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만길 “친일 쿠데타 정권이 맺은 한일협정, 현대사의 큰 불행”
  • 안성모 기자 (asm@sisajournal.com)
  • 승인 2019.10.01 16:00
  • 호수 1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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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30주년 특별기획 - 대한민국 길을 묻다(29)]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동아시아공동체로 평화의 시대 맞아야…침략국 일본에 문제 풀어갈 책임 있어”

혼돈의 시대다. 혹자는 난세(亂世)라 부른다. 갈피를 못 잡고, 갈 길을 못 정한 채 방황하는, 우왕좌왕하는 시대다. 시사저널은 2019년 올해 창간 30주년을 맞았다. 특별기획으로 정치·경제·사회·문화·종교 등 각계 원로(元老) 30인의 ‘대한민국, 길을 묻다’ 인터뷰 기사를 연재한다. 연재 순서는 인터뷰한 시점에 맞춰 정해졌다. ①조정래 작가 ②송월주 스님 ③조순 전 부총리 ④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⑤손봉호 기아대책 이사장 ⑥김원기 전 국회의장 ⑦김성수 전 대한성공회 대주교 ⑧박찬종 변호사 ⑨윤후정 초대 여성특별위원회 위원장 ⑩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⑪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 ⑫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⑬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 ⑭이종찬 전 국회의원 ⑮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 ⑯박관용 전 국회의장 ⑰송기인 신부 ⑱차일석 전 서울시 부시장 ⑲임권택 감독 ⑳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 21. 이문열 작가 22. 송두율 전 독일 뮌스터대 교수 23.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 24.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 25. 강상중 도쿄대 명예교수 26. 손숙 예술의전당 이사장 27. 한승헌 변호사 28. 예춘호 전 민추협 부의장 29.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역사는 이상의 현실화 과정이다.”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를 만나러 강원도 양양으로 가는 길에 강 교수가 평소 얘기해 온 그의 역사관을 곱씹어봤다. 역사는 보다 나은 세상을 향해 전진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실천이 필요하다. 이상사회로 나아가려는 투쟁이 있어야 한다. 역사의 진보를 믿는 강만길 교수는 평생을 민족사학의 발전에 힘써온 원로 역사학자다. 1967년 고려대 사학과 교수로 임용돼 1999년까지 학생을 가르쳤다. 1970~90년대 많은 청년들이 그의 학문적 혹은 이념적 세례를 받았다.

강 교수는 실천하는 학자였다. 상아탑에 갇혀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다. 1972년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를 비판하는 각종 글을 쓰면서 현실 비판적 지식인으로 이름을 알렸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직후 항의집회 성명서를 작성하고 김대중으로부터 학생선동자금을 수수한 혐의 등으로 구금돼 4년간 강단을 떠나 있어야 했다. 김대중 대통령 때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을 지냈고, 노무현 대통령 때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를 만들어 위원장을 맡았다. 2001년에는 상지대 총장으로서 학원 정상화에 힘썼다. 이제 구순(九旬)을 바라보는 노(老)교수와의 인터뷰는 9월23일 오후 양양의 한적한 바닷가에 위치한 한 커피숍에서 2시간가량 진행됐다.

ⓒ 시사저널 임준선
ⓒ 시사저널 임준선

“일제시대 다닌 소학교 일본 역사만 가르쳐”

근황은 어떠신지요.

“여기(양양) 온 지가 10년이 넘었습니다. 혼자 내려와 있어요. 가족은 서울에 있고. 아주 편하게 잘 지내고 있어요. 조용한 데서 책이나 읽고. 그동안 사 놓고 못 읽은 책이 많아요. 그런 책들 읽으면서 잘 지내고 있어요.”

왜 양양에서 생활하시게 된 거죠.

“상지대 총장 할 때 이 앞을 지나가는데 바다가 참 깨끗하고 좋아요. 내가 원래 마산에서 바다를 보고 자란 사람입니다. 마침 아파트도 있고 해서 상지대 그만둘 무렵 바다가 보이는 층을 구했죠.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을 하고 나서 아예 여기로 내려와 혼자 조용히 지내고 있는 거지요.”

역사학을 공부하시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특별한 계기라기보다는…. 소학교(초등학교)를 일제시대 때 다녔죠. 그땐 단군도 몰랐고 고구려, 신라, 백제도 몰랐어요. 일본 역사만 알았지. 해방 되고서야 비로소 알게 됐어요. 그때부터 우리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흥미를 느끼게 됐죠. 그리고 중학교 때 역사 선생님을 잘 만났어요. 아주 실력 있는 분이었는데, 잘 배웠고 그게 계기가 돼서 대학에 들어갈 때 사학과를 선택했죠. 그때는 1차 지망이 주로 정치과, 경제과 이랬단 말이에요. 나는 1차 지망이 사학과였어요.”

 

“역사는 이상의 현실화 과정”

올해는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다. ‘역사는 이상의 현실화 과정이다’는 강만길 교수의 역사관처럼 한국의 현대사도 이상을 현실화해 왔고 또 그렇게 나아가고 있는 걸까. 원로 역사학자의 입장은 단호했다.

“예. 당연하죠. 인간의 역사 행위는 보다 나은 쪽으로 세상을 가져가려는 노력의 표현이고 실천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고대 사회를 두고 보면 일반 사람들은 노예였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이상사회는 중세 일반 사람들이 말하는 농노들이죠. 농노들이 사는 만큼 살기를 원한 겁니다. 그래서 온갖 노력을 하고 투쟁을 했죠. 결국은 농노들이 사는 세상이 됐어요. 중세 시대 일반 사람들인 농노의 경우는 근대 사회의 자유농민만큼 사는 게 그들의 이상이었습니다. 온갖 고난을 겪고 투쟁을 해서 결국은 자유농민들이 사는 세상이 됐어요. 이처럼 우리가 긴 눈으로 보면 사람들이 자기 이상을 실천하기 위해 투쟁하고 노력해 하나하나 이뤄나가는 게 역사죠. 역사는 그렇게 희망적인 겁니다. 역사는 어디 머물러 있는 게 아니라 자꾸 움직이는 거죠. 사람이 소원하는 쪽으로, 희망하는 쪽으로 움직이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날 민주주의 사회까지 오게 된 겁니다.”

최근 한·일 관계는 대립을 넘어 반목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나올 정도로 좋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세요.

“한·일 관계의 불행은 물론 일본에 침략당해 한일합방을 한 거부터겠죠. 그런데 해방이 되면서 한·일 국교가 맺어집니다. 그 국교를 맺은 당사자(박정희 대통령)가 일본군 출신이에요. 만주군관학교 장교를 지냈죠. 거기 출신이 쿠데타를 해서 정권을 잡았고, 그에 의해 한일협정이 이뤄진 겁니다. 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독립운동 하던 사람들이 정권을 잡고 그들에 의해 한일협정이 이뤄졌으면 내용이 달라졌겠죠. 그런데 불행하게도 친일 세력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그 정권에 의해 해방 후 처음으로 한일협정이 이뤄진 겁니다. 우리 현대사의 아주 큰 불행입니다. 우리가 침략을 당하고 희생을 당했으니 배상금을 받아야 되잖아요. 유상 3억, 무상 3억 달러인가 받았는데 그걸 청구권이라고 해서 받은 거죠. 그때 강제노동으로 끌려간 사람들에게 받은 거 나눠주지도 못했단 말이에요. 지금 와서 문제가 생겼잖아요. 그래서 우리 대법원이 ‘내놔라’ 판결을 한 거죠. 그러면서 한·일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거죠. 더구나 지금의 일본 총리(아베 신조)는 일본의 1급 전범(외조부 기시 노부스케)과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한·일 관계가 악화될 수밖에 없게 됐죠.”

1988년 10월7일 통일문제금요강좌에 나온 강만길 교수 ⓒ 연합뉴스
1988년 10월7일 통일문제금요강좌에 나온 강만길 교수 ⓒ 연합뉴스

“대등한 관계에서 정상적인 국교 수립돼야”

올해 8·15 광복절을 앞두고 사회 원로들이 대거 참여한 동아시아평화회의가 특별성명서를 발표했다. 한·일 관계의 위기를 넘어 동아시아 평화로 가자는 내용이었다. 한·일 두 나라가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의 정신과 해법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강만길 교수도 67인의 서명 동의인에 포함됐다.

“정상적인 국교가 수립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상적인 관계를 맺으려면 대등한 관계가 돼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그게 한 번에 이뤄질 수는 없겠죠.”

아베 정권은 왜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강력하게 나가는 걸까요. 뭔가 노림수가 있는 건가요.

“노림수라기보다는 인식 문제가 아닌가 싶어요. 전범(戰犯)들이 가지고 있는 인식. 한국을 침략했던 장본인들이니까. 아베는 그런 전범과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입니다. 과거 총리보다 더 심하잖아요. 이런 전범과의 관계를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해도 않을 수가 없게 되잖아요.”

일본이 평화헌법을 개정하고 군사력을 키우려 하는데, 결국 동아시아 정세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요.

“만약 일본이 그런 식으로 가면 한·중 관계가 더 긴밀해질 겁니다. 나는 일본이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봅니다. 사실 앞으로는 동아시아공동체를 만들어 평화롭게 살아야 됩니다. 아세안 플러스 동북 3국, 우리는 북한까지 합쳐서 이렇게 지역공동체를 만들어야 하는데, 일본이 저렇게 나가면 동아시아공동체가 만들어지기 어렵죠. 21세기 세계사는 지역공동체로 가고 평화롭게 사는 쪽으로 가고 있어요. 일본이 시대를 역행하는 겁니다.”

한·일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해법은 뭘까요.

“그게 동아시아공동체입니다. 공동체를 빨리 만드는 쪽으로 정치지도자들이 나서야 합니다. 과거 김대중 대통령도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아세안 플러스 3국 회의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이런 쪽으로 동아시아 역사가 진전돼야 합니다. 이게 2차대전 때 있었던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입니다. 중요한 책임은 역시 일본에 있죠. 일본이 침략국이었으니까 그걸 풀어가는 책임도 일본에 있는 겁니다.”

2005년 5월31일 노무현 대통령과 강만길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장이 청와대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2005년 5월31일 노무현 대통령과 강만길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장이 청와대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연합뉴스

“식민지 시대의 발전, 누구를 위한 발전인가”

최근 류석춘 연세대 교수가 수업 도중 위안부를 “매춘의 일종”이라고 발언해 논란이 일고 있다. 류 교수는 입장문을 통해 강의실 발언은 교수와 학생 간의 토론으로 끝나야 한다고 했지만 파문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언제나 그런 부분은 있었어요. 세상 사람이 다 똑같을 수는 없잖아요.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도 있고 시대에 역행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어요. 이건 될 수 있으면 최소화해야 하고 될 수 있으면 빨리 도려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그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게 된단 말이에요. 그런데 있는 것 자체를 부인해서는 안 됩니다. 언제나 있을 수 있어요. 어떻게 빨리 처리하느냐 문제가 중요한 거죠.”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와 그 뒤를 이은 이영훈 교수가 주축인 된 이른바 뉴라이트에서 이런 식의 주장들이 나왔죠.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도 나와 화제가 됐습니다. 이런 역사관을 어떻게 보시나요.

“소위 정통적인 역사학자들이 아닙니다. 경제사학자들이죠. 역사는 경제사만 가지고 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역사는 광범위하게 봐야 되거든요. 어느 한쪽 수치만 봐서는 안 되죠. 역사라는 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면을 다 봐야 합니다. 전체를 다 놓고 해석을 해야 합니다. 나는 일제시대 빈민 생활사 연구를 했어요. 화전민이나 걸인이 얼마나 많았는데요. 그 시대 빈민 생활이 얼마나 비참했는데요. 일제시대에 빈민이 해마다 늘어나고 걸인이 해마다 늘어납니다. 화전민도 마찬가지고요. 그걸 다 밝혔어요. 그리고 식민지 시대에 발전한다는 게 누구를 위한 발전입니까. 그 주체가 누굽니까. 여기 와 있던 일본 사람들 아니면 친일파들일 거 아니에요. 그것을 역사 전체의 발전으로 보는 것은 시각이 틀린 거죠. 일반 국민은 거지가 돼 가고 있는데 일부 친일세력, 여기 와 있던 일본 사람만 경제적으로 발전했다는 걸 우리 역사의 발전으로 봐야 된다? 이런 참 답답할 노릇이 있나. 어떻게 그런 역사 인식을 하게 되는지 모르겠어요. 친일파들이야 잘살았지. 민족을 팔고 살았으니 잘살 수밖에. 여기 와 있던 일본 사람들도 잘살았지. 조선 사람들 착취하고 살았으니까. 그걸 갖다가 우리 경제 발전으로 봐야 된다? 우리 역사 발전으로 봐야 된다? 이런 답답한 노릇이 어디 있어.”

 

“미국과의 관계, 남북 협조에 따라야”

강만길 교수는 ‘분단시대’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학자다. 고려대에 재직 중이던 1978년 《분단시대의 역사인식》라는 저서를 통해서다. 지금은 누구나 ‘분단시대’를 이야기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해방 후 시대’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왜 ‘분단시대’라고 명명했을까. 

“‘해방 후 시대’는 역사적인 용어가 못 됩니다. 해방 후 시대가 언제 끝나는 건가요. 그래서 역사적인 용어가 필요했죠. 그런데 그 시절 민족의 소원이 뭡니까. 통일 아닙니까. 이를 이뤄 나가기 위해서는 ‘분단시대’라는 현실을 인식해야 하잖아요. 그러니 지금은 해방 후 시대가 아니고 분단시대다, 다시 말해 통일을 가져와야 하는 시대다, 그런 의미에서 처음으로 썼죠. 그게 아주 일반화됐지. 이렇게 일반화된 건 통일에 대한 염원이 들어 있어서라는 걸 알아야 됩니다.”

현 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진전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미 관계의 변화에 따라 상황이 많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우리 정부가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면 북의 위치가 줄어들게 됩니다. 그래서 나는 어디까지나 대미 관계는 남북 협조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한쪽이 주도가 돼서는 안 되고 협조가 돼야 한다는 거죠. 북·미 관계를 진전시키기 위한 나름대로의 노력, 그것도 북과 이해가 맞아 들어가는 노력이 돼야겠죠. 남북이 협조해서 이뤄지는 북·미 관계가 돼야겠죠.”

우리 정부가 방향을 잘 잡고 가는 건가요.

“지금은 괜찮다고 보고 있는데 북이 조금 그렇게 인정 안 하는 것 같죠. 왜 그런지 모르겠어. 어쨌든 우리가 너무 나서면 안 됩니다. 균형을 맞춰야죠.”

반면 보수진영에서는 현 정부가 남북관계에 너무 올인하고 있다, 북한에 끌려가고 있다 이렇게 비판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언제나 그렇고. 티를 잡기 위한 건데 거기에 구애될 건 없다고 봐요. 보수 쪽 사람들은 뭘 어떻게 하자는 건가. 남한 중심 통일 이런 생각인가. 정치적으로야 자신들이 집권을 해야 하니까 그럴 수 있겠죠. 그래도 도량이 있는 정치인이라면 협조할 건 협조하고 비판할 건 비판해야 하는데 지금은 비판 일변도잖아요. 그래 가지고는 안 되죠. 그렇게 한다고 이기는 게 아니란 말이죠. 협조하는 부분과 비판하는 부분이 분명히 갈라지면서 일반 국민이 거기에 납득을 해야 되거든요. 그런데 비판만 자꾸 하면 국민이 납득을 안 하잖아요. 야당은 으레 저런 거다 이렇게 돼 버리는 거죠. 과거에도 많이 겪었죠.”

젊은 층에서는 반드시 통일을 해야 하느냐, 그 필요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있습니다.

“교육에 문제가 좀 있는 게 아닌가요. 좀 폭넓은 교육이 돼야 하는데 너무 미세한 부분, 입시 중심 이런 게 좀 해결돼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크게 보면 앞으로의 세계는 지역공동체 중심입니다. 지역공동체 중심의 세계가 되려면 남북관계가 적대 관계가 돼서는 안 됩니다. 협조 관계가 돼야 하죠. 동아시아공동체가 이뤄지려면 남북이 하나가 되는 과정이 있어야 해요.”

2017년 7월18일 ‘몽양 여운형 선생 제70주기 추모강연회’에서 강만길 명예교수가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2017년 7월18일 ‘몽양 여운형 선생 제70주기 추모강연회’에서 강만길 명예교수가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적폐청산 얼마나 공정하게 하느냐가 문제”

‘촛불’과 ‘태극기’로 대표되는 진보와 보수 간 갈등과 대립이 심해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우리 사회가 좀 심한 이유가 있는데, 역시 분단 때문에 그렇습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분단 문제에 있는 겁니다. 그게 해결돼야 전체적인 해결이 된다고 생각해요. 진보니 보수니 하는 것도 분단국이라 더 심한 거죠. 남북 간 교류와 교역이 빨리 활성화해야 합니다. 그래야 의식이 변하게 되죠. 지금도 빨갱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게 언제 적 이야기입니까.”

현 정부의 적폐청산은 잘되고 있다고 보십니까.

“바로잡아야 하는 건 당연한데 얼마나 공정하게 하느냐가 문제겠죠. 공정성을 잃으면 안 됩니다. 특히 정부가 하는 일에는 공정성이 반드시 따라야 됩니다. 어느 집권자의 개인감정이라든지 어느 세력의 이익을 위해서라든지 이런 게 아니고 공정성을 바탕을 해서 적폐청산을 해야 하는 거죠. 공정성이라는 건 국민 대다수가 납득하는 공정성입니다.”

일각에서는 피로감을 얘기합니다. 과거 일을 계속 문제 삼는 건 미래로 나아가는 데 발목 잡는 게 아니냐는 겁니다.

“과거 청산도 꼭 필요한 부분을 해야 하는 거죠. 정권적인 이해 때문에 해서는 안 되고 어디까지나 그야말로 역사적인 관점에서 해야 하는 거죠. 엄격하게 해야 합니다. 어떤 정권적인 이익이나 정권적인 야심에 의해 하는 건 과거 청산이 아닙니다.  구분하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친일 청산 같은 건 누가 봐도 당연한 이야기 아니에요. 정치적으로 큰 하자 있었다든지 모략이 있었다든지 하면 당연히 청산을 해야지. 그러나 현 정권의 이해관계가 결부돼서 청산해야 한다는 건 할 수도 없고 되지도 않는 겁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정운영을 잘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임기 초에 비해 지지율이 하락했는데.

“지지율에 구애받을 건 없다고 봐요. 지금까지 크게 잘못한 게 뭐 드러난 게 있습니까. 크게 잘못해 드러난 거 알지 못하겠어요.”

역대 대통령을 평가하신다면 어떻습니까.

“아~ 그건 안 돼.”

그럼 군사정권 이후 대통령은 어땠다고 보시나요. 김영삼 대통령부터 회고를 하신다면.

“김영삼 대통령도 남북관계를 해결하려고 했죠. 그런데 불행히도 북의 수상이 죽는 바람에 회담이 중단됐죠. 그다음 김대중 대통령인데, 내가 늘 말하지만 6·15 공동선언에서 통일은 이미 시작된 겁니다. 그렇게 봐야 됩니다. 통일이라는 게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가 분단이 될 때 38선이 생김으로써 국토가 분단이 됐습니다. 그러다 1948년에 두 개의 국가가 생김으로써 국가가 분단이 됐습니다. 아직 동족의식은 있었어요. 그런데 6·25전쟁이 나면서 민족 분단이 됐습니다. 6·15 공동선언에서 우리가 화해하고 협력하자고 했습니다. 민족 통일이 시작된 겁니다. 그러고 나니까 철도가 연결되고 금강산 관광이 열리고 개성공단이 생기고. 노무현 대통령 때는 이미 해주공단 이야기가 나왔고, 그동안 백두산을 갈 때 중국을 통해 갔는데 우리 쪽을 통해 가는 조약이 맺어졌습니다. 국토가 통일돼 가는 겁니다. 민족 통일이 되니까 거기에 맞춰서 국토가 통일돼 가는 겁니다. 국가 통일은 그다음의 문제겠죠. 좀 시일이 걸리겠지만 통일이 반은 돼 가는 셈이죠. 통일은 이렇게 하는 겁니다.”

단계를 밟아 올라가고 있는 중이라는 거죠.

“그렇죠. 아마 이명박이나 박근혜 두 대통령이 아니었으면 지금쯤은 상당히 진전이 됐을 겁니다. 해주공단과 원산공단이 생겼을 겁니다. 그러면서 차차 국가 통일의 길도 열리게 되겠죠.”

이명박, 박근혜 정권 때 뒷걸음질을 쳤다는 평가시네요.

“물론이죠. 개성공단 문 닫기 1주일 전에 개성을 다녀왔어요. 그런데 개성이 많이 달라졌어요. 우선 사람들의 옷이 달라졌어요. 거기에다 아파트가 많이 생겼어요. 개성공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겁니다.”

북한도 변화하고 있다는 거네요.

“물론이죠. 그렇게 남북이 같아져 나가는 거예요. 그게 통일돼 가는 과정이죠. 그런데 다 막아버렸으니.”

지금도 남북관계가 변화의 기로에 있는 거죠.

“이명박, 박근혜 정권 때의 후유증이죠.  그 세력들이 아직도 남아서 남북관계에 자꾸 딴지를 걸고 있잖아요. 그 참 어떻게 그런 사람들이 대통령이 돼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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