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북·미 회담, 평양도 워싱턴도 아니라면 부산?
  • 이영종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장 (lee.youngjong@joongang.co.kr)
  • 승인 2019.09.23 16:00
  • 호수 1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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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김정은 운명 건 3라운드 '담판 승부'…회담 장소 둘러싼 북・미 신경전

북한과 미국의 정상회담이 수면 위로 다시 떠올랐다. 북·미 실무협상 일정이 ‘9월 하순’으로 윤곽을 드러낸 데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연내 3차 정상회담’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6월30일 판문점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깜짝 회동한 이후에도 소강상태를 면치 못했던 북·미 비핵화 및 관계개선 협상 시간표가 다시 짜일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올해 안에 3차 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란 게 기정사실화하면서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건 장소 문제다. 북·미 정상회담은 의제나 수행인사, 협상의 전말 못지않게 어디에서 개최될 것인가 하는 게 초미의 관심사가 돼 왔다는 점에서다. 역사적인 의미를 갖고 국제사회의 큰 주목을 받는 이벤트니만큼 그 무대를 어디로 잡느냐가 중요한 관전 포인트로 자리 잡은 게 사실이다. 지난해 6월 첫 정상회담 장소였던 싱가포르나 올 2월 하노이 2차 정상회담 모두 그 선정 과정부터 최종 성사에 이르기까지 드라마틱한 전개가 펼쳐졌다.

이번 3차 북·미 정상회담의 경우 평양 카드가 가장 먼저 부상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8월 중순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평양을 방문해 달라’고 초청했다는 언론보도가 나온 것이 계기가 됐다. 김정은의 트럼프 방북 초청은 싱가포르→하노이→판문점에 이어 자신의 홈그라운드로 미국 대통령을 불러들여 비핵화나 대북제재 해제, 연락사무소 개설 같은 굵직한 의제를 놓고 담판을 벌이겠다는 계산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월30일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만나 함께 남측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월30일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만나 함께 남측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金, 트럼프 불러놓고 통 큰 합의 모색

김정은이 트럼프 초청 친서를 보냈다는 언론보도에 한·미 양측은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청와대는 보도가 나온 9월16일 브리핑에서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밝혔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같은 날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그런 친서가 얼마 전에 있었다는 것은 저희가 미국 측으로부터 상세히 설명을 들었다”고 답변했다가 곧 번복해 논란이 벌어졌다. 북·미 정상 간 오간 친서 수준의 소통에 대해 한국 정부가 언급하는 데 따른 부담을 의식했다는 해석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김정은 위원장이 자신을 평양으로 초청했다는 보도에 대한 확인요청을 받고 “(김 위원장과의) 관계는 좋다. 그 문제는 얘기 않겠다”며 말을 아꼈다. 그러면서 방북 문제에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그는 ‘평양에 갈 의향이 있느냐’는 언론 질문에 “(지금은) 아니다. 아직 갈 길이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비핵화 문제 등 북·미 간 현안이 풀리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방북 문제는 시기상조라는 점을 강조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의 미국 방문을 언급한 대목도 눈길을 끌고 있다. 트럼프는 자신의 방북을 점치는 관측에는 선을 그으면서도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따라 그(김정은) 역시 미국에 오고 싶어 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방북 문제와 함께 김정은의 방미에 대해서도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이런 국면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유엔 방문과 한·미 정상회담 일정이 전격 발표되면서 일각에서는 판문점 회동 때와 같은 남북한과 미국 최고지도자 간의 3자 만남이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판문점 만남’을 제의한 트럼프의 트위터 글에 북한이 즉각 반응하고 전격적인 만남이 이뤄졌던 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는 얘기다. 당초 이낙연 총리가 참석하려 했던 유엔총회에 문 대통령이 가는 것으로 결정되고,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이 잡히면서 관심이 쏠렸다.

문 대통령은 9월22~26일 미국 뉴욕을 방문해 유엔총회 기조연설과 한·미 정상회담을 한다. 앞서 문 대통령은 9월16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통해 북·미 대화를 적극 지지하고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외교소식통은 “경호·의전 등 실무적 준비 기간이나 북·미 간의 협상 진행 과정을 고려할 때 이번에 김정은의 방미가 성사되기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2014년 12월12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2014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 뉴스1
2014년 12월12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2014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 뉴스1

한·아세안 정상회의 열리는 부산 가능성도  

북·미 정상이 당장 상대 진영인 워싱턴·뉴욕이나 평양에서 만나기 쉽지 않을 것이란 점에서 오는 11월 부산에서 열리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도 주목받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8월 동남아 순방을 앞두고 가진 외신 인터뷰에서 “아세안 10개국 정상이 함께 모인 자리에 김 위원장이 함께한다면 한반도·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의미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적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문 대통령과 아세안 정상들의 초청을 수용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참석을 통해 북·미 3차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다. 9월 하순부터 북·미 실무협상이 속도를 내게 된다면 11월께는 일정한 진전이나 성과를 토대로 정상회담이 다시 열릴 환경이 마련될 것이란 기대도 있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으로서는 지난해 9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평양공동선언에 담긴 ‘남한 방문’ 약속을 지킨다는 의미도 있다.

물론 김정은 위원장이 아직 다자 정상회담 무대에 선 경험이 없다는 점과 한국 방문에 대해 여전히 부담을 느낀다는 점이 장애물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지난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썰렁해진 남북관계가 아직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도 김정은의 부산 방문 가능성을 제약한다고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이 김정은의 국제무대 등장과 한국 방문을 압박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는 데 대해 북한이 불편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지난해 말 청와대가 김정은 서울 방문 가능성을 띄우고, 일각에서는 구체적인 날짜까지 거론된 상황에 대해 북한 측이 유감이란 입장을 밝혔는데도 같은 상황이 벌어지는 데 대해서는 대북부처 당국자와 전문가 그룹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김정은 위원장은 4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북·미 관계 협상의 시한을 올 연말까지로 제시했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9월9일 담화에서 ‘9월 하순 실무협상’ 일정을 밝히면서 미국 측에 북한이 납득할 셈법을 갖고 오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미 행정부는 대북제재의 고삐를 늦추지 않으면서 북한에 대한 비핵화 압박을 이어가는 다소 느긋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을 연일 치켜세우고, 대북 협상의 걸림돌처럼 여겨진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을 경질하는 대북 유화 제스처를 보내면서도 북·미 협상과 관련한 미국의 기본틀은 바뀌지 않는 형국이다.

이런 국면에서 재개될 북·미 실무협상과 3차 정상회담은 치열한 접전을 예고한다. 특히 하노이 노딜 후유증으로 숙청 사태까지 겪은 김정은의 참모들로서는 명운을 건 담판이 될 수 있다. 싱가포르와 하노이에 이어 김정은과 트럼프의 담판이 벌어질 장소가 어디로 낙점될 것인가에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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