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세의 생활화 부추기는 ‘간편송금 앱’ 실태 추적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19.09.23 14:00
  • 호수 1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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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금은 계좌로 쏴주세요”…앱 타고 확산하는 ‘간편 탈세’에 과세 당국 골머리

“손님, 돈은 ‘이 번호’로 보내주시겠어요?”

지난 9월14일 찾은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의 한 카페. 아이스 아메리카노 2잔을 시키자 카페 주인이 계산대 옆 푯말을 가리켰다. 그곳에 적힌 것은 한 계좌번호. “간편송금 앱(애플리케이션)으로 결제해 주시면 1000원 할인해 드릴게요.” 이어 찾은 인근의 한 포장마차. 소주 2병과 대하구이, 홍합탕 등을 시켰고 총 5만7000원이 나왔다. 계산하려고 카드를 내밀자 포장마차 업주가 손을 휘휘 저으며 한 ‘쪽지’를 들이밀었다. 노란 종이에 볼펜으로 휘갈긴 계좌번호가 적혀 있었다. 그는 “현금을 줘도 현금영수증 발행은 해 줄 수 없으니까, 그냥 스마트폰으로 송금해 달라”며 결제를 재촉했다.

최근 카카오페이나 토스(TOSS) 등 간편 계좌이체·송금 앱이 보편화되면서, 이를 악용해 ‘간편 탈세’를 자행하는 자영업자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법인이 아닌 개인이나 가족 명의 계좌로 돈을 받는 식이다. 노점상부터 학원, 음식점, 클럽 등 업종을 불문하고 간편송금 서비스를 이용한 탈세가 횡행하고 있는 가운데, 과세 당국도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면서 ‘과세 구멍’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 시사저널 최준필

간편송금 앱 따라 도는 ‘27조’

‘간편송금 서비스’란 모바일 기기에 설치한 앱을 통해 돈을 주고받는 서비스를 일컫는다. 국내 스타트업 ‘비바리퍼블리카’가 개발한 앱 ‘토스’와 카카오가 내놓은 ‘카카오페이’ 등이 대표적인 간편송금 앱으로 꼽힌다. 사용자가 앱에 은행계좌를 한 번 등록하면 그다음부터는 공인인증서나 OTP(보안카드) 없이도 스마트폰에서 비밀번호만 입력하면 바로 돈을 보낼 수 있다.

사용이 쉽다 보니 쓰는 사람은 매년 급증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4월 발표한 ‘2018년 전자지급서비스 이용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간편송금 서비스는 하루 평균 이용금액이 1045억원, 이용 건수는 141만 건으로 집계됐다. 전년 대비 각각 194.1%, 102.5%씩 이용 실적이 크게 뛰었다. 간편송금 전체 이용금액도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간편송금 전체 이용금액은 2016년 2조4413억원에서 2017년 11조9541억원, 2018년 27조8682억원으로 매년 팽창하고 있다. 간편송금 1건당 평균 이용금액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16년 4만8000원이었던 건당 평균 송금액은 2017년 5만1000원, 2018년 7만1000원으로 늘었다.

향후 간편송금 시장의 성장세가 더욱 가속화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구매력이 매년 커지는 2030세대가 간편송금 서비스의 핵심 사용층으로 자리 잡고 있어서다. 한국은행의 ‘2018년 모바일 금융서비스 이용행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30대의 경우 2명 중 1명이 간편송금을 사용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르면 조사 대상 20대 중 49.5%가 간편송금을 사용한 경험을 갖고 있었다. 이어 30대 44.3%, 40대 24.7%, 50대 10.9%, 60대 이상이 2.4%를 기록했다.

문제는 간편송금 서비스의 성장세와 발맞춰 ‘탈세 부작용’도 속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현금 결제를 유도하는 식으로 탈세를 자행하던 자영업자들이 이제는 간편송금을 악용해 매출을 고의로 누락하고 있다. 취재 결과 지역·업종을 불문하고 ‘간편송금 탈세’가 번져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 달 1000만원이 넘는 매출 전액을 간편송금을 이용해 고의로 누락한 업자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탈세가 가장 횡행하는 곳은 유흥가다. 과거 업장 주변 ATM(현금자동입출금기)에서 직접 현금을 뽑게 하는 식으로 카드 결제를 회피하던 클럽이나 룸살롱 등이 최근에는 간편송금을 이용한 계좌이체 방법을 선호하고 있다. 최대 수백만원에 달하는 테이블 예약비나 술값 등을 개인 계좌로 직접 받는 식으로 매출에 ‘장난’을 치는 것이다. 최근 ‘승리 게이트’로 논란이 됐던 논현동 클럽 아레나가 3년간 162억원의 세금을 탈루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버닝썬부터 포장마차까지 ‘간편 탈세’

지난 4월까지 강남의 한 클럽 MD(영업담당)로 일했다는 A씨는 “클럽 테이블을 예약하려면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이 들어가는데, 이 돈을 간편송금 앱으로 결제하게끔 MD가 유도한다. 어렵지 않은 요청이라 손님 대부분이 MD 개인 계좌로 돈을 보내준다”며 “그렇게 들어온 돈은 MD가 현금으로 인출해 클럽 매니저한테 전달하는 구조라, 클럽의 총 매출액이 얼마인지는 클럽 운영진 빼고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고 귀띔했다.

과거부터 ‘과세 사각지대’로 불려온 포장마차나 길거리 노점상들 역시 간편송금 결제를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있다. 특히 청년층이 밀집한 대학가 인근의 노점에서는 사실상 모든 결제가 간편송금 앱을 통해 이뤄지고 있었다. 지난 9월18일 서울 대학로 인근의 한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를 먹고 카드를 내밀자, 업주가 기다렸다는 듯 “토스나 카톡(카카오페이)으로 보내달라”며 계좌번호가 적힌 쪽지를 건넸다. 인근에서 액세서리를 판매하는 노점과 캐릭터 인형을 판매하는 노점에서도 ‘계좌번호 쪽지’가 어김없이 등장했다.

노점 앞에서 만난 대학생 최미란씨(23)는 “스마트폰에 (간편송금 앱을) 한 번 깔아놓으면 지갑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어 자주 이용하게 된다. 요즘은 밥을 먹고, 옷을 사도 전부 계좌이체를 통해 결제를 하는 것 같다”며 “사장님들도 다 그걸(간편송금 앱) 이용해서 돈을 보내주기를 바라시더라”고 했다. 탈세 우려가 있다고 말하자 최씨는 “사장님들이 ‘우리도 먹고살자’며 계좌번호를 주는 것을 보고 왠지 탈세를 하는 것 같다고 짐작은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취재 중 만난 한 요식업체 사장은 매출의 80% 이상이 간편결제로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경기도 부천에서 음식점을 운영 중인 최아무개씨는 “간편송금 앱으로 결제하면 10% 정도씩 음식값을 할인해 준다. 카드 수수료나 세금 문제 등을 고려해도 아무래도 (계좌로 돈을 받는 게) 더 낫기 때문”이라며 “한 달 매출이 많게는 1200만원 정도 나오는데 지난달 정산해 보니 이 중 1000만원 가까이가 개인 계좌를 통해 들어온 돈이었다”고 전했다.

 

‘큰 탈세’보다 ‘작은 탈세’ 적발 더 어려워

과세 당국 역시 탈세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 이에 버닝썬 스캔들이 터진 이후 전국 21곳 유흥업소를 대상으로 대대적 세무조사를 벌였으며, 지난 7월에는 명의 위장이나 차명계좌로 소득을 누락한 것으로 의심되는 악의적인 탈세 혐의자 163명을 추려내 전국 동시 세무조사에 착수하기도 했다. 조사 대상이 된 한 고액 학원의 경우 인터넷 강의 수강료가 입금되는 가상결제시스템 연결 계좌를 타인 명의로 하거나, 지인의 2살 된 자녀 등 미성년자 계좌로 학원비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 나이트클럽의 실소유주는 술값을 직원 명의 계좌로 받는 수법으로 세금을 빼돌리다 적발돼 30억원을 추징당하고 검찰에 고발됐다. 국세청은 조세 포탈 혐의가 큰 대형 유흥업소에 대해서는 검찰과 협의해 압수수색 영장을 적극 집행하기로 했다.

다만 ‘탈세 큰손’들이 아닌 일반 서민들 사이에서 횡행하는 ‘간편 탈세’와 관련해서는 명확한 근절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탈세가 워낙 광범위하게 번지고 있는 탓에,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양새다.

현행법상 현금영수증 의무 발행 업종 사업자는 거래 건당 10만원 이상인 현금 거래에 대해 소비자 요구가 없더라도 현금영수증을 발급해야 한다. 위반 사실이 적발되면 영수금액(부가가치세 포함)의 50%가 과태료로 부과된다. 또 국세청은 카드 결제 거부 사실이 확인되면 해당 업체에 경고조치를 내리고 결제 거부 금액의 5%를 가산세로 부과한다. 같은 업체가 2회 이상 적발되면 가산세 5%에 과태료 20%를 추가 부과한다. 또 여신금융업전문법에 따르면 카드 결제와 현금 결제를 차등 대우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신용카드 가맹점은 신용카드로 거래한다는 이유로 카드 결제를 거절하거나 카드 회원을 불리하게 대우하지 못한다. 이를 위반할 경우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문제는 적발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자영업자가 개인 계좌로 받은 돈을 스스로 신고하지 않으면 소득으로 잡히지 않기에, 국세청이 자영업자의 개인 계좌를 샅샅이 현미경처럼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탈세를 잡아내기가 어렵다. 결국 현재로서는 자영업자의 ‘양심’에 기대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이재훈 세무사는 “비사업자인 A가 비사업자인 B에게 어떤 상품의 대가로 10만원을 송금했다고 치자. 국세청이 이 같은 개인 간 거래 과정을 무작정 확인해 볼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자영업자의 현금매출 누락은 내부고발자의 신고가 없는 이상 국세청이 무작정 쳐들어가 장부를 요구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과세 당국과 간편송금 앱을 운용하는 기업체 간 ‘상시 모니터링 시스템’을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탈세를 장기적으로 하게 되면 분명 반복적인 ‘수상한’ 돈의 흐름이 나타날 수밖에 없고, 금융정보분석원(FIU) 등이 이를 추적·적발해 낼 수 있다”며 “다만 조세 포탈 혐의가 큰 사업자 위주로 걸러낼 수밖에 없고, 송금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자영업자나 일반 시민들까지 모두 감시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했다. 이어 “간편송금 서비스 운용사와 과세 당국이 상시적으로 수상한 현금 흐름 등을 모니터링하는 별도의 시스템을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며 “강력한 감시 시스템을 구축해 놓고 있다는 신호만 시장에 주더라도 탈세를 예방하는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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