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조원 토지보상금, 서울 부동산 상승 뇌관 될까
  • 길해성 시사저널e 기자 (gil@sisajournal-e.com)
  • 승인 2019.09.26 10:00
  • 호수 1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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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주택지구 토지 보상 본격화…60조원 풀린 2006년 서울 아파트값 32% 급등

정부의 공공주택지구 보상이 본격화된다. 연말까지 수도권에서만 7조원에 육박하는 토지보상금이 풀릴 예정이다. 3기 신도시 토지보상금이 가세하는 내년에는 45조원의 보상금이 집행된다. 이는 역대 최대 규모다. 문제는 50조원이 넘는 토지보상금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막대하게 늘어난 유동자금이 인접한 서울 부동산시장을 흔드는 ‘뇌관’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공공주택지구에 대한 정부 보상이 본격화되면서 서울 부동산시장을 흔드는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사진은 파주 운정신도시의 모델하우스 ⓒ 연합뉴스
공공주택지구에 대한 정부 보상이 본격화되면서 서울 부동산시장을 흔드는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사진은 파주 운정신도시의 모델하우스 ⓒ 연합뉴스

“보상금 받으면 대개 인근 주택·토지에 재투자”

부동산업계 등에 따르면 10월부터 연말까지 2017년 주거복지로드맵에 지정된 성남 복정1·2지구와 금토지구, 군포 대야미지구, 남양주 진접2지구, 시흥 거모지구 등 수도권 11곳 사업지구에 대한 정부의 감정평가와 보상이 시작된다. 6조6000억원가량의 토지보상금이 지급될 예정이다.

늘어난 유동자금은 주변 부동산시장을 다시 자극할 것으로 보인다. 과거 토지보상금이 풀리면 주변 땅값이 상승하는 악순환이 반복돼 왔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에는 토지보상금 29조원 가운데 37.8%가 부동산 거래에 쓰였다. 지방에서 풀린 보상금은 전체의 8.9%가 수도권 부동산으로 흘러들어갔다.

이명박 정부의 ‘보금자리주택’, 박근혜 정부의 ‘행복주택’ 조성 때도 마찬가지다. 토지보상금으로 인한 거래가 늘어나면서 주변 집값 상승을 부추겼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은 “토지 소유주들은 평생 살아왔던 터전을 벗어나기 쉽지 않다”며 “토지보상금을 받으면 대체로 인근 주택이나 토지 등에 재투자하는 특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토지보상금으로 재투자할 경우 취득세가 면제되는 점은 인근 지역의 부동산 거래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현행 토지수용법에 따르면 공공사업으로 토지를 수용당한 사람 중 수용토지 반경 20km 이내에서 같은 종류의 토지를 구입한 자에게는 취득세 면제 등 세제 혜택이 주어진다.

특히 3기 신도시 보상이 본격화되는 내년에는 45조원에 달하는 토지보상금이 풀린다. 이는 종전 최고였던 2009년의 34조8554억원 대비 10조원 이상 많은 액수로 역대 최대 규모다. 사업지구 총면적은 7.23㎢로 여의도 면적 2.9㎢의 2.5배를 차지한다.

먼저 3기 신도시 후보지인 인천 계양, 남양주 왕숙, 하남 교산지구 등에서 본격적인 보상이 이뤄진다. 의정부 우정, 인천 검암역세권, 안산 신길지구 등 공공주택지구에서도 뭉칫돈이 풀릴 예정이다. 이어 부천 역곡, 성남 낙생, 고양 탄현, 안양 매곡 등 도시공원 일몰 예정지와 인근 연접부지 활용 사업을 통해서도 보상이 진행된다. 2021년에는 3기 신도시 후보지인 고양 창릉지구와 부천 대장지구에도 보상금이 풀린다.?

전문가들은 수도권에서 발생한 유동자금이 서울 부동산시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60조원 가까운 토지보상금이 풀린 지난 2006~07년, 급증한 유동자금과 전국의 투기세력이 몰린 탓에 서울 아파트 값은 32%가량 급등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과거 정부에서도 토지보상금을 통해 인근 지역에 재투자가 늘어나면서 집값이 뛰는 사례가 반복돼 왔다”며 “이번 정부에서 진행되는 주거복지로드맵, 3기 신도시 등의 예정지 주변 집값도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지난 5월 제3차 신규택지 추진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지난 5월 제3차 신규택지 추진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 시사저널 고성준

유동성 걱정에 ‘대토·리츠’ 나섰지만 “글쎄”

정부는 시중에 풀리는 유동자금을 줄이기 위해 ‘대토(代土) 보상’과 ‘리츠’를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대토 보상은 토지주에게 현금이 아니라 해당 지역의 다른 땅을 대신 주는 제도다. 리츠는 대토로 받은 복수의 택지를 하나로 묶어 제공하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이 땅에 공동주택 등 주택사업을 시행한 뒤 사업이익을 배당 등의 형태로 대토 보상자들에게 제공하는 형태다. 이에 따라 실제 시장에 풀리는 토지보상금 규모는 더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두 제도가 실효성을 거둘지는 의문이다. 대토 보상은 도입된 지 12년이 지났지만 현재 전체 토지 보상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0%에 불과하다. 수천 명의 토지주들에게 지급할 만한 땅을 찾는 것도 숙제로 꼽힌다. 대토 보상을 할 경우 인기 있는 땅을 주지 않으면 토지주들이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또 리츠의 경우 선진국에서 활성화돼 있지만 국내에선 아직 낯선 제도다. 이에 주민들을 설득하는 작업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안정성을 추구하는 심리가 큰 토지주들에게 투자 형태의 리츠는 매력적인 제도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토지보상금 지급으로 과거처럼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부작용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부동산시장에 대한 모니터링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심 교수는 “토지보상금을 한꺼번에 풀기보다 지급하기 전에 제반 시장 상황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집행해 부동산 투기 등의 시장 교란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며 “이번에도 유동자금이 크게 늘어나 집값 상승을 부추긴다면 정부의 공급대책 취지가 반감될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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