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대박 낸 ‘구독 경제’의 비밀 [이형석의 미러링과 모델링]
  • 이형석 한국사회적경영연구원장·경영학박사 (ls@sisajournal.com)
  • 승인 2019.10.03 10:00
  • 호수 1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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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규모만 590조원대…콘텐츠·식음료에서 예술작품·케어 서비스 등으로 확대

1988년의 일이다. 호주에서 몇 개월 머물 계획으로 시드니의 한 부동산중개소를 들렀다. 입구에는 담당 분야별 전문가 사진과 프로필이 붙어 있어 단기 렌트 담당자와 바로 상담할 수 있었다. 그는 얘기 중에 흥미로운 제안을 했다. “호주의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같은 조건으로 주택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얘기를 종합하면 이렇다. 부동산중개소가 체인 시스템이어서 전국의 렌트하우스를 모두 공유하기 때문에 주(週) 단위로 정해진 비용만 지불하면 된다. 부동산중개소가 집주인이 해야 할 일인 임대와 매매, 렌트비 수납, 세금정산까지 대행하기 때문에 전국 어디든 하우스를 바꿔가면서 이용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다. 참고로 호주는 주급제를 채택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구독 비즈니스 모델을 적용해 성공한 대표적인 기업이다. 사진은 2017년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 서 발표 중인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설립자 겸 CEO ⓒ AP 연합
넷플릭스는 구독 비즈니스 모델을 적용해 성공한 대표적인 기업이다. 사진은 2017년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 서 발표 중인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설립자 겸 CEO ⓒ AP 연합

18세 인도 청년 ‘오요 룸스’ 창업해 대박

당시 우리나라는 부동산중개소가 입지 주변의 임대, 매매 등만 제한적으로 서비스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시스템이 상당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 방식을 이용해 골프 관광객을 위한 골프장 순환 서비스 상품을 개발하면 가능성이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로부터 25년이 흘렀다. 18세의 인도 청년 리테슈 아갈왈(Ritesh Agarwal)은 3개월 동안 여러 숙박업소에 직접 예약해 체험해 본 후, 숙박 예약 사이트 오라벨 스테이(Oravel Stays)를 창업했다. 호주 부동산중개소의 체인 시스템에다 IT를 접목해 플랫폼으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오라벨 스테이는 이후 오요 룸스(OYO Rooms)로 사명을 바꾸고 글로벌 플랫폼으로 거듭났다. 이 회사는 단순히 숙박 예약이나 중개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담당자가 현지 호텔을 조사하고, 무료 Wi-Fi, 아침 식사, 에어컨, 침대 청결도 등 30개 항목을 체크한 다음 적격 판정을 받은 호텔만을 파트너로 하고 있다. 부동산 렌트에다 편의 서비스를 입힌 것이다. 이러한 차별화된 서비스 덕분에 오요 룸스는 세계 80개국, 800개 도시에 연결돼 있다.

앞서 언급한 사업 유형을 구독형(Subscription type) 비즈니스 모델이라 한다. 즉, 신문처럼 미리 정한 구독료를 내고 필요한 물건이나 서비스를 사용하는 소비경제를 말한다.

구독 비즈니스 모델의 선두주자는 1997년 창업한 엔터테인먼트 OTT(Over The Top) 기업 넷플릭스(NETFLIX)다. 우리나라 젊은 층에서도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넷플릭스는 코드 커팅(cord cutting), 즉 기존 케이블TV 이용자들이 케이블 코드(cord)를 잘라내는(cutting) 현상을 이끌고 있다. 180여 개국에 1억4000만 명의 정액제 구독 회원을 보유한 넷플릭스는 인터넷에 연결된 스크린만 있으면 TV 시리즈, 다큐멘터리, 영화 등 다양한 장르의 엔터테인먼트를 다국어로 즐길 수 있다.

애플 뉴스플러스(Apple News+)도 구독 서비스에 발을 담갔다. 콘텐츠는 건강, 미용, 라이프스타일, 스포츠, 금융, 비즈니스 등 200여 개 카테고리로 구분돼 있다. 300개가 넘는 잡지와 월스트리트저널, LA타임스, 토론토 스타신문 등에 접속할 수 있다. 월 구독료는 미국(9.99달러)과 캐나다(12.99달러)가 차이가 있다. 오요 룸스가 부동산, 넷플릭스가 영상 콘텐츠 구독 모델이라면 애플 뉴스플러스는 페이퍼 콘텐츠 구독 모델인 셈이다.

구독 서비스 모델이 디지털 영역에서만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맨해튼에서는 샐러리맨을 위한 패션 서비스를 구독형 비즈니스로 모델링해 인기를 끌고 있다. 앱(App)을 통해 그날 입고 싶은 패션을 선택하면 배송해 주고, 퇴근 후 다시 수거해 클리닝해 다른 사람이 입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맨해튼의 경우 임대료가 비싸 옷장을 두기 어렵다는 입지적 특성을 잘 파고든 모델이라 하겠다.

식음료업계에서도 다양한 업종에서 구독 비즈니스 모델을 채용하고 있다. 맨해튼의 스타트업 후치(Hooch)는 월 9.99달러에 맨해튼의 수백 개 술집에서 매일 칵테일 한 잔씩 마실 수 있게 했는데, 2017년에만 2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패스트푸드 브랜드 버거킹도 월정액 5달러로 카페 구독 서비스(BK cafe subscription)를 시작했다.

도쿄 니시신주쿠(西新宿)에 있는 커피마피아(Coffee mafia)는 월정액 3000엔으로 무제한 커피를 제공한다. 롯폰기에 있는 프로비전(Provision)에서도 월정액(3만 엔)으로 최대 세 명까지 동행해 디너와 와인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하이텔과 나우누리도 구독 경제의 진화형

이 외에도 자동차기업 포르쉐(Porsch)가 8개 차종을 월 2000달러에 골라 탈 수 있는 구독 서비스 모델을 출시한 바 있다. 앞으로는 콘텐츠, 식음료뿐 아니라 예술작품, 케어 서비스, 에스테틱 등 다양한 업종에서 서비스 도입이 예상되고 있다. 구독 경제의 세계시장 규모가 올해 59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다.

구독 비즈니스 모델이 빠르게 확산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크게 세 가지 관점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첫째, 소비자의 단순화 지향성이다. 상품을 소비하면서까지 복잡하게 계산하는 것에 실증을 느끼는 것이다. 둘째, 저가 경쟁의 가속화다. 할인(sale)→최저가→종량제→구독제로 이어지는 저가 경쟁 버전의 최신 모델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록인(lock in) 효과다. 한번 구독하면 계속 이어지는 효과를 얻을 수 있어서다.

하지만 이 모델이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과거 PC통신 세대인 중장년들은 기억하겠지만 당시 하이텔과 나우누리는 이미 월정액 구독 서비스를 실시한 바 있다. 천리안의 경우 구독 비즈니스 모델에다 고급 정보는 종량제(Pay Per Use) 모델을 묶어 선보인 바 있다. 앞으로 구독 비즈니스 모델이 정착되면 여기에 종량제 비즈니스 모델을 얹는 방법으로 한 번 더 진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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