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정책 패러다임의 전환, 극복에서 적응으로
  •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0.03 15:00
  • 호수 1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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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문제 해결, 근본적인 사회의 변화 통해서만 가능

사람은 문제가 발생하면 일단 문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극복되지 않으면 어떻게 할까. 그 문제를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적응’을 한다. 물론 적응하려면 기존 관행과 행동 등을 다 바꿔야 해 거부감이 크다. 시간도 오래 걸린다. 그래서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에서 적응으로 전환하는 데 제일 중요한 요소는 타이밍이다. 너무 빠르면 문제 해결을 등한시했다는 비판을, 너무 늦으면 해결할 수 없는 과제에 집착했다는 비판을 받게 된다.

정부는 최근 저출산 관련 인구정책 패러다임의 근본적 전환이라 부를 만한 시도를 했다. 9월18일 경제활력대책회의에서 발표된 ‘인구구조 변화의 영향과 대응방향’은 저출산을 극복해야 할 문제로 생각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노력해 왔던 기존 정책에서 벗어나 현재 지속되고 있는 저출산 상황을 받아들이고 사회를 적응시키겠다는 야심 찬 선언이었다.

정부는 최근 저출산 관련 인구정책 패러다임의 근본 전환을 시도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 연합뉴스
정부는 최근 저출산 관련 인구정책 패러다임의 근본 전환을 시도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 연합뉴스

 

정부 인구정책 기조 대전환의 배경

한국의 인구정책은 합계출산율 6.3명을 기록하던 1961년 시작됐던 산아제한 정책에서 시작됐다. 다양한 인센티브와 캠페인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이뤄진 이 정책은 1983년 합계출산율 2.06명을 기록하면서 20여 년 만에 당초 목적을 달성했다. 이 시기 인구정책 전환이 필요했지만 정부는 물론 사회구성원 누구도 이러한 생각을 하지 못했다. 기존 정책이 계속 이어졌고, 1996년이 돼서야 산아제한 정책은 공식 폐지됐다.

이렇게 시작된 출산율 저하는 2000년대 들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다. 정부는 2005년 저출산고령화기본법 제정을 시작으로 14년 동안 출산율 제고를 위해 많은 재원을 투입했다. 그러나 이런 정책들은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오히려 고령화 추세까지 가속화되며 많은 지역들은 ‘소멸’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저출산을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닌 받아들여야 할 현상으로 인정하고 정책 기조의 대폭적인 전환을 선언한 것이다.

정부가 인구정책 기조에 대전환을 한 것은 그동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출산율 제고가 이뤄지지 않았으며, 계속 진행된 저출산으로 인해 기존의 사회구조와 운영방식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정부가 올해 3월 실시한 ‘특별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한국 인구는 2028년 5194만 명을 정점으로 감소한다. 작년 시작된 생산연령인구 감소 추세는 2020년부터 가속화돼 같은 해 후반부터는 본격적인 인력 부족이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노동공급 감소와 성장잠재력 약화, 지역 공동화, 복지지출 증가에 따른 재정압박 등의 문제점이 나타날 것이 확실시됨에 따라 정부는 ‘인구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선언한 것이다.

변화된 인구정책은 크게 생산연령인구의 확충, 절대인구 감소 충격 완화, 복지지출 증가 관리 및 고령인구 증가 대응이라는 4대 전략으로 이뤄져 있다. 이 중 가장 핵심은 생산연령인구 확충이라 할 수 있다. 정부는 이를 위해 은퇴가 예정된 고령자의 고용 연장과 외국인의 효율적 활용이라는 방안을 제시했다. 고용 연장은 여러 내용을 담고 있는데 가장 핵심적이면서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방안은 정년 연장이다. 정부는 정년 연장과 관련해 국민연금 수급연령 변화에 맞춰 정년을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현재 62세인 국민연금 수급연령이 2023년에 63세, 2028년 64세, 2033년 65세로 늦춰질 예정인 데 비해 정년이 계속 60세로 유지되면 연금수급 개시까지 기간이 길어지는 문제가 생긴다. 이에 정부는 일단 정년 연장을 추진하되 구체적 방식에 대해서는 재고용, 정년 연장, 정년 폐지 등을 선택할 수 있게 하거나 의무적으로 연금수급 개시연령까지 고용을 유지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을 논의할 계획임을 밝히고 있다. 현재 청년실업률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은퇴연령을 늦출 경우 고용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정부는 단계적으로 접근하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향후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될 것은 확실해 보인다.

기존 인력에 대한 고용 연장과 더불어 외국인 인력을 추가로 더 확충하고 체계적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포함돼 있다. 현재 외국인 고용제도에 따르면 몇 년간 경험을 축적해 숙련공이 돼도 장기체류는 연간 600명 규모로 매우 제한적이라 다시 저숙련 인력을 채용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국내에서 5년 이상 근로하고 숙련도를 갖춘 인력에 대해 장기체류 허용 인원을 늘리고, 이런 인력에 대해 체계적인 취업현황 관리 및 알선 등을 추진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

 

여성 경제활동 참여 늘릴 제도 변화 절실

또 정부는 우수 전문인력 유치를 위한 별도의 비자 제도 신설과 더불어 지방 소멸에 대처하기 위해 인구 감소 지역에 체류하는 외국인에 대해서는 장기비자 취득 시 가점을 부여하는 제도 도입도 병행하기로 했다. 이와 같은 조치들은 기존 인력부족 부문에 대한 외국 인력의 제한적 고용에서 탈피해 보다 적극적인 고용으로의 전환과 더불어 인구 감소에 대응하는 수단으로서 외국인 정책을 본격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정책적 전환을 의미한다. 향후 본격적인 이민 확대 정책으로 연결되는 단초도 될 수 있다.

정부의 인구정책 전환은 저출산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러한 현실에 적응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기존 인력에 대한 고용 연장, 외국인 고용 확대로 이루어진 방안들은 기존 정책들의 확대 차원에 머무른다는 한계가 있다. 경제활동인구의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정책은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인력, 특히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더 높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인 성별 임금차별 시정과 더불어 유리천장으로 대표되는 여러 가지 제약들을 제거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하지만 이런 내용은 정부안에 포함돼 있지 않다.

스웨덴의 경우 1960년대 노동력 부족을 여성의 사회경제적 활동을 촉진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각종 제도를 정비하고 사회 시스템을 개선하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였으며,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여성 채용을 증가시켰다. 이 과정을 통해 스웨덴은 세계 최고 수준의 남녀 평등을 달성하게 됐으며, 자연스럽게 적절한 합계출산율을 유지하는 효과를 거뒀다.

특정 영역의 변화와 개선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그동안의 저출산 대책을 통해 배울 수 있다. 인구수 자체에 초점을 맞춘 정책은 단기적 처방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인구문제의 해결은 근본적인 사회의 변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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