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낭만적 사랑과 결혼 시장의 충돌?
  •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10.02 18:00
  • 호수 1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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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우리는 ‘부모가 곧 스펙인 세상’의 작동 방식을 생생히 목격 중이다. 외환위기 이후의 사회적 양극화 확대가 금수저·흙수저 논란으로 이어졌음은, 빈익빈 부익부의 기저에 누가 누구와 결혼하는가를 둘러싼 결혼 시장의 작동 원리가 자리하고 있음을 환기시켜준 바 있다.

그러고 보니 사회적 상승이동의 폭이 비교적 컸던 고도성장기에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쓴 연애결혼이 제법 높은 비중을 차지했던 기억이 난다. 1980년 조사 당시 중매혼 대 연애혼의 비율이 약 6 대 4로 나타났는데, 연애혼의 경우 양가 (부)모의 반대가 있었다는 응답이 10명 중 7명에 이르렀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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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만 해도 평균 초혼연령이 남자 27.3세, 여자 24.1세였으니 열정적 사랑을 향한 환상과 낭만적 결혼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기는 어려운 시기였음 직하다. 게다가 당시는 두 사람이 허리띠 졸라매고 알뜰살뜰 저축하면 5년 정도 지나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룰 수 있는 시대이기도 했다. 덕분인가, 하루 종일 함께 지내다 ‘눈이 맞아’ 결혼하는 의사-간호사 커플도 주위에 흔했고, 1970년대 운동권 중에는 자신의 이념에 따라 노동자 출신 여성을 배우자로 맞이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연애결혼에 성공한 이들 커플에게 ‘부모의 반대를 무릅썼다’는 공통점이 있었음은 물론이었다.

이 대목에서 신분사회일수록 조혼(早婚) 풍습이 발달한다는 인류학 연구 결과가 떠오른다. 특히 높은 신분의 가문에서는 어느 집안과 혼인하느냐 여부가 정치적 파워 및 경제적 부의 축적과 밀접히 연계된 중대사였기에 혼인 당사자들의 선택에 맡길 수는 없었으리라는 해석이다. 이른 나이에 짝지어준 이유가, 신분질서를 교란시키는 요인 중 하나가 신분을 넘나드는 ‘사랑’이었다고 하니, 이 또한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결혼의 역사에서 배우자 선택 권한이 가문으로부터 개인으로 이동해 가고,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해로를 약속하는 ‘낭만적 결혼’이 시작되었다함은, 실상 결혼의 의미가 이전 시대에 비해 ‘사소한 개인사’로 축소되었음을 뜻하기도 한다.

한데 다시금 결혼 시장 풍경이 바뀌고 있다. 1970년대 미국에서는 고학력 중류층 백인여성의 이혼율이 빠른 속도로 솟아올랐다. 베티 프리단이 《여성의 신비》를 통해 주장했던바, ‘이름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렸던 여성들이 전업주부로서의 행복하고도 안락한 삶에 대한 환상을 박차고 나와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여성으로서의 삶을 선택하게 된 결과였다.

세월이 흘러 1990~2000년대 초반의 결혼 시장으로 가보니 중류층 이상 전문직 여성의 결혼 안정성은 그 어느 때보다 공고해진 반면, 저학력 저소득 유색인종 여성의 결혼 지위는 높은 이혼율과 혼외출산으로 인한 싱글맘의 증가로 그 어느 때보다 불안정함을 보여주고 있다. ‘끼리끼리’ 짝을 맞추는 동질혼 양식이 중류층 이상을 중심으로 확산되면서 미국의 계층구조가 더욱 공고화되고 있음이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도 예외가 아닌 듯하다. 최근 들어 ‘상견례 후 프러포즈’ 관행이 확실히 자리를 잡았다 하는데, 이는 부모 동의나 허락 없이는 결혼 자체가 불가능한 세태를 솔직히 반영한 결과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요즘 20대들은 주위에서 연애 소식을 듣게 되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이 학벌과 직업 그리고 부모의 재산 정도 등 연애 상대의 조건이라 한다. 대신 연애 당사자가 자신만의 미묘한 감정선이나 밀당 과정을 고백하려 하면 “구리다”(굳이 듣고 싶지 않다)는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지난주 대학원 수업시간, 결혼을 통해 계층구조가 더욱 공고화되고 있는 현실 앞에서 그래도 낭만적 결혼을 포기하지 말자는 40대의 주장을 20대는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궁금하기만 하다.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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