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교회 父子세습 허용에 교계·사회 충격…“기독교에 먹칠”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19.09.26 11:4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예장통합, 김삼환 원로목사 아들 김하나 위임목사 청빙 2021년부터 허용
교단총회 참석 총대 76.4% 찬성…이의제기 금지
손봉호 고신대 석좌교수 “두고두고 조롱·멸시 대상 될 수 있어”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 있는 명성교회 ⓒ 시사저널 박은숙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 있는 명성교회 ⓒ 시사저널 박은숙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교단이 명성교회 부자(父子) 목사의 목회직 세습을 2021년부터 허용하기로 했다. '교회의 세속화' '평등·공정성' 등 키워드와 맞물려 교계를 넘어 사회 전체에 파장이 이는 모습이다. 

예장 통합 교단은 경북 포항 기쁨의교회에서 열린 제104회 정기총회 마지막 날인 9월26일 명성교회 설립자 김삼환 목사의 아들 김하나 목사가 2021년 1월1일부터 명성교회 위임목사직을 맡을 수 있게 허용키로 결정했다. 

앞서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명성교회 수습안'에 대해 거수로 진행한 표결에서 참석 총대(대표자) 1204명 가운데 920명(76.4%)이 찬성표를 던졌다. 수습안에 따르면, 이번 합의는 법을 초월해 이뤄졌기 때문에 누구도 교단 헌법 등 교회법과 국가법에 근거해 고소, 고발, 소제기, 기소제기 등 일절 이의제기를 할 수 없다. 

다만 교단 총회는 명성교회 측이 2017년 3월 추진한 김하나 목사 청빙의 경우 교단 헌법상 목회직 세습을 금지한 규정을 위반해 무효라고 선언한 총회 재판국 재심 판결을 일정 부분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당분간 김하나 목사를 대신해 서울동남노회에서 오는 11월3일 파송(파견)하는 임시당회장이 교회 운영을 책임지게 된다. 

교단 총회는 논란의 중심에 선 명성교회 문제를 매듭짓기 위해 9월24일 명성교회 수습전권위원 7명을 임명해 해당 수습안을 마련했다. 총회장 김태영 목사는 "수습안은 법을 초월한 면이 있다. 법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면서 만든 안"이라며 "비난을 무릅쓰고 큰 합의를 오늘 아침에 이뤘다"고 밝혔다.

명성교회 홈페이지에 담임목사로 소개돼 있는 김하나 목사 ⓒ 명성교회 홈페이지
명성교회 홈페이지에 담임목사로 소개돼 있는 김하나 목사 ⓒ 명성교회 홈페이지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 있는 명성교회는 1980년 김삼환 원로목사가 세웠다. 등록 교인이 10만 명에 달하는 초대형 교회다. 명성교회가 2017년 3월 김삼환 원로목사 아들인 김하나 목사를 위임목사로 청빙하기로 결의하면서 부자세습 논란이 불거졌다. 세습을 사실상 허용한 이번 교단 총회 결정으로 다시 한 번 큰 파장이 일고 있다.  

한편, 명성교회 목회직 부자 세습을 강하게 반대해 온 손봉호 고신대 석좌교수는 지난 8월21일 시사저널 기고에서 "성경은 세습을 금지하지 않고 기독교 역사가 긴 서양에서도 세습이 큰 문제가 된 적이 없지만, 유독 한국에서 교회세습 논란이 일어나는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작용한다"면서 "그 하나는 한국 개신교가 세속적인 기준에서 성공한 것이고 또 하나는 (목회자) 가족 연고주의에 동반할 수 있는 부정의와 부정 은폐 가능성"이라고 지적했다. 

장로회신학대학교 세습반대 태스크포스(TF) 관계자들이 8월5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앞에서 명성교회 부자 세습 문제를 둘러싼 교단 재판국의 재심 판결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장로회신학대학교 세습반대 태스크포스(TF) 관계자들이 8월5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앞에서 명성교회 부자 세습 문제를 둘러싼 교단 재판국의 재심 판결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손 석좌교수는 "현대사회에 물질주의가 판을 치고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돈이 우상이 되어 있기에 돈이 많고 교인 수가 많은 교회의 세습은 오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며 "명성교회에 대해서는 온갖 종류의 부정적인 추측들이 난무하고 있다.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그런 의혹을 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명성교회뿐 아니라 한국 기독교에 커다란 상처를 준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손 석좌교수는 명성교회에 부자 세습을 철회하는 한편 교회 재산을 몽땅 팔아 국내외의 가난한 사람들, 병든 사람들, 장애인 복지와 교육에 다 바치면 논란에서 벗어나 사람과 신 모두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고 제언했다. 

하지만 명성교회 부자 세습은 결국 현실화했다. 손 석좌교수는 명성교회가 세습을 유지하는 상황을 두고 "이는 한국 교회, 기독교, 하나님의 명예와 영광에 먹칠을 가하는 지극히 부끄럽고 치졸한 대응으로 두고두고 조롱과 멸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교인들도 사회의 지탄을 받게 될 것이며 자존심과 명예에 큰 손상을 입을 것"이라며 "자녀의 인성교육에 관심을 가진 자존심 있는 교인들은 하나둘 교회를 떠날 것이고 머지않아 교회가 매우 약해질 수도 있다"고 한탄했다. 

실제로 이날 명성교회 관련 뉴스에는 '하나님 나라보다는 돈을 선택한 것인가' '교인으로서 부끄럽다'는 등 비판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