 자민당 소속 중의원 고이즈미 신지로의 ‘결혼 발표’였다. 아베 신조 총리와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에게 결혼 소식을 알리기 위해 방문한 총리관저에서 즉석 기자회견이 열렸고, TV방송을 통해 전국에 중계됐다. 결혼 상대는 고이즈미 의원보다 4살 연상의 유명 아나운서 다키가와 크리스텔로 두 사람의 결혼은 단숨에 화제가 됐다. 게다가 다키가와가 임신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즉석으로 열린 회견이라고는 하지만 실상은 고이즈미의 철저한 계산 아래 벌어진 깜짝 발표라는 것이 중론이다. ‘포스트 아베’로 불리며 일본의 차기 총리로 지목되고 있는 고이즈미 신지로가 ‘어떤’ 사람인지를 여실히 보여준 자리였다는 것이다.

(왼쪽)고이즈미 신지로 (오른쪽)아베 총리 ⓒ EPA 연합·Xinhua
(왼쪽)고이즈미 신지로 (오른쪽)아베 총리 ⓒ EPA 연합·Xinhua

인기영합주의 비판도 끊임없이 제기

고이즈미 신지로는 1981년 4월생으로 현재 만 38세다. 10년 전인 2009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중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 28세의 나이로 정계에 입문하며 이름을 알렸다. 신지로의 아버지는 바로 87, 88, 89대(2001~06) 일본 총리를 역임한 고이즈미 준이치로다. 신지로는 준이치로의 차남으로 3살 위의 형 고이즈미 고타로는 배우로 활약하고 있다. 간토가쿠인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한 신지로는 미국 컬럼비아대학 대학원에서 2006년 정치학 석사를 취득했다. 2007년 귀국해 아버지 준이치로의 비서로 활동하며 정계 입문을 준비했다. 2002년 배우로 데뷔한 형 대신 아버지 뒤를 이을 준비를 착실히 했고, 아버지 준이치로는 2008년 정계 은퇴를 선언하며 정치 후계자로 신지로를 지목했다. 이러한 ‘세습’은 일본 정계에서는 드문 일이 아니다. 아버지의 지역구, 가나가와 11구에서 아버지의 정치적 기반을 바탕으로 선거기간 내내 우위를 차지했고 2009년 28세의 나이로 의회 진출에 성공했다.

이후 고이즈미 신지로는 4회 연속 중의원에 당선됐다. 지난 9월11일에는 새로 꾸려진 일본 내각의 환경상에 발탁됐다. 역대 남성 각료 중에서 전후 최연소 기록이다. 이전에는 다나카 에이사쿠 전 총리 등이 만 39세에 처음 각료로 임명된 바 있다. 남녀 통틀어서는 2008년 34세에 저출산정책 담당 대신으로 발탁된 오부치 유코와 1998년 37세의 나이로 우정 대신이 된 노다 세이코에 이어 3번째 최연소 각료다. 이런 신지로는 일본 정계의 ‘프린스(왕자)’로 불린다. 4대째 정치가를 배출한 정치 명문가 출신에 잘생긴 외모를 갖춘 신지로는 주목받는 ‘스타’가 없었던 자민당은 물론 일본 정계에서 단숨에 인기 정치인이 됐다. 중의원 취임 첫해에 신지로가 기획한 사회 견학 투어 ‘해상자위대 요코스카 기지 무료견학’은 50명을 모집하는 데 무려 약 5200명이 신청하기도 했다. 실제 투어에 참여한 49명 중 40명이 여성이었다고 한다. 특히 여성 유권자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데 환경대신에 임명된 것도 여성이 환경문제에 더 관심이 많다는 것을 고려한 인사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8월31일에는 내년 초 태어나는 아이를 위해 육아휴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혀 또다시 주목을 받았다. 환경대신에 임명된 후에는 공직자의 육아휴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일본 내 논의가 활발해졌다. 중책을 맡은 각료가 육아휴직을 해서는 안 된다는 반대 입장과 외국에서는 총리도 육아휴직을 한다며 일본의 현재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찬성 입장이 대립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남성의 육아휴가 취득률이 10%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신지로는 9월11일 환경상 취임 후 인터뷰에서 “(육아휴직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을 뿐인데 찬반양론을 포함해 이런 소란이 일다니, 일본은 딱딱하다. 고루하네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화려한 언변과 젊음이 신지로를 일본 정계의 왕자로 만들었고 이제는 ‘포스트 아베’, 차기 총리의 자리에 가까워지게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동시에 ‘인기영합주의’라는 비판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고이즈미 신지로는 니혼게이자이신문과 TV도쿄가 실시한 ‘누가 차기 총리에 적합한가’라는 여론조사에서 꾸준히 수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 조사는 2017년 8월부터 다섯 차례에 걸쳐 이뤄졌는데 신지로는 꾸준히 3위 안에 들었다. 지난 5월 조사에서는 23%를 얻어 아베 현 총리와 함께 1위였으나, 결혼 발표 후인 8월30일~9월1일에 이루어진 조사에서는 29%로 18%를 획득한 아베 총리를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 또 9월11, 12일 환경대신에 임명된 후에 이루어진 조사에서는 9%포인트 하락하기는 했지만 20%를 획득해 16%를 획득한 아베 총리를 다시 한번 앞섰다. 9월14, 15일 실시한 아사히신문의 여론조사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베 이후에 자민당 총재로 가장 적합한 인물이 누구인가를 묻는 질문에서 신지로가 22%를 획득해 1위를 차지했다.

 

보수 성향에도 아베 총리와는 대립각 세워

자민당 내 어느 파벌에도 속하지 않은 ‘무파벌’의 고이즈미 신지로는 계속 아베 총리와 거리를 둬왔다. 작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는 아베 총리의 경쟁자인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의 편에 섰다. 아베 총리가 연루된 것으로 보이는 모리토모학원 사학 비리와 재무성의 관련 문서 조작 사건을 ‘헤이세이 정치사에 남을 큰 사건’이라고 발언하는 등 아베 총리에 대해서는 비판적 입장이었다. 그러나 아베의 측근인 스가 관방장관과는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가나가와현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데 자민당의 농림부 회장을 맡고 있는 스가는 농협 개혁에 힘쓰고 있는 신지로를 눈여겨봐 왔다고 한다. 이번 입각에도 스가의 영향이 컸다고 전해진다.

신지로가 ‘파격적인’ 모습만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중의원이 된 후 매년 8월15일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고 있다. 이는 아버지 준이치로의 정치적 계승으로 보인다. 2013년에는 자신의 참배가 취재거리가 아니라고 말하기도 했다. 신지로의 아버지 준이치로 전 총리는 2001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내가 총리가 된다면 매년 8월15일 야스쿠니 신사에, 어떠한 비판이 있더라도 반드시 참배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바 있다. 준이치로 전 총리는 2001년부터 2005년까지는 비판을 의식해 8월15일을 피했지만 2006년에는 8월15일에 참배했다. 준이치로는 총리가 되기 전에도 정계 입문 후 거의 매년 참배해 왔다. 그런 아버지의 대를 이어 중의원이 된 아들 신지로 역시 야스쿠니 신사를 찾아 매년 고개를 숙이고 있다. 다만 아베 총리 등이 소속된 초당파 모임 ‘다 함께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국회의원회’ 의원들과는 여전히 거리를 두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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