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상륙작전에 가려진 이야기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 정시우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19.09.28 14:00
  • 호수 156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반공보다 반전 그린 영화

감독이 주목받는 영화가 있고, 배우가 주목받는 영화가 있다.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은 둘 다 아니다. 이 영화의 전면에 서 있는 건 제작사 태원엔터테인먼트다. 《포화 속으로》(2010)와 《인천상륙작전》(2016)을 만든 태원엔터테인먼트의 이력은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을 읽는 안내판이다.

이재한 감독의 《포화 속으로》는 1950년 8월, 실제 포항에서 벌어진 71명의 학도병과 북한군의 전투를 소재로 한 영화였다. 이재한 감독이 역시 메가폰을 잡은 《인천상륙작전》은 이름 그대로 1950년 9월15일 한국전쟁의 전세를 바꾼 인천상륙작전을 그린 작품이었다. 곽경택 감독과 김태훈 감독(《아테나: 전쟁의 여신》 《아이리스 2》 연출. 두 드라마 모두 태원엔터테인먼트 작품)이 공동 지휘관으로 선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은 시간상으로 두 사건의 중간에 서 있다.

인천상륙작전 하루 전인 1950년 9월14일 양동작전으로 진행된 장사상륙작전이 이 영화의 배경이다. 북한군의 이목을 돌리기 위해 기획된 이 기밀작전에 투입된 건, 훈련기간 고작 2주 차로 평균 나이 17세의 학도병들이다. 영화는 기밀에 부쳐진 탓에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던 잊힌 영웅들을 소환한다.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의 한 장면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의 한 장면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포화 속으로》 속편, 《인천상륙작전》 프리퀄 느낌

기시감을 느낀다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은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학도병들의 숭고한 희생을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으로 만들어졌던 《포화 속으로》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으며, 《인천상륙작전》과는 시간과 사건을 나눠 갖고 있다. 《포화 속으로》에서 학도병 중대장을 연기했던 아이돌 출신 배우 최승현(탑)의 바통은 또 다른 아이돌 출신 최민호가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에서 이어받았다.

진실을 알리기 위해 힘쓰는 종군기자 매기 역에 할리우드 배우 메간 폭스를 캐스팅한 전략은 《인천상륙작전》이 할리우드 스타 리암 니슨에게 맥아더 장군 역할을 맡긴 것과 유사하다. 이 영화가 《포화 속으로》의 속편, 《인천상륙작전》의 프리퀄적 느낌이 나는 건 이 때문이다.

흥미로운 건 이제부터다.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은 《포화 속으로》 《인천상륙작전》과 닮았으되, 또 닮지 않았다. 곽경택·김태훈 감독의 연출은 《포화 속으로》 《인천상륙작전》이 영화적으로 비판받은 DNA들을 지워내려 애쓴 흔적을 역력히 드러낸다.

첫째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은 《포화 속으로》 《인천상륙작전》과 달리 이념적으로 디자인된 북한군 캐릭터가 없다. 《포화 속으로》에서 차승원이 연기한 북한군 766 유격부대 대장 박무량은 무자비하고 냉정한 살인 병기에 다름 아니었다. 《인천상륙작전》에서 이범수가 그려낸 엘리트 출신의 북한군 사령관 림계진은 그런 박무량의 먼 친척뻘이었다. 자신의 부하마저도 망설임 없이 총으로 쏴버리는 전쟁 기계.

《포화 속으로》와 《인천상륙작전》에서 북한군은 그 자체로 절대 악이자, 처벌돼 마땅한 잔인한 사냥꾼이었다. 남북 캐릭터를 38선처럼 두 동강 내는 이분법적 시선을 통해 두 영화는 은연중에 애국주의적 시선을 드러냈다. 애국주의적 시선이 문제라는 게 아니라, 이를 만들어내는 방법이 문제였다.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초기 시나리오에도 악으로 묘사되는 북한군 대장 캐릭터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곽경택 감독은 차승원과 이범수가 연기한 유의 북한군 캐릭터를 지우고, 강대국들 이권 다툼에 휩쓸린 얼굴들을 채워 넣는다. 적이되 적이지 않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친구이자 이웃이었던 남북의 어린 소년들. 이들을 통해 영화는 종종 아군과 적군의 경계를 지우는 효과를 낸다. 맥아더 장군으로 분한 리암 니슨을 게으르게 활용했던 《인천상륙작전》과 비교하면 메간 폭스의 존재감이 영리하게 쓰이기도 한다.

둘째, 전쟁을 스펙터클로 전시하지 않는다. 《포화 속으로》는 슬로모션과 익스트림 클로즈업, 강렬한 콘트라스트를 대비시켜 전쟁 신을 세련되게 그려냈었다. 과시적이면서도 과장된 액션을 화면 가득 채운 클라이맥스에 이르면 영화는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비극의 전쟁터가 아닌, 흡사 한편의 CF 혹은 뮤직비디오로 자신을 착각하는 듯한 인상을 안겼다. 《인천상륙작전》 역시 아군의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 영웅으로 그려냄으로써 전쟁을 블록버스터로 소비했다.

곽경택·김태훈 감독의 선택은 이들 영화와 대척점에 서 있다. 그들은 전장의 참혹한 풍경을 최대한 끔찍하고 사실감 있게 그려낸다. 영화 시작과 동시에 적지로 돌진하는 초반 20분 오프닝 전쟁 신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그 유명한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를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채도를 한껏 낮춘 색감과 카메라 무빙 등의 기술적 테크닉에서도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일정 부분 참고한 느낌이 있다. 할리우드와 비교해 제작비가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임을 감안해서 보면 장단점이 확연히 드러난다.

셋째, 앞선 두 요소들이 뭉치면서 공산당은 나빠요 식의 ‘반공 요소’가 옅어졌다. 애국심을 강조하는 이른바 ‘국뽕영화’의 요소 역시 《포화 속으로》와 《인천상륙작전》에 비하면 준수한 수준이다. 이념을 떠나 전쟁에 내몰려야만 했던 시대적 비극에 시간을 할애하면서 ‘반공’이 아닌 ‘반전’을 그려내겠다는 소기의 목적에도 도달한다.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의 메간 폭스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의 메간 폭스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무색무취의 전쟁영화

여러모로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은 태원엔터테인먼트 작품이기에 우려했던 장애물들을 넘어선 결과물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이 영화의 평가 기준일 수 없다는 점이다. 아쉽게도 충무로 전쟁영화 전체로 그림을 확대해서 바라봤을 때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만의 장점이랄 게 딱히 보이지 않는다.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만의 필살기라 할 만한 게 없달까.

캐릭터 구축 문제가 가장 크다. 영화는 많은 인물의 관계를 깊이 파헤치지 못하고 나열한다. 학도병들 개인의 사연 역시 예상 가능한 그림에 멈춰서 있다 보니 딱히 매력을 느껴 감정을 이입할 인물이 없다. 전쟁영화치고 비교적 짧은 러닝 타임(104분)은 이 작품에선 그리 장점이 되지 못하는 느낌이다. 보여줘야 할 부분을 충분히 보여주지 않은 탓에 리듬감이 자주 끊긴다. 더 자세하게 조각됐으면 좋을 디테일들이 시간에 쫓겨 방치된 흔적도 보인다.

누군가는 기록되지 못한 어린 영혼들의 희생을 끄집어냈다는 점만으로도 이 작품이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상업영화가 어디, 좋은 의미만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영역인가. 이 작품만의 특징을 잡는 것에는 주춤하면서 지나치게 무난한, 무색무취의 전쟁영화가 된 인상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